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형 연예기획사인 쟈니스 소속의 그룹 스노만(Snow Man)이 최근 올린 유튜브 영상에 케이팝(K-POP) 가수 이름을 '숨은 태그'로 건 것이 드러나면서 망신을 당했다. 케이팝의 인기에 의존해 대중 접근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  스노만 공식 유튜브 채널 갈무리
▲ 스노만 공식 유튜브 채널 갈무리

지난달 17일 스노만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君の彼氏になりたい(너의 남자친구가 되고 싶어)’라는 곡의 녹음 영상 공개본이 올라왔다. 스노만의 두 번째 싱글인 ‘KISSIN' MY LIPS/Stories’의 일반 판매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유튜브 영상에서는 태그(tag)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숨은 태그를 찾는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해보면 유명 일본 가수의 이름은 물론 BTS, 防弾少年団(방탄소년단), 슈퍼엠(SuperM), 엑소(EXO), 샤이니(Shinee), NCT, 트와이스(TWICE) 등 한국을 대표하는 인기 아이돌 그룹의 명단이 줄줄이 나타난다.

▲  스노만 유튜브 영상에 숨어 있는 케이팝 아이돌 그룹명 태그
▲ 스노만 유튜브 영상에 숨어 있는 케이팝 아이돌 그룹명 태그

일본의 유명 연예 기획사가 별 관계 없는 케이팝 그룹명을 숨은 태그로 건 것은 이례적이다. 일반적으로 태그를 붙이는 이유는 자신들의 콘텐츠를 보다 효과적으로 노출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대중의 콘텐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작성자 스스로 몇 개의 주요 단어(Tag)를 의도적으로 붙이는 것이다.

특히 일본을 대표하는 연예 기획사인 쟈니스가 여러 케이팝 가수의 이름을 태그로 걸면서까지 노출 증대를 꾀한 것은 제이팝(J-POP)이 처한 지금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얼마 전 쟈니스의 간판 그룹인 아라시가 “케이팝은 쟈니스가 쌓은 유산의 일부”라며 케이팝의 위상을 폄하했던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지난 9월 미국 그래미 어워즈는 아라시와의 인터뷰를 가졌다. 브루노 마스가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은 영어 노래 ‘Whenever You Call’을 발표한 직후였다.

▲  일본 그룹 아라시 /그래미어워즈 홈페이지 갈무리
▲ 일본 그룹 아라시 /그래미어워즈 홈페이지 갈무리

그래미는 인터뷰 중 “케이팝과 한국 음악, 대중문화는 진정한 글로벌 문화 현상이 되었는데 케이팝의 이러한 성장이 제이팝의 인기에도 영향을 주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아라시는 “쟈니 키타가와(쟈니스의 전 대표이사)는 50년 이상 춤과 노래를 하는 보이밴드를 프로듀싱했다. 그가 아시아 엔터테인먼트에서 쌓아 올린 모든 유산이 이제 다른 공간에서도 널리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게 사실 더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은 쟈니가 촉발시킨 일들을 즐길 수 있다”며 “제이팝과 케이팝 사이에는 어떠한 영향이나 경쟁이 정말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9년 데뷔한 아라시가 21년 만에 처음으로 영어로만 이뤄진 신곡을 발표한 것 자체가 케이팝을 의식한 행보라는 지적이다. 일본 대중지 도쿄스포츠는 지난 9월 아라시가 이번 곡을 전부 영어로 구성한 것은 ‘소속사인 쟈니스가 방탄소년단을 의식한 결과’라고 보도했다.

도쿄스포츠는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번 곡은 지금까지의 아라시의 세계관과 전혀 다른 결과물”이라며 “지금 쟈니스는 미국에서 활약하는 BTS를 이상할 정도로 의식하고 있다”고 알렸다.

▲  방탄소년단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방탄소년단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전 세계 음악 시장 매출에서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국가에 올라 있다. 이 때문에 일본 가수들은 자국에만 머물러 활동해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은 오히려 제이팝이 고립되도록 만드는 독이 됐다. 세계적 흐름과 동떨어진 음악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졌고 점점 일본 음악계는 자신들만 열광하는 갈라파고스로 전락했다. 내수 시장이 작아 일찍부터 해외를 겨냥한 케이팝이 오랜 시간 세계 진출과 실패를 반복하며 마침내 국제적인 문화 콘텐츠로 거듭난 것과는 천양지차다.

오랜 기간 일본 언론들은 ‘케이팝은 예술가의 창작이 아닌 정부 주도의 국책사업’이라고 깎아내리며 애써 한류의 세계화를 부정하고 외면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을 깨닫고 한국의 성공 모델을 따라가고 있음을, 그리고 현재 제이팝의 현주소가 어떤지를 이번 스노만의 태그 해프닝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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