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콘텐츠뷰'는 게임, 드라마, 영화 등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콘텐츠를 감상·체험하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풀어보는 기획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치 않는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핵 폭발로 인해 도시는 폐허가 됐다. 을씨년스러운 공기 속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는 시체가 폐지처럼 널부러져 있다.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낄 틈도 없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생존자들. 이런 절망의 순간에 나타나 음식을 주고 연극까지 보여주겠다는 제안을 한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살육호텔'의 이야기다.

'뒤틀린 친절'과 '숨겨진 진실'

'레오' 가족은 배고픔을 잊고 한 순간만이라도 행복한 딸의 모습을 보기 위해 내키지 않는 연극 공연을 관람한다. 호텔 연회장 같은 내부에는 관객들을 위한 식사가 마련된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온 듯 맛있는 스테이크 만찬이 이어지자 관객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  평화로운 한 때를 즐기는 레오 가족들. /사진=살육호텔 영상 갈무리
▲ 평화로운 한 때를 즐기는 레오 가족들. /사진=살육호텔 영상 갈무리

연극을 준비한 호텔 지배인 겸 연출자 마티아스는 "이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연극일 뿐"이라며 "관객 분들은 배우와 헷갈리지 않게 가면을 써 달라"고 말한다. 식사 도중 연극이 시작되고 관객들은 하나 둘 흩어져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감상하며 호텔 내부 이곳 저곳을 둘러본다.

딸 '알리스'의 손을 잡고 배우 '라켈'을 따라가던 '레오'와 '야코브'는 방심한 사이 딸을 눈 앞에서 놓치고 만다. 순식간에 딸의 행방이 묘연해진 상황에서 레오와 야코브는 호텔과 연극의 끔찍한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대가 없는 호의'로 착각했던 순간부터 모든 일은 시작됐다.

살육호텔 = 현실 사회?

영화는 처음과 끝이 동일하다. 폐허가 된 도시를 비추며 계속될 생존의 고통을 암시하는데, '괴물이 돼 편안하게 사는 삶'과 '배고픔과 두려움에 떠는 인간의 삶'을 제시한다. 두 선택지 모두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발단과 결말이 '암울한 고통'을 그린다면 전개, 위기, 절정의 순간은 천국과 지옥의 극단을 보여준다. 행복했던 순간은 잠시 딸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과 고통이 엄습한다. 절정에 다다르면 생존의 위협까지 받게 된다.

▲  지배인이자 연출가인 마티아스. /사진=살육호텔 영상 갈무리
▲ 지배인이자 연출가인 마티아스. /사진=살육호텔 영상 갈무리

살육호텔은 공포영화로 보기에는 어딘가 밋밋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스테리 스릴러 범주에서도 합격점을 줄 만큼 치밀한 개연성과 인간의 심리를 파고든 농밀한 연출을 보여주진 않는다.

다만 등장 인물과 그들의 상황을 통해 현실 사회를 풍자하려는 의도가 인상적이다. 호텔의 지배인이자 연극 연출자인 마티아스는 이 시대의 지배층이다. 계층 서열 상 가장 정점에 선 인물로 그의 의도에 따라 배우들을 조종하고 관객(피지배층)을 끌어모은다. 권력을 쥔 지도자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그가 소유한 호텔은 '국가' 혹은 '조직'을 의미한다.

'라켈'을 비롯한 '배우'들은 '중간 관리자'로 묘사되고 있다. 지도자의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관객들은 자신보다 낮은 계층으로 바라본다. 마티아스의 독재 속에 불만을 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못한 응어리를 품는 집단이다. 결국 앙금이 쌓이다 못해 터져버린 라켈의 마지막 한 방은 독재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총성과도 같았다.

▲  스스로 가면을 쓰면서 불행은 시작됐다. /사진=살육호텔 영상 갈무리
▲ 스스로 가면을 쓰면서 불행은 시작됐다. /사진=살육호텔 영상 갈무리

주인공 레오를 비롯한 영화 속 관객들은 전형적인 피지배층이다. 권력 집단은 이들을 이용하기 위해 음식을 베풀지만 '가면'을 씌워 낮은 계급임을 구분시킨다. 관객을 죽이고 시체로 음식을 만드는 악순환의 경우 피지배층이 권력 집단에 희생되는 모습을 극단적으로 활용한 장치다. 관객들이 배우가 되는 전개를 통해 피지배층이 권력에 다가가는 현실을 묘사한다.

'라르스'를 비롯한 식당 직원들은 권력 집단 내 하위 계층이자, 노동자를 대변한다. 마티아스의 명령을 받고 일하는 식당 직원들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잊어버릴 만큼 기계적이고 차갑게 변해간다. 배우였다가 식당 직원이 된 라르스의 모습에서 권력 집단에게 버림받고 '끈 떨어진 관리자'의 이미지가 스쳐간다.

▲  살육호텔을 빠져나오는 레오 가족의 뒤로 햇살이 비춘다. /사진=살육호텔 영상 갈무리
▲ 살육호텔을 빠져나오는 레오 가족의 뒤로 햇살이 비춘다. /사진=살육호텔 영상 갈무리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철저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을 지 모른다. 핵 폭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억지로 '가면'을 쓴 채 부당한 희생을 당하고 있지는 않을까. 현실 사회의 '경쟁'과 영화 속 '살육'이 비슷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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