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공지능대전(AI EXPO 2020)이 10월 27일~29일 코엑스에서 열린다. 약 100개 이상의 AI 업체가 한자리에 모인 대규모 행사다. 전시장에는 오전부터 꽤 많은 관람객이 찾아왔다. 마스크 착용 및 손 소독, 출입자 통제 등 방역 관리는 전반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었다.

넓은 홀 내에 빈 부스는 없었다. 인텔, 화웨이, LG전자 등 일부 대기업 부스도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은 크고 작은 스타트업이다. 국내에만 AI 스타트업이 이렇게 많았다니(그마저도 일부겠지만), 새삼 놀라운 마음이 들었다.

익숙한 기업, 익숙한 기술과 제품

다만 내심 기대했던 ‘신선함’이 모자라 아쉬웠다. 수많은 부스엔 저마다의 제품을 강조한 체험존과 팜플렛 등이 놓여 있었지만 수년 전 AI가 주목을 받을 때처럼, 시선을 확 잡아끄는 아이템은 찾지 못했다. 대신 과거와 다른 침착함, 그리고 여유가 전시장을 감도는 모습이었다.

돌아보면 지난 수년은 다양한 AI 사업 아이템과 융합 사례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아니, 여기에도 AI를 쓴다고?’ 같은 생각이 자주 들었고, 소위 ‘갖다 붙이면 다 AI’인 시기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불과 작년까진 ‘AI 기업’이라고 소개하면 일단 의심부터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모든 기술은 뜨거운 격변기를 거쳐 성숙기를 맞이한다. 이는 살아 남는 사업과 그렇지 못할 사업의 구분이 명확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동안 AI를 활용한 다양한 이색 아이템이 세상에 나왔고 실패한 프로젝트도 많다. 잠깐 눈길을 끌 순 있어도 장수하는 비즈니스에는 지속성과 실용성이 요구된다. 그런 면에서 다소 요란했던 지난 몇 년은 아마 이것이 시장에 의해 검증되는 시기였을 거다.

살아남은 인공지능

오늘 전시장에서 만난 기업들의 기반에도 큰 줄기의 공통점이 보였다. 주로 △얼굴이나 사물을 감지하는 이미지 인식 AI △기계학습 최적화 △AI 학습용 데이터 가공 △음성합성 AI 등이다. 특히 이미지 AI를 활용한 제품과 서비스가 적지 않았다.

▲  트리플렛의 AI 화재 감지기
▲ 트리플렛의 AI 화재 감지기

‘트리플렛’의 경우 발열·화재감지, 단골손님 인식, 매장 관리 등 여러 분야에 이미지 AI를 활용한 사례다. 기존 화재감지기에 카메라를 달아 연기와 발화를 시각적으로 체크하고 이를 센서가 받아들인 정보와 조합해 AI가 화재 여부를 판단한다. 연기 외에 받아들이는 정보가 많아진 만큼 작은 화재도 조기에 감지할 수 있다.

또 카페 등 단골손님이 자주 찾는 가게에는 카메라가 AI로 손님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게 했고, 매장 CCTV에 AI를 접목하면 매대가 비었을 때 AI가 이를 자동으로 감지해 관리자에게 알리도록 할 수도 있다.

▲  일반 카메라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 일반 카메라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퓨처로봇’은 얼굴 인식이 가능한 로봇을 선보였다. LG유플러스와 협업해 양지병원에 도입된 ‘AI 방역로봇’은 병원 내부를 돌아다니며 방문자들의 체온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마스크를 착용했는지, ‘턱스크’를 하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경고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개인 방역과 비대면 활동이 특히 강조되는 병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간에서 활약하기에 적합해 보였다. 적어도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사람 간 마스크 착용 시비’가 로봇과는 한결 덜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퓨처로봇의 AI 로봇 3종
▲ 퓨처로봇의 AI 로봇 3종

‘머니브레인’은 이미지와 음성학습 AI를 접목한 AI 아나운서와 AI 연예인을 데모로 선보였다. 실존 인물의 모습과 제스처, 평소 목소리와 말투를 학습시켜 진짜처럼 말하는 AI 대리인을 만드는 기술이다. 모델이 한번 만들어지면 텍스트 입력으로 실제 그 인물이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발화 영상을 만들 수 있다.

현장에서 확인한 AI 김현욱 아나운서 데모의 완성도는 상당했고, 실제 협업 사례로 MBN의 정오뉴스를 통해서는 AI 김주하 앵커가 뉴스를 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자막에 ‘AI앵커’라는 표현이 없다면 진짜와 가짜를 쉽게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추후 유명인이나 개인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AI로 구현된 머니브레인표 김현욱 아나운서. 제스처와 목소리, 표정 모두가 진짜 같았다.
▲ AI로 구현된 머니브레인표 김현욱 아나운서. 제스처와 목소리, 표정 모두가 진짜 같았다.

AI 최적화 측면에서 ‘노타’는 딥러닝 모델 경량화라는 독특한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다. 딥러닝은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데이터와 복잡한 알고리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많은 컴퓨팅 자원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무턱대고 성능만 올리면 휴대폰, 카메라 등 소형 기기에는 적용하기 어려워지는데, 모델을 압축하면서도 정확도를 유지하는 경량화 기술을 적용하면 적은 비용과 자원으로도 더 많은 영역에 AI를 탑재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온 디바이스 AI’란 이름으로 각광받은 기술 중 하나다.

AI 고도화를 위한 양질의 학습 데이터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만큼, 이를 AI로 지원하는 스타트업들도 있었다. ‘에이모’나 ‘데이터 고블린’ 등이다. 이들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AI 학습 데이터 가공 서비스를 제공하며, 기존에 사람이 수작업으로 해야 했던 라벨링·검수 작업 등의 상당 부분을 AI로 대체함으로써 작업 효율을 크게 높였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AI를 통한 에너지 효율화, 환경 보전, 보안 강화, 신약 개발, 감정 인지 등 다양한 사례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으나 소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  전시장 입구 근처에 꽤 크게 차려져 있던 에이모 부스
▲ 전시장 입구 근처에 꽤 크게 차려져 있던 에이모 부스

청년이 된 AI, 성숙함 속에 새로움 잃지 않길

확실히 이날 본 제품·서비스는 이전부터 비슷한 사례들을 봤던 탓인지 놀랍지 않았다. 주변 관람객들도 여유롭게 부스를 관람하고, 기술적 원리보다는 주로 적용 사례와 실용성 등을 묻는 모습이었다.

대신 그 안에는 모종의 성숙함이 감돌았다. 몇 년의 좌충우돌 끝에 진짜 AI가 필요한 영역들이 어느 정도 정리된 느낌이다. 아마 올해도 여전히 자리를 지켜낸 기업들과 그들의 제품, 서비스가 당분간 큰 변화 없이 AI 업계의 트렌드를 만들어 가리란 예상이다.

다만, 익숙함과 사업적 안정에 빠져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지양돼야 할 것이다. 남과 같은 걸 해선 남 이상 되기 어렵고, 스타트업들이 새로움을 포기할수록 혁신의 속도도 늦춰진다. 일개 개인으로서 그들에게 비현실적인 도전을 강요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년엔 지금보다 더 새로운 얼굴이 함께하길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