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예고한 인앱결제(In-App payment·IAP) 강제 정책을 저지하고자 여야가 합의했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상임위 통과가 불발됐다. 공청회가 예정돼 있으나 중소 개발사들의 부담을 키우는 법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구글 정책을 둘러싸고 인터넷업계와 이동통신업계의 신경전까지 빚어졌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3일 국정감사에서 ‘구글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관련 개정안 6건에 대한 처리를 연기하기로 했다. 내달 4일 공청회를 열고 법안 관련 논의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당초 과방위는 국감 기간 내 전기통신사업법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국감 마지막날 최종 불발됐다. 과방위 간사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인앱결제 관련 법안을 졸속처리할 수는 없다”며 “피해 분야가와 피해액 등에 대해 충분히 듣고 해도 늦지 않다. 이번에 (처리)하는 것은 좀 어렵다”고 설명했다. 여당은 이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과방위 방송통신위원회 국정 종합감사가 열렸다. /사진=중계 영상 갈무리
▲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과방위 방송통신위원회 국정 종합감사가 열렸다. /사진=중계 영상 갈무리

앱을 모든 앱 장터에 다 올리라고요?

이번 발의안은 구글 등 해외 기업들을 겨냥해 만들어졌다. 앞서 구글은 지난달 29일 게임에만 적용했던 구글 인앱결제 의무화 조치를 구글 앱 장터에서 팔리는 모든 디지털 재화로 확대하고, 수수료 30%를 떼겠다고 발표했다. 변화된 정책은 1년 유예기간을 거친 뒤 2021년 10월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국내 인터넷기업들이 반발하자, 정치권이 나섰다. 여야가 합심해 전기통신사업법을 손질해 구글의 정책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과방위 TF는 조승래·한준호·홍정민 민주당, 박성중 국민의힘, 양정숙 무소속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법안을 통합·조정해 내놓는 데 합의했다.

이른바 ‘구글 갑질 방지’ 법안에는 앱 장터 사업자의 책임·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개발자로 하여금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게 하고, 독점적 지위를 가진 앱 장터 사업자가 특정 결제수단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각자 발의한 법안을 묶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한준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살펴보면, 일정 규모 이상의 모바일 콘텐츠 사업자가 특정 앱 장터 사업자에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경우 다른 앱 장터 사업자에게도 차별 없이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글플레이에 앱을 출시할 때 원스토어·갤럭시스토어 등에도 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업계 안팎에서는 구글을 규제하는 게 아니라 국내 개발사들의 불편을 가중시키겠단 것이라며 우려가 터져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디지털 콘텐츠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진출을 고려하면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장사 잘 되는 곳에 입점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장사 안 되는 상가도 ‘강제입점’하라는 꼴”이라며 “앱 장터마다 시스템과 정책 등이 모두 달라 개발 역량이 별도로 투입돼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만 해당된다고는 하나 대형 개발사들에게도 불필요한 자원이 투입되는 ‘발목잡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국내 앱 장터(원스토어 등)에게만 이로운 얘기”라고도 덧붙였다.

야당의 숨고르기로 법안 처리가 불발되면서 일정은 미뤄졌다. 내달 4일 열리는 공청회를 결과에 따라 법안의 향방이 결정될 전망이다.

인터넷업계·이통사는 ‘으르렁’

논란이 지속되는 와중에 업계 간 신경전도 빚어졌다. 네이버 출신인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영 국민의힘 의원이 국감에서 “구글 앱 수수료 30% 중 통신과금 방식으로 최대 15%가 통신사에게 돌아간다”고 밝힌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자료에 따르면 통신사들은 구글 앱 장터인 구글플레이에 ‘통신과금(소액결제)’ 방식의 결제수단을 제공하는 대가로 구글이 받는 수수료 30%의 절반인 15%를 가져간다.

이에 네이버·카카오 등이 속한 인터넷기업협회와 국내 스타트업을 대표하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성명을 통해 “구글의 과도한 수수료를 나눠 먹는 방식으로 콘텐츠 이용 요금 부담을 가중해온 통신3사의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통신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통신사들도 발끈했다. 23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을 대변하는 단체인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오후 10시께 입장문을 내고 “악의적 거짓 주장”이라며 “통신사의 휴대폰 결제 수수료 비중은 전체 결제액의 3~4% 수준”이라고 펄쩍 뛰었다. 수수료는 15%가량이나 전체 결제액 비중에 비춰보면 가져가는 ‘파이’가 최대 4%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또 KTOA는 “구글·애플의 자사 OS 및 앱 장터 선탑재는 제조사와 협의사항으로 통신사는 이에 개입할 수 없고 관여할 방법도 없다”며 “(수수료 15%는) 앱 장터 모델 초창기에 통신사가 시스템을 개발한 DCB의 편리성과 통신사의 과금 및 미납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는 과도한 것이 아니며, 해외도 유사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해외 사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KTOA 관계자는 <블로터>에 “인터넷 생태계는 서로 주고 받으면서 성장해왔다. 게임 개발사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도 글로벌 기업인 구글을 통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그런 논리로 따지면 국내 개발사들도 구글의 시장지배력 강화에 협조했다고 봐야 하나”고 말했다.

별안간 두 진영 간 날선 공방이 이어진 배경에는 ‘망 사용료’ 갈등이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카카오 등 CP(콘텐츠사업자)는 망 사용료를 과다하게 내고 있다고 주장해왔고, SK텔레콤(SK브로드밴드)·KT·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사업자들은 해외 CP들도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통신사는 부인하지만 계약관계상 개발사들은 (구글과 통신사의 수익구조를)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며 “통신과금 수수료로 15%를 받는다고 하는데, 이같이 높게 책정된 것도 이해가 가진 않는다. 통신과금에 대해서만 수수료를 받는지도 확인은 불가능하단 얘기”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망 사용료 논란과 맞닿은 얘기”라며 “통신사와의 각종 비용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것은 그만큼 정보 비대칭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통신사의 수익구조에 대한 실태를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구글은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경우 사업모델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앱결제 의무화를 법으로 막을 경우 개발사들에게 다른 방식의 과금을 하는 방안을 구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코리아 임재현 전무는 지난 22일 과방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전세계 어디에서도 이런 법이 통과된 적 없다”며 “이런 식으로 법안이 진행된다면 이용자와 개발자에게 책임을 지키기 위해 ‘비즈니스 모델(사업 모델)’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