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이면 윤곽이 나올 줄 알았던 미국 대선 결과가 아직도 안갯속에 잠겨있습니다. 승기는 조셉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 기운 듯 보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결과에 불복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불과 열흘 전 예견한 그대로입니다.

상황은 완전한 ‘폭풍전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의 불법 여부를 연방대법원에 물을 태세입니다.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구성원은 대법원장와 8명의 대법관 등 9명인데, 현재 보수 성향의 법관이 6명으로 진보 성향(3명)보다 더 많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10월 26일 대법원장으로 임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은 대표적 보수 성향 법관입니다. 우편투표 불복 가능성을 인지했던 민주당이 배럿의 대법관 선출에 굉장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아무리 중립적인 법원이라 해도, 중대한 결정에 있어 사람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  지난 10월 26일 백악관에서 에이미 코니 배럿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원장이 선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사진=백악관 홈페이지
▲ 지난 10월 26일 백악관에서 에이미 코니 배럿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원장이 선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사진=백악관 홈페이지

지난 10월 인사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불복 시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는 “가정에 기반한 답변을 하지 않은 긴스버그 전 대법관을 따르겠다”고 밝혔습니다. 유보적이면서, 또 회피적 발언이기도 합니다.

현재로선 변수가 너무 많아 보입니다. 일단 개표 결과가 나오더라도 소송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당초 공식 투표일인 12월 14일까지 선거인단이 구성되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내년 1월 20일인데, 원래 이날까지 하원에서 대통령이 선출되지 못할 경우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맡게 됩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내년 두 명의 미국 대통령이 동시에 취임식을 치르게 될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습니다.

▲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에 맞서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인수위 홈페이지를 열었다./사진=인수위 홈페이지 갈무리
▲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에 맞서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인수위 홈페이지를 열었다./사진=인수위 홈페이지 갈무리

대선의 향배와 별개로, 이번 선거는 미국 대선 역사상 최악의 선거로 거론됩니다. 현직 대통령이 나서서 우편투표를 부정했고, 상대편 후보는 그에 맞서 인수위원회 홈페이지를 신설했습니다. 이에 양측 대선 후보 지지자들이 가두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선거 불복과 개표 중단을, 바이든 지지자들은 중단 없는 개표를 외칩니다. 일국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서 엄청난 혼란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번 대선으로 민주주의의 종언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상징과도 같은 국가에서 선거 불복 사태가 벌어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진위를 알 수 없는 각종 음모론과 부정선거 주장이 튀어나오는 상황입니다.

▲  사진=픽사베이
▲ 사진=픽사베이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객관적 검증’이 어려운 현재의 선거 시스템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큐어넌(QAnon·우익 음모론 집단)들을 중심으로 선거와 관련한 각종 의혹이 뉴미디어를 통해 노출되고 있습니다. 그 주장들은 어떠한 필터링도 없이 대중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며 생각에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은 미디어가 온 세상을 주시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선거와 관련한 잡음이 이어진다면,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부정선거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봐도 매년 선거마다 인터넷 공간을 통해 부정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현대 국가의 바탕이 되는 민주주의는 수단 측면에서 ‘다수결의 원칙’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환경은 투표가 조작될 수도 있고(부정선거), 투표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검증하기도 어렵습니다. 현대에 접어들어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엄청난 결함이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되느냐와 무관하게,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데 있어 적합한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현대 시민들의 고찰이 필요해 보입니다. 현 투표 방식이 객관성을 확보하거나, 또는 객관성을 담보할 새로운 투표 방식을 찾지 못한다면 앞으로 지금과 같은 사태는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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