‘콘텐츠뷰’는 게임, 드라마, 영화 등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콘텐츠를 감상·체험하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풀어보는 기획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치 않는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펜팔(Pen Pal)'은 사전적 정의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귀는 벗'이다. 미지의 상대를 떠올리며 한 글자씩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완성하는 그때의 기분이란. 편지를 보낸 후 답장을 기다리는 그 순간 만큼은 1분이 1년 같다.

▲  /사진=tvN 스타트업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사진=tvN 스타트업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tvN 드라마 '스타트업'은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추억의 연장 선상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얼핏 보면 펜팔과 스타트업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만큼은 이야기의 중심 축으로 작용한다. 펜팔로 시작된 인연의 연결고리가 얽히고 설켜,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청춘들의 고민과 애환을 담는다.

추억 그리고 마음의 빚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추억'과 '마음의 빚'이 공존한다. 1~2화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인물들의 서사를 조명하는 부분에 치중한다.

'서달미(배수지 분)'의 머릿 속은 어린 시절 추억을 채워준 펜팔 상대인 '남도산(남주혁 분)' 뿐이다. 도산의 정성스런 펜팔로 인해 연애 상대를 고르는 데도 깐깐한 기준을 앞세운다. 다 낡은 까만 구두에 매직을 덧칠할 정도로 당당하지만, 자신을 부정하는 친언니 '원인재(강한나 분)' 앞에서 만큼은 유독 작아진다. 부모의 이혼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떠난 인재에게 아버지 곁을 지킨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  어른이 된 지평(오른쪽)은 원덕이 자신에게 부탁하는 것에 대해 내심 흐뭇해 하며 경청한다. /사진=스타트업 영상 갈무리
▲ 어른이 된 지평(오른쪽)은 원덕이 자신에게 부탁하는 것에 대해 내심 흐뭇해 하며 경청한다. /사진=스타트업 영상 갈무리

젊은 나이에 벤처캐피탈(VC) 기업의 팀장이 된 '한지평(김선호 분)'은 업무에 있어 깐깐하고 냉정하지만 '최원덕(김해숙 분)'에게는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 다가가는 인물이다. 갈 곳 없던 자신에게 따뜻한 안식처와 끼니를 제공해 준 원덕의 부탁이라면 '남도산을 찾으라'는 황당한 부탁마저 하루 안에 처리할 만큼 적극적이다. 가짜 펜팔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밝히려는 찰나 도산이 달미를 찾아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뒤틀린 추억의 단면을 바로잡아야 하는 숙제와 마주한다.

스타트업의 서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덕은 달미의 할머니이자 지평에게 남다른 모성애를 보인 인물이다. 달미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시작한 가짜 펜팔이 실제 만남으로 이어질 위기(?)에 처하자 지평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앞서 세상을 떠난 아들을 그리워 하기도 전에 달미가 받을 상처를 먼저 걱정하는 한편 지평에게 대가없는 사랑을 보여준 원덕은 언제나 두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 뿐이다.

▲  자신을 오해한 지평을 바라보는 원덕의 눈빛에는 미안함과 실망스러운 기색이 공존한다. /사진=스타트업 영상 갈무리
▲ 자신을 오해한 지평을 바라보는 원덕의 눈빛에는 미안함과 실망스러운 기색이 공존한다. /사진=스타트업 영상 갈무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펜팔의 주인공이 된 도산은 극 초반 서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인물이다. '수학경시대회 최연소 우승자'라는 타이틀로 소개된 후 달미와 원덕의 가짜 펜팔 계획에 명의를 도용(?)당하는 인물인데, 15년 만에 당사자로부터 사연을 듣게 된 후 '위장 로맨스'에 개입한다. 그는 한 때 '천재' 소리를 들으며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신동이지만 서른살 가까이 '인공지능(AI) 이미지 인식 기술' 개발에만 몰두한다. 자신을 믿고 투자해 준 부모에게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해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진 20대 개발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인데?

스타트업은 제목 그대로 '한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생존기를 펼치는 이 시대의 개발자와 직장인을 조명한다. 누군가는 '성공한 젊은 기업가'로 단숨에 부와 명예를 얻지만 그 이면에는 VC 투자 여부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잔혹한 스타트업 경쟁을 드라마에 녹였다. 이 부분에서 '성공한 사람'과 '도전자'를 극명하게 분류하는 연출로 3화부터 본격적인 스타트업 이야기를 풀어 놓을 계획이다.

초반 에피소드에서부터 추억과 에피소드는 연관성을 갖는다. 스타트업 붐이 일었던 2000년대 초의 분위기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예감한 청명은 주요 VC 관계자 앞에서 사업 계획을 설명한다. /사진=스타트업 영상 갈무리
▲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예감한 청명은 주요 VC 관계자 앞에서 사업 계획을 설명한다. /사진=스타트업 영상 갈무리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도전한 '서청명(김주헌 분)'은 인터넷으로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배달닷컴' 서비스를 만들고 투자자를 찾아 나선다. "충분한 이용자를 확보하기 전까지 유료화를 하지 않겠다"는 경영 철학을 통해 VC의 투자를 이끌어 낸 청명의 모습에서는 '엔젤투자'를 비롯한 초기 벤처기업 투자 계획을 엿볼 수 있다. 청명이 고안한 '배달닷컴'도 지금은 흔하게 사용하는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 등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의 흔적이 스쳐 지나간다.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묘사된 '샌드박스(Sandbox)'는 주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로 묘사된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는 신생 업체를 발굴하고 업무 공간, 마케팅, 홍보 등을 지원하는 기업이다. 샌드박스는 스타트업이라면 누구나 입주하고 싶은 꿈의 기업으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터전으로 묘사된다.

극에 자주 등장하는 VC는 쉽게 말해 스타트업 등 초기 창업 기업에 투자를 진행하는 기업이다. 기술력과 잠재력이 있는 기업을 선별한 후 주식 취득 등을 통해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타트업의 경우 일반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확보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 VC를 통해 투자를 유치한다. 청명이 투자자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한 장면은 VC의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한 과정으로 보면 된다.

아프니까 청춘일까?

드라마는 인물의 서사를 통해 스타트업과의 연관성을 찾은 후 치열한 경쟁 현장으로 시선을 돌린다. 1~2화가 달미, 지평, 원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그 이후에는 도산의 스타트업 생존기와 인물간 관계 변화에 주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젊은 창업가의 성공기'를 조명하거나 '스타트업 업계의 냉정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  도산을 그리워 하며 부치지 못한 편지를 새집 안에 넣는 달미. /사진=스타트업 영상 갈무리
▲ 도산을 그리워 하며 부치지 못한 편지를 새집 안에 넣는 달미. /사진=스타트업 영상 갈무리

변수는 '갑·을 관계'로 비춰질 VC와 스타트업 관계에 대한 접근법이다. 스타트업의 서사에는 '로맨스', '가족애', '복수(자신에 대한 증명)' 등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주요 키워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차별성을 준 부분이 바로 '스타트업'이라는 소재인데, 극 초반부터 상당히 현실적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극중 지평이 도산을 만나 던진 대화에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실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지평은 "달미를 만나는 조건으로 샌드박스에 입주시켜 달라"는 도산의 제안을 냉정하게 거절한다. 앞서 도산은 지평이 다니는 VC에 친구들과 개발한 AI 이미지 인식 기술에 대한 투자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한 상황.

개인적 부탁을 하러 왔다가 VC 기업 팀장의 입장으로 냉정히 돌아선 지평은 도산과 그 친구들에게 비수가 될 이야기를 늘어놓고 떠난다.

▲  도산(오른쪽)은 대가 없이 달미 앞에 나타나 15년간의 위장 로맨스에 종지부를 찍는다. /사진=스타트업 영상 갈무리
▲ 도산(오른쪽)은 대가 없이 달미 앞에 나타나 15년간의 위장 로맨스에 종지부를 찍는다. /사진=스타트업 영상 갈무리

지평은 "지금까지 내가 투자를 검토한 곳이 1000곳쯤 되는데 그 중에 30곳에 투자를 진행했다"며 "30곳 중에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한 곳은 4곳이지만 투자를 안 한 스타트업 가운데 성공한 곳은 제로(0)"라고 일침한다.

이어 "난 이 두 번째 기록을 깨고 싶지 않다"며 "그래서 당신들 한테 절대 투자하고 싶지 않다. 얼리(창업 초기 단계)라서가 아니다"고 말한 채 돌아선다. 해마다 많은 VC가 투자를 집행하지만 각자의 기준과 투자 여력이 다른 만큼 기술력과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판단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법. 스타트업은 2화 마지막 부분에서는 도산이 만든 AI 이미지 분석 기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며 도산의 스타트업 생존기의 전환점이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렉스 권(조태관 분)'을 통해 되새김질 한다. "남도산 궁금하네, 어떤 친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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