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 회장./사진=삼성전자 제공
▲ 이건희 삼성 회장./사진=삼성전자 제공

이건희 회장 사후 이 회장이 보유하던 재산의 상속과 삼성 소유구조 변화에 관심이 가는 가운데 이를 결정지어줄 유언장이 과연 존재하는 지에 세간의 관심이 쏠려 있다. 유언장이 존재한다면 빠르고 간단하게 상속인간 상속재산분할협의가 끝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재벌가처럼 상속재산을 두고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2014년 이 회장이 심장마비로 병석에 누운 이래 삼성은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유언장의 존재 여부를 밝힌 적이 없다. 삼성 밖에서도 유언장이 있을 거라는 추측은 많이 했지만 유언장 존재 여부가 실제로 확인된 사례도 없다.

병석에서 별도의 유언장을 만들어 두었을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와병 중 이 회장의 상태가 알려진 것만큼 늘 위중했고 유언장을 작성할 만큼의 판단력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가(家)는 창업주부터 '유언장'으로 상속을 하지 않은 그룹이기도 하다.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계약서'를 잘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유언장이 일반화한 시대도 아니었다. 지인들에게 “장남 맹희는 경영에 뜻이 없고 차남 창희는 많은 기업을 하기 싫어한다. 3남 건희도 당초에는 사양했으나 마지막에는 역량은 부족하나 맡아보겠다는 뜻을 가져다 주었다. 삼성그룹의 후계자는 건희로 정한 만큼 건희를 중심으로 삼성을 이끌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곧 유언장이었고, 그가 타계하자 삼성그룹 사장단은 이 회장을 삼성그룹 제2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유언장보다 생전 임직원이나 지인에게 해 두었던 말이나 제시했던 경영 방향에 의해 그룹 경영권이 상속됐다는 것이다.

▲  삼성그룹 가계도./자료=블로터 DB
▲ 삼성그룹 가계도./자료=블로터 DB

이병철 회장이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음은 이맹희·이건희간 2012년 벌어진 '이병철 차명재산 상속 소송'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재판에서 이건희 회장측 변호인단은 이병철 창업주 타계 이후 만들어진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깜짝 제출했다. 남아있는 상속인들간 재산을 어떻게 분할할 지에 대한 이병철 창업주 자녀들끼리 만든 합의서다. 하지만 가족 이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꺼려지는 상속재산분할협의서가 공개됐음에도 유언장은 제출되지 않았다.

이 소송 재판에서 양측 모두 "유언장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다"고 간접적으로 시인했고, 재판 후 일부 변호인은 기자들과 질의응답 과정에서 "유언장이 있다면 이런 소송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선대 회장처럼 이 회장도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다. 대신 이 회장은 생전에 그룹 경영권 승계의 밑그림을 그려 놓았고 그려놓은 밑그림에 따라 자녀들의 주식 지분을 형성시켜 놓았다. 합병, 분할 등 여러 복잡한 과정을 거쳤지만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룹 지주회사격 기업인 삼성물산의 지분 17.33%를 갖게 됐다. 이부진·이서현 자매는 삼성물산 지분 5.55%씩을 갖고 있다.

과정에서 '편법승계'라는 비난을 받고 재판까지 받고 있으나, 지분 배분 결과만 놓고 보면 이 회장 생전에 선친처럼 유언장 없이 그룹 승계를 마친 셈이다. 별도의 유언장 없이도 이미 어느정도 가족간 합의가 돼 있고 상속의 방향도 정해져 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삼성그룹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답변하기를 꺼린다. 답하더라도 "가족 일이어서 알 수가 없다"는 말이 돌아온다.

그러나 유언장이 미래 어느 시점에 깜짝 등장할 지도 모른다. 유언장이 없을 경우에 재벌가 내 가족간 분쟁이 많았던 탓이다.

롯데그룹은 다툼과 소송이 모두 끝난 후인 올해 6월에서야 "차남인 신동빈 회장을 후계자로 한다"는 내용의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20년전 유언장이 공개됐다. 하지만 그 전까지 이런 유언장의 존재 가능 여부조차 몰랐고 신동주·동빈 형제는 경영권 다툼을 겪었다. 이 유언장은 고 신 명예회장의 집기를 치우다 서랍 속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은 불분명한 유언으로 남매간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다.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은 생전에 자녀들에게 "공동경영을 하라"고 말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지분을 누구 한명에게 몰아주지 않았다. 그가 타계하자 3남매의 한진칼 지분율은 상속 이후 6.4%대로 엇비슷해졌다. 결국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갈라섰고 지금도 다툼은 진행형이다.

이 회장이 남긴 상속 재산은 드러난 규모만 19조원이 넘을 것으로 <블로터> 취재 결과 확인된다. 주식이 대부분이다. 약 18조2600억원 어치다. 유언장이 별도로 없을 경우 부인 홍라희 전 삼성리움미술관장이 4.5분의 1.5를, 세 남매가 4.5분의 1씩을 가져간다. 금액으로는 대략 각각 6.4조원, 4.2조원, 4.2조원, 4.2조원 가량이다. 이 중 50%를 세금으로 낸다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상속재산 규모다. 언제든지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재산 규모다.

물론 별도 유언장이 없다면 법정상속비율대로 배분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룹 경영권이 달린 지분은 상속비율대로 상속되지 않을 수 있어 가족간 협의는 필수다.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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