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한창이던 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州)에선 주민투표가 이뤄졌다. 이날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 가운데 58%가 ‘주민발의안 제22호’에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는 41.7%였다. 결과를 본 우버·리프트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앞서 캘리포니아주는 운전·배달기사 등 플랫폼 종사자도 자영업자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직원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AB5법을 올해 1월부터 시행했다. 법에 따르면 임시계약직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운영해온 우버·리프트·도어대시·인스타카트 등 플랫폼 기업들은 이들을 모두 고용해야 한다. ‘인건비 폭탄’을 염려한 이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AB5법을 피하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은, 주민투표였다.

우버·리프트 등은 투표에서 이기기 위해 2억500만달러를 쏟아 부었다. 우리 돈으로 2200억원이 넘는 비용이다. <테크크런치>는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비싼 법안이 됐다”고 평가했다. 우버·리프트 최고경영진은 주민발의안 제22호가 통과되지 않으면 주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운전기사들이 생계를 잃게 될 거란 주장도 펼쳤다. <더 버지>에 따르면 앱을 이용할 때마다 법이 통과되면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요금이 인상된다는 식의 팝업 메시지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자들은 승차공유를 요청하려면 이 같은 메시지에 ‘확인’을 눌러야 했다. <더 버지>는 “우버의 승리는 (임시직 경제에 관한) 다른 주의 노동법의 선례가 될 뿐만 아니라 수백만명의 유권자들과 쉽게 소통 할 수있는 방법을 가진 거대 기업들이 그들이 원치 않는 법에 반대하기 위해 로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발의안 제22호는 모바일 앱 등을 통해 스스로 등록한 플랫폼에서 일하는 운전·배달기사 등의 지위를 독립계약자로 유지해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신 최저임금의 120%를 보장하며 주당 15시간 이상 운전 시 고용주가 제공하는 평균금액의 절반 정도를 건강관리기여금으로 운전기사에게 지원한다. 의료비, 작업 중 부상에 대한 산업재해보험, 차별·성희롱 방지, 자동차 사고 및 책임보험 등도 보장한다. 단, 운전시간 계산 시 대기시간은 포함되지 않는다. <포춘>은 “대다수 임시직 경제 종사자에게는 새로 주어지는 혜택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직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것보다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법안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 내용을 손보려면 주 입법부 8분의 7이 찬성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어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공유 경제』저자인 아룬 순다라라잔 뉴욕대 교수는 <더 버지>와의 인터뷰에서 “유권자들이 AB5법과 새 이니셔티브(주민발의안 제22호)를 두고 노동법상 장단점을 비교했을지 의문”이라며 “(유권자들은) 플랫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서비스의 중단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플랫폼 쪽에 투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시직 경제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결과는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최고경영자(CEO)는 “(주민발의안 제22호는) 임시직 근로자들이 받을 보호를 추가하는 동시에 운전기사들이 중시하는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유지했다. 새로운 실용적인 접근방식”이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 및 전세계 정부와 협력하는 게 우리의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테크크런치>는 “사업모델을 유지하는 법률에 대한 우버의 야망은 전세계적”이라고 말했다.

우버를 비롯한 플랫폼업계는 추후 주민발의안 제22호처럼 기존 노동법 적용을 피해가되 ‘절충안’을 내놓는 방안을 구상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들이 마련하는 대안의 수준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한편, 국내서도 플랫폼 노동자의 처우를 둘러싼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배달플랫폼업계에서는 지난달 노동자와 사용자가 처음으로 플랫폼 노동자 권익 보장에 관한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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