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리의 투머치 리뷰>는 IT·유통·뷰티를 기반으로 한 체험기입니다. 어디로든 가고, 무엇이든 합니다. 일상 속 소소한 궁금증부터, 살까 말까 고민되는 신제품 체험까지. 모든 경험을 공유하겠습니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라고 생각될 다소 과도한 체험과 연구. 함께 해요. 췌킷아웃.

▲  대구시 중구 인교동에 위치한 '호암 이병철 고택'. 故 이건희 회장의 생가로도 불린다. 앞쪽으로 창문이 난 방이 이 회장이 태어난 방이다/촬영=김주리 기자
▲ 대구시 중구 인교동에 위치한 '호암 이병철 고택'. 故 이건희 회장의 생가로도 불린다. 앞쪽으로 창문이 난 방이 이 회장이 태어난 방이다/촬영=김주리 기자

"관광객들은 너무 좋아하죠. 좋은 기운 받겠다고 벽에 손도 얹었다가 기대다가. 집 앞에 드러눕는 사람도 있다니까요?"

대구시 중구 인교동에 위치한 어느 저택에는 설화가 하나 있다. 이곳에 흐르는 영묘한 기운을 받으면 '교육과 건강, 부(富)' 세 가지를 풍요롭게 누리게 된다는,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고택'의 '삼성설화'다. 익히 '이건희 생가'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지난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타계한 이후로는 '故 이건희 생가'로 불리게 됐다.

▲  '삼성상회터'. 호암 이병철 고택에서 걸어서 약 5분 거리에 자리해있다/촬영=김주리 기자
▲ '삼성상회터'. 호암 이병철 고택에서 걸어서 약 5분 거리에 자리해있다/촬영=김주리 기자

“삼성은 대구기업…선친들의 유업 이어지길”

故 이건희 회장의 타계로 대구인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현장에서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눈 시민들의 반응은 상당히 엇갈렸다. 생가 인근의 공구상가 골목을 둘러보던 노신사는 세상을 떠난 이 회장의 소식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동시에 ‘대구의 삼성’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삼성은 대구에서 출발한 ‘대구기업’이다. 대한민국 1등 기업을 넘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삼성을 성장시킨 이 회장의 죽음에 모든 대구인들이 슬퍼하고 있다”

대구시 문화유산 해설사를 지낸 장 모 씨는 삼성그룹이 대구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지난 1954년 당시 삼성물산 사장이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제일모직공업을 설립하며 여성을 비롯한 청년들의 취업에도 물꼬를 틔워줬다는 평이다. 인근에 거주하는 덕에 ‘호암 이병철 고택’도 자주 방문한다는 장 씨는 자신의 양복을 가리키며 ‘제일모직’ 덕에 입을 수 있게 된 옷이라고 말했다.

▲  /촬영=김주리 기자
▲ /촬영=김주리 기자

‘섭섭한 마음’이야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한다. 삼성그룹이 대구를 등진 듯한 기분이 들 때면 내심 서운하고 속상한 감정은 있었다는 장 씨.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말을 아꼈다.

“모든 대구인들이 그럴 거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섭섭하고, 서운하고. 하지만 이룬 공이 너무나 크고, 병상에서 오래 있었던 만큼, 그 마음은 가슴에 묻어야 한다”

▲  삼성상회터에서 호암 이병철 고택으로 이어지는 '오토바이 골목길'. 고택을 찾는 관광객들은 늘 이 거리를 지나친다. 상가의 사장님들이 어제 오늘 길을 묻는 사람들 때문에 바빴다고/촬영=김주리 기자
▲ 삼성상회터에서 호암 이병철 고택으로 이어지는 '오토바이 골목길'. 고택을 찾는 관광객들은 늘 이 거리를 지나친다. 상가의 사장님들이 어제 오늘 길을 묻는 사람들 때문에 바빴다고/촬영=김주리 기자

장 씨의 얼굴에 쓸쓸한 기색이 지나갔지만 이내 마음을 굳힌 듯, ‘이병철과 이건희가 없는 삼성’, 혹은 '이재용의 삼성'을 향해 응원과 당부의 말을 전했다.

“더욱더, 세계적인 대기업으로서 조국의 발전을 굳건히 해주기 바란다. 선친들의 유업을 이어가 달라. 큰 인물이 되길 바란다”

장 씨는 발길을 돌리면서도 취재진을 향해 연신 “삼성은 참 좋은 기업”이라며 가급적 좋은 기사를 작성해주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본 기자가 한국어에 능숙하다며 칭찬했다…(?)

▲  삼성상회터 바로 옆 공구가게. 오토바이 골목길을 비롯해 낡고 오래 된 공구가게 상점들도 눈에 띈다/촬영=김주리 기자
▲ 삼성상회터 바로 옆 공구가게. 오토바이 골목길을 비롯해 낡고 오래 된 공구가게 상점들도 눈에 띈다/촬영=김주리 기자

“대구를 버린 삼성,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또 다른 대구시민은 이건희 회장 타계 소식에 대해 짜증 섞인 한숨부터 내쉬었다. 대구 시내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김정호(가명) 씨는 삼성이 대구에 ‘득’을 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일갈했다.

“대구시민들은 故 이건희 회장이 고향 대구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을 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주민들의 실망이 너무나 크다. 대구의 경제가 파탄 나고 있을 때 삼성은 무엇을 했는가”

김 씨의 울분 섞인 목소리는 분노보다는 서러움에 가까웠다. 대구시 북구에 위치한 오페라하우스 인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현 대구삼성창조캠퍼스)를 세웠을 때만 해도 그의 기대는 컸다. 이병철과 이건희를 배출한 대구가 드디어 ‘보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자부심도 느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감으로 이어졌다.

▲  대구창조혁신센터에 위치한 삼성상회 구조물/촬영=김주리 기자
▲ 대구창조혁신센터에 위치한 삼성상회 구조물/촬영=김주리 기자

“창조경제센터 하나 세우고, 열지도 않고,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다. 이건희의 생가로 불리는 저택도 가끔 구경하는 사람들이니 있을 뿐이지, 대구의 발전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창조경제센터와 삼성, 대구의 사연은 26일 자로 발행된 <블로터>의 기사 ‘대구 중구 이건희 기념관 제안…삼성 손사래, 진퇴양난 추모사업(http://www.bloter.net/archives/470920)’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어 김 씨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지만, 도덕적 의무(아마도 대구에 대한)까지 저버리지 않는 게 도리다. 후대의 삼성그룹에 대해 뭔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더 이상 기대도 없다”라고 말했다.

▲  호암 이병철 고택이자 이건희 회장 생가 내부/촬영=구태우 기자
▲ 호암 이병철 고택이자 이건희 회장 생가 내부/촬영=구태우 기자

삼성의 이건희, 이건희의 대구, 대구의 이병철

故 이건희 회장은 중구 인교동의 저택 내 골목길로 창이 나 있는 방에서 태어났다. 본적이 경상남도 의령으로 등록 돼 있어 그의 출생지가 의령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대구시민들의 말대로 ‘대구인’이다. 현재 그의 생가이면서 故 이병철 창업주의 고택은 문이 굳게 잠겨 있으며 내부는 일체 공개된 적 없다.

취재 당일 몇몇 매체가 이 회장의 생가를 촬영하기 위해 길가를 오갔지만, 하릴없이 담벼락만을 찍고 있었고 이 회장의 타계 소식을 접한 기자들과 시민들이 생가의 내부 공개 여부를 묻는 전화가 중구청에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해당 저택을 박물관 등으로 관광화할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정해진 바가 없다고 중구청 측은 답했다.

삼성의 이건희, 이건희의 대구, 그리고 대구의 이병철. 인교동 길모퉁이 저택에서 시작된 이들이 이룬 삼성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병철과 이건희가 꿈꿨던 삼성, 그리고 이들이 그렸던 대구와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  대구창조혁신센터에 세워진 이병철 동상/촬영=김주리 기자
▲ 대구창조혁신센터에 세워진 이병철 동상/촬영=김주리 기자

<김주리의 투머치 리뷰> 이병철의 호암 생가, 의령에 오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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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리퀘스트]

Q. 요즘 ‘10줄리뷰’ 왜 안 올라오나요

A. 빠른 시일내 ‘대구특집’으로 찾아갑니다.

▲  대구의 명물 '뭉티기'/촬영=김주리 기자
▲ 대구의 명물 '뭉티기'/촬영=김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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