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경영 일선에 있던 당시 스포츠 산업 육성에 공을 들였다. 삼성은 1990년대부터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기업 인지도를 대폭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구단인 첼시와의 스폰서십이다. 첼시는 삼성과 스폰서십을 체결한 후 2005년부터 'SAMSUNG' 로고가 적힌 유니폼을 사용했다. 이는 삼성이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  EPL팀 첼시와 삼성전자의 스폰서십 당시 이건희 회장(왼쪽)과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EPL팀 첼시와 삼성전자의 스폰서십 당시 이건희 회장(왼쪽)과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삼성의 스포츠 마케팅은 삼성 라이온즈(야구), 수원 삼성 블루윙즈(축구),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배구단(배구),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여자 프로농구), 삼성생명 탁구단, 삼성생명 레슬링단 등 국내 프로 스포츠 시장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전설로 남은 '삼성 갤럭시 프로게임단'도 이 회장의 재임 시절 '삼성 스포츠' 프로젝트 일환의 하나였다. 스타크래프트와 리그오브레전드(LoL)에 족적을 남긴 삼성 갤럭시 게임단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삼성 프로게임단, 창단부터 해체까지

한국에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불던 2000년대 초반, 당시 PC 개인 보급이 활발히 이뤄짐과 동시에 PC방 프랜차이즈도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삼성전자도 PC방 브랜드 '삼성전자 칸'을 론칭했는데 이때 이벤트 형식으로 동명의 프로게임단을 창단한다. 2000년 6월 9일 삼성전자 칸은 공식적으로 출범을 알렸지만 당시에는 e스포츠에 대한 시스템이나 정규 리그가 없어 이렇다할 성과를 올리진 못했다.

팀 창단 당시 정수영 감독이 사령탑 역할을 맡았지만 1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단과 결별한 후 리더십 공백 시기를 맞이한다. 2003년까지 감독없이 운영되던 삼성전자 칸은 프론트 체제 개편을 통해 같은 해 7월 김가을 감독이 구단을 운영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재정비를 마치고 안정화에 접어든 삼성전자 칸은 2007년과 2008년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삼성 브랜드를 젊은 세대에 알리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 당시 송병구, 허영무 투톱 체제는 프로리그의 전성기를 맞아 삼성전자 칸의 인지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존재였다. 특히 2008년 11월 열린 '인크루트 스타리그'에서 송병구가 우승을 차지하며 창단 8년 5개월 여만에 처음으로 개인리그 우승자까지 배출시켰다.

▲  2011년 당시 삼성전자 칸 프로게임단이 갤럭시탭을 지급받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갈무리
▲ 2011년 당시 삼성전자 칸 프로게임단이 갤럭시탭을 지급받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갈무리

2012년 이후 글로벌 e스포츠 판도가 LoL로 넘어가자, 삼성도 관련 분야에 집중 투자하기 시작했다. 2013년 9월 당시 삼성전자 프로게임단은 국내 LoL 구단인 'MVP 오존'과 '블루'를 인수해 '삼성 갤럭시 프로 게임팀'을 창단한다. 이때부터 삼성 갤럭시 프로 게임단의 행보가 시작되는데 LoL 게임단의 경우 2014년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 최강팀을 구성해 세계 대회에서 굵직한 성과를 올렸을 무렵 팀 해체 수순과 직면하게 된다. 2014년 세계 대회인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 삼성 갤럭시 화이트 팀이 우승을 차지한 후의 일이라 업계에 던지는 파장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롤드컵 직후 삼성 갤럭시 블루와 화이트의 주전 선수 10명, 연습생, 코칭스태프가 모두 탈퇴 수순을 밟아 운영에 어려움을 겪였던 삼성 갤럭시는 같은 해 11월 아마추어 선수 세 명과 프로 게이머 두 명을 영입해 팀을 재편한다. 두 팀으로 나눠 운영했던 삼성 갤럭시 LoL 프로팀은 '삼성 갤럭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2015년 부침을 겪던 삼성 갤럭시는 2016년 롤드컵 결승 무대에 진출하며 다시 한 번 '왕의 귀환'을 알렸다. SK텔레콤 T1과의 결승전에서 0대2로 밀리던 스코어를 동률로 만들며 2014년 삼성 갤럭시 화이트의 영광을 재현할 만큼의 기세를 보였지만 석패하며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쳤다.

이후 삼성 갤럭시 프로게임단은 2017년 'LoL KeSPA 컵'을 끝으로 공식적인 대회 활동을 마무리 한다. 삼성 스포츠는 같은 해 12월 1일 당시 KSV e스포츠(현 Gen.G e스포츠)에 팀을 매각하며 e스포츠 사업에서 철수했다. 2016년 10월 스타크래프트II 종목 팀 해체를 발표한 데 이어 LoL e스포츠도 손을 떼면서 삼성과 e스포츠의 연결고리는 사실상 끝을 맺는 듯 했다.

삼성의 e스포츠 DNA, 이대로 끝날까

삼성의 e스포츠 사업은 이건희 회장이 지병으로 쓰러진 2014년 이후부터 서서히 몸집을 줄여나갔다. LoL팀이 롤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대외적 인지도에 발맞춘 프로모션이나 제품 후원 등의 지원을 이어갔지만 전폭적인 투자는 진행하지 않았다.

특히 2014년 최초의 국가 대항 게임대회인 '월드사이버게임즈(WCG)'의 운영 및 후원을 중단한 후 관련 상표권을 스마일게이트에 매각했다. 2016년과 2017년에는 각각 스타크래프트II와 LoL 프로게임팀을 해체하면서 18년간 투자해 온 e스포츠 사업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  삼성전자가 출시한 게이밍 모니터 오디세이 G7 T1 페이커 에디션. /사진=삼성전자
▲ 삼성전자가 출시한 게이밍 모니터 오디세이 G7 T1 페이커 에디션. /사진=삼성전자

그랬던 삼성이 최근 e스포츠 분야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T1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간접적인 관심을 드러낸 것. 선수들에게 삼성 게이밍 모니터인 오딧세이 G9·G7을 독점 제공하는가 하면 구단 훈련 공간 이름을 '삼성 플레이어 라운지'로 명명하는 등 e스포츠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모습이다.

e스포츠 관계자는 "삼성의 스포츠 브랜드인 삼성 스포츠를 제일기획이 맡게 된 후 e스포츠 관련 사업은 점차 규모를 줄여나갔다"며 "한 때 업계에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T1과 파트너십을 맺은 것을 보면 내년부터 진행될 LoL e스포츠의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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