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중국 전통 의복이라고 주장했던 중국 페이퍼게임즈의 모바일 스타일링 게임 '샤이닝니키'가 한국 서비스 종료 결정을 내렸다.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자 '중국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한국판 서비스를 종료하겠다고 공지한 것. 국내 유저들은 페이퍼게임즈의 강경한 태도에 '차라리 잘 됐다'라는 의견을 보이면서도 환불 규정 등을 명시하지 않은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 기업"…한국은 돈벌이에 불과?

샤이닝니키의 한국 서비스 종료는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지난 5일 밤 11시58분, 샤이닝니키 공식카페에는 장문의 공지 글이 게재됐다. 해당 공지는 한국판 서비스 종료를 결정했다는 안내였다. 표현상 '안내'일 뿐 일방적인 '통보'를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  /사진=페이퍼게임즈코리아
▲ /사진=페이퍼게임즈코리아

공지 글에서 페이퍼게임즈 측은 "최근 전통 의상 문화에 대한 논란에 깊이 주목하고 있다"면서도 "중국 기업으로서 우리 입장은 조국과 일치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의관제도는 중국과 동일하다는 관점을 밝힌 이하 문장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페이퍼게임즈 측은 공지 글 중간에 중국 웨이신 기사가 실린 홈페이지 링크를 첨부했다. 해당 기사는 "한국은 조선으로 불릴 시기 명나라와 문화 교류를 통해 많은 특성을 배우고 빌렸다"며 "고대 한국에서는 자체적인 복장 체계가 없었을 뿐 아니라 한국 왕실 의상은 명나라 황제가 수여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모든 역사의 중심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한복 또한 당시 명나라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의복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다.

해당 기사를 첨부한 페이퍼게임즈는 "게임을 통해 전 세계 유저에게 중국 전통 문화의 매력을 보여드리고 싶은 초심을 고려해 국가의 문화적 존엄성을 수호하는 기초에서 최대한 모순의 심화를 피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  /사진=샤이닝니키 공식카페 갈무리
▲ /사진=샤이닝니키 공식카페 갈무리

페이퍼게임즈의 입장을 분석하면 한국 내 샤이닝니키 마케팅 전략은 기획 단계부터 철저하게 위장된 것으로 보인다. 샤이닝니키는 지난달 29일 한국 서비스 전부터 '전작 아이러브니키의 후속작' 혹은 '3D 모델링을 도입한 스타일링 게임'이라는 문구를 내세웠을 뿐 '중국 문화'에 대해 일절 내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4일 한국 출시를 기념해 출시한 한복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삭제한 후 돌연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공지글 마지막 부문에서는 페이퍼게임즈가 중국 기업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국내 유저 및 언론에 느낀 불쾌감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페이퍼게임즈 측은 "유감스럽고 분노스러운 것은 논란을 일으킨 의상 세트 폐기 공지를 안내한 후에도 일부 계정에서 여전히 중국을 모욕하는 급진적 언론을 쏟아내 우리의 마지막 한계를 넘었다"며 "(우리는) 중국 기업으로서 이런 언론과 행위를 단호히 배격하고 국가의 존엄성을 수호한다. 이에 따라 한국판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  페이퍼게임즈가 샤아닝니키 공지글에 첨부한 중국 웨이신 기사 내용 중 일부. /사진=중국 웨이신 홈페이지 갈무리
▲ 페이퍼게임즈가 샤아닝니키 공지글에 첨부한 중국 웨이신 기사 내용 중 일부. /사진=중국 웨이신 홈페이지 갈무리

일반적으로 게임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면 유통 및 개발사가 종료 일시와 환불 규정에 대해 안내하지만 페이퍼게임즈는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공지글 말미에 6일부터 게임 다운로드 및 애플리케이션(앱) 내 결제를 차단하며 다음달 9일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밝혔지만 기존 결제 유저에 대한 보상이나 환불 규정은 명시하지 않았다.

페이퍼게임즈의 한국 지사인 페이퍼게임즈코리아 측은 <블로터>에 "환불에 대한 계획은 현재 본사와 논의중인 단계"라며 "아직 관련 일정에 대해서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화계 동북공정, 중국계 게임사로 번질까

페이퍼게임즈의 샤이닝니키 서비스 종료는 지난 5일 한복 콘텐츠 삭제가 발단이 됐다. 샤이닝니키는 지난 4일 한복 아이템 '품위의 가온길', '세월 속 한울' 등을 출시했다.

그러나 페이퍼게임즈는 관련 콘텐츠 출시 하루 만인 지난 5일 "업데이트 아이템 관련 여러가지 논쟁이 발생한 부분을 인지해 내부 긴급 회의를 진행했다"며 "불미스러운 논란으로 유저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점 깊이 사과드린다. 해당 아이템들은 향후 어떤 국가 서비스에서도 출시되지 않으며 획득한 아이템도 모두 폐기 처리됨을 안내한다"고 공지했다.

이는 한국에 개설된 네이버 공식카페에 올라온 공지였지만 국내 유저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논란'이라고 표현한 부분도 현지 네티즌이 '한복은 중국의 복장'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돼 국내 유저들의 공분을 샀다.

▲  /사진=구글플레이 스토어 내 샤이닝니키 소개 페이지 갈무리
▲ /사진=구글플레이 스토어 내 샤이닝니키 소개 페이지 갈무리

국내 네티즌들은 "현재 중국 및 일부 중국인들의 SNS에서 한복을 비롯한 한국의 문화·역사를 강탈하려 한다"는 의견과 함께 '한복 챌린지' 등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한복을 중국의 전통 의복으로 규정한다는 게시글을 올리며 문화계 동북공정에 동참하고 있다. 페이퍼게임즈도 '논란', '이슈', '분쟁', '상처'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서비스 당사자인 한국 유저 대신 중국 정부와 해당 국가 거주자에게 사과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국내 유저들은 즉각 반발하며 공식카페에 환불 및 보상에 대한 문의를 이어갔다. 샤이닝니키는 하루 만에 구글플레이 스토어 내 평점이 1점대(5점 만점)로 내려 앉는 등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페이퍼게임즈는 샤이닝니키에 대해 거센 비난 여론이 일자 한국 론칭 9일 만에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중국의 문화계 동북공정에 동참하는 어조를 한층 강조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중국 국경 내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것으로 만드는 동북 쪽 변경지역 연구 프로젝트다. 최근에는 옛 고구려, 발해 지역을 비롯해 한반도 역사와 문화가 중국의 것이라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  이미 2018년 출시한 천애명월도에서 한복을 한국 의상이라고 표현했다는 국내 네티즌의 트윗(왼쪽)이 올라오자 중국인으로 보이는 회원이 명나라 시대를 언급하며 반박하고 있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 이미 2018년 출시한 천애명월도에서 한복을 한국 의상이라고 표현했다는 국내 네티즌의 트윗(왼쪽)이 올라오자 중국인으로 보이는 회원이 명나라 시대를 언급하며 반박하고 있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문제는 문화계 동북공정의 확산 가능성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게임업계에 중국계 자본이 대거 유입된 만큼 문화계 동북공정이 끊임없이 자행될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일부 국내 게임사 뿐 아니라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대형 타이틀 유통사도 중국 자본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며 "여전히 중국 측은 현지 판호(서비스 허가권)나 대규모 투자 등 게임업계 생태계에서 국내 게임사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기조로 임하기 때문에 제2의 샤이닝니키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게임업계 뿐 아니라 문화계에서도 이런 조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7일 방탄소년단(BTS)가 '벤 플리트상'을 수상하고 리더인 RM이 대표로 한 수상소감 이후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문화계 동북공정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강도 높게 진행되는 상황이다. 당시 RM은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한·미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수상소감이 전해지자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BTS가 전쟁에 희생된 중국 군인을 존중하지 않았고 중국을 모욕하고 있다"는 빈약한 논리로 'BTS 보이콧(거부운동)'에 나섰다. BTS는 한국과 미국의 친선을 위해 설립된 단체에서 주는 상을 받고 6·25에 대해 간단한 의견을 남겼을 뿐이지만 중국 네티즌들은 '모욕'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불매 운동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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