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작고하면서 지분 상속 문제는 삼성그룹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4.18%, 삼성생명 20.76%, 삼성물산 2.84% 등을 상속 자산으로 남겼죠. 지분 가치는 시시각각 바뀌지만 지난 30일 종가 기준 대략 17조8000억원 안팎입니다.

국내 상증세법(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상속세율은 최고세율 50%가 적용됩니다. 여기에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은 20%가 가산돼 총 60%가 됩니다. 상속세는 약 10조7000억원 안팎으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입니다. 고인의 사후 6개월내 유족이 상속세 신고를 할 경우 세율 3%가 감면(실질세율 58.2%)되는데 이 경우 액수는 10조4000억원으로 줄어듭니다. 무려 3000억원의 차이가 발생하니, 늦어도 내년 4월까지 이 회장이 가지고 있던 지분이 어떻게 상속될지 정해질 듯 합니다.

재벌가 경영권 승계의 핵심 과제는 '지배력 훼손 최소화'입니다. 삼성그룹은 이 회장이 생전 보유하던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지분을 가능한 한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등 지배주주들에게 그대로 넘기는 게 그룹 지배력 훼손을 최소화하는 길입니다. 이 큰 줄기를 이해하면 삼성그룹의 상속과 경영권 승계 문제를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  삼성그룹 지배구조./그래픽=메리츠증권
▲ 삼성그룹 지배구조./그래픽=메리츠증권

삼성그룹 지배력의 핵심은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삼성물산에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들은 삼성물산 지분 31.55%를 보유하고 있죠. 그리고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직접 보유 지분이 5.01%이며, 삼성생명을 통해선 8.51%를 갖고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4.18%)과 이재용 부회장(0.70%)의 삼성전자 지분까지 합치면 총 18.40%입니다.

하지만 이번 상속에는 삼성물산보다 삼성전자가 더 중요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가지고 있던 삼성물산 지분이 적기도 하고, 상속 자산의 80%를 차지하는 게 삼성전자이기 때문입니다.

포커스를 삼성전자에 맞춰봅니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4.18%, 총 2억4927만3200주입니다. 상속세는 이건희 회장이 타계한 10월 25일을 기준으로 전후 2개월 종가 평균값으로 산정됩니다. 지난 8월 25일부터 지난 10월 30일까지 삼성전자의 평균 종가는 5만8506원이니, 이를 보유 주식 수와 곱하면 총 14조5840억원이 나옵니다. 이를 기준으로 유족들이 삼성전자 지분을 물려받을 때 내야 할 실질상속세는 총 8조4879억원이 되겠군요.

▲  상속세 적용 시점(8월 25일)부터 10월 30일까지 삼성전자 주가 추이./그래픽=이일호 기자
▲ 상속세 적용 시점(8월 25일)부터 10월 30일까지 삼성전자 주가 추이./그래픽=이일호 기자

유족들 입장에서 상속세를 덜 내는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오는 12월 24일까지 삼성전자 주가가 낮게 유지되는 겁니다. 상속세 산정 기간 삼성전자의 평균 종가가 5만7000원일 경우 상속세는 8조2694억원, 5만6000원일 경우 8조1243억원, 5만5000원일 경우 7조9792억원으로 떨어집니다. 오는 12월 24일까지 삼성전자 주식의 평균 종가 1000원 당 약 1500억원의 돈이 왔다갔다 하는 겁니다.

▲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주식 총수에 주가를 곱한 뒤 실질상속세율(58.2%)을 반영한 결과. /그래픽=이일호 기자
▲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주식 총수에 주가를 곱한 뒤 실질상속세율(58.2%)을 반영한 결과. /그래픽=이일호 기자

삼성전자가 통상 3분기 실적 발표 때 냈던 주주 환원 계획을 4분기 실적발표 시즌인 내년 1월로 미룬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굳이 친 주주적 배당책을 일찌감치 낼 경우 주가가 올라 상속세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증권가는 삼성전자가 주주 환원 계획 발표를 미룬 데 대해 내년부터 배당 성향을 키우기 위한 수순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내년부터는 ROE 개선을 위해 장기성장을 위한 설비투자 뿐 아니라,‘특수관계인’ 및 모든 주주를 위한 강도 높은 배당정책이 예상된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삼성전자가 배당 정책을 냈을 때 주가 흐름은 어땠을까요. '배당성장 할인 모형'에 따르면 배당성향이 강화될 경우 땐 주식의 내재가치가 높아져 적정 주가 수준이 높아집니다.

▲  2017년, 2016년, 2015년 배당 정책을 발표 시점부터 연말까지 주가 추이./그래픽=이일호 기자
▲ 2017년, 2016년, 2015년 배당 정책을 발표 시점부터 연말까지 주가 추이./그래픽=이일호 기자

다만 이는 이론일 뿐 실제 주가 추이와는 다릅니다. 2017년 삼성이 배당 성향을 대폭 강화했을 때는 이런 추세가 나타나지 않았죠. 같은 해 10월 31일 주가는 275만4000원(50 대 1 액면분할 전)에서 이튿날 286만1000원까지 급등했지만 이후 줄어 연말 254만800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잉여현금흐름의 50%를 배당에 쓴다고 했던 2016년의 경우 반대로 배당정책 발표일(11월 29일) 당시 167만7000원이었던 게 연말인 12월 29일 180만2000원으로 7.45% 올랐습니다. 11조3000억원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선언했던 2015년 주가는 배당정책 발표일(10월 29일) 132만5000원에서 그해 12월 30일 126만원으로 4.01% 하락했네요.

배당정책 강화가 적정 주가 수준을 높이는 건 맞지만, 주가는 그보다 대내외적 변수에 더 민감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삼성전자가 만약 2021년 이후 배당성향을 강화하려 한다면, 굳이 3분기 실적 발표 때 그 내용을 넣을 필요가 없기도 합니다. 증권가는 상속세 납부 등의 이유로 내년부터 삼성전자의 배당성향이 기존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봅니다.

삼성전자는 2017년 주주 환원 정책을 발표하면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연간 배당 규모를 9조6000억원으로 늘린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올해 1~3분기 분기별 배당금은 주당 354원으로, 4분기에도 같은 액수를 배당한다는 가정하에 총 배당액은 9조6184억원(우선주 포함)이 될 전망입니다. 이 가운데 이건희 회장 지분이 받는 배당금은 3539억원이죠.

▲  삼성전자가 2017년 예고한 대로 2020년 말 특별 주주배당을 할 경우 약 7조4000억원 가량 일회성 배당금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자료=메리츠증권
▲ 삼성전자가 2017년 예고한 대로 2020년 말 특별 주주배당을 할 경우 약 7조4000억원 가량 일회성 배당금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자료=메리츠증권

여기에 4분기는 삼성전자가 2017년 선언한 잉여현금흐름의 50%(M&A 금액 포함)에 대한 특별주주환원도 예정돼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컨퍼런스콜에서 정확한 규모를 밝히지 않았지만,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지난 30일 리포트에서 실적·투자 추정치를 수정 반영한 특별주주환원 재원이 7조4000억원에 달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삼성전자가 계획대로 특별배당을 할 경우 이 회장이 받는 일회성 배당도 3000억원을 상회할 전망입니다.

삼성전자가 내년 이후 얼마만큼 배당을 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리고 상속세에 대해 2021년부터 5년 간 연부연납을 한다는 가정하에, 매년 세금을 빼고도 3000억원가량 현금이 들어오는 건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피상속자들에게 도움이 될 게 확실합니다.

다만 유족들이 상속세를 내기 위한 돈은 여전히 부족할 것으로 보입니다. 증권가는 유족들의 상속세 부족분을 약 3조5000억원 가량으로 보고 있고, 이는 배당을 늘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닙니다. 상속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이에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지배주주들이 삼성그룹 계열사 지분 일부를 처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상황은 더불어민주당의 '보험업법' 개정 시도와 맞물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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