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앞서 GS건설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에 뛰어든 이유를 비즈니스 측면에서 분석했었죠. GS건설은 국내 건축시장의 침체와 해외 플랜트 공사의 대규모 적자 등으로 성장이 더뎌진 상황입니다. GS건설은 건설업의 활로를 '스마트 시티(첨단기술을 활용한 미래지향적 도시)'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극복하려고 하고, 수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에는 GS그룹 차원에서 두산인프라코어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 보죠. 먼저 GS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왼쪽 허창수 GS그룹 초대회장, 오른쪽 허태수 GS그룹 회장./사진=GS그룹
▲ 왼쪽 허창수 GS그룹 초대회장, 오른쪽 허태수 GS그룹 회장./사진=GS그룹

GS그룹은 미국의 포드와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과 흡사합니다. 이들 그룹은 가족이 소유하고 있고, 가족이 경영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죠. 가족기업으로 출발해 회사를 대그룹으로 일궜고, 가족 간 불화를 막고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룰(Rule)'이 있다고 합니다. 전문경영인은 회사가 어려워지면 일자리를 잃을 뿐이지만, 가족은 자녀의 장래를 포함해 모든 걸 잃게 되기 때문이죠.

발렌베리그룹은 1856년 오스카 발렌베리가 스톡홀롬에 엔스킬다은행을 설립하면서 출범했습니다. 발렌베리는 제조업과 금융 분야를 영위하고 있는데요.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일렉트로룩스와 에릭슨 등이 발렌베리그룹의 계열사입니다.

그룹의 지배구조는 공익재단인 발렌베리재단이 정점에 있고, 아래 투자형 지주사인 인베스터(Investor AB)를 두고 있습니다. 그 아래 수평적으로 계열회사를 두고 있습니다. 그룹 경영은 인베스터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가족이 금융과 제조업을 번갈아 맡고 있습니다. 현재 5대째 이어지고 있는데, 인베스터 회장인 야콥 발렌베리가 제조업을, 마르쿠스 발렌베리가 금융을 담당합니다.

GS그룹의 지배구조는 포드와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포드는 1903년 헨리 포드가 창업해 4대째 기업 승계가 이뤄졌습니다. 현재 포드는 가문의 86명의 자손들이 A형주 지분 2%와 B형주 97.4%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체 의결권의 40% 이상을 포드 가문이 보유하면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죠. 포드는 회사의 주요한 의사결정을 가족회의를 통해 조정한다고 합니다.

GS그룹은 2004년 LG그룹에서 분리되면서 출범했습니다. LG는 1941년 구인회 회장과 허만정 회장이 '65:35'의 지분으로 공동 창업한 기업입니다. 창업한 지 60년 넘어가면서 창업주의 자손들이 많아졌고, 지분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LG와 GS로 계열분리를 하게 됐습니다. GS그룹은 자산총액이 66조원으로 재계 8위(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 기준)의 대그룹입니다.

▲  ㈜GS 지분 현황./자료=금융감독원(2020년 2분기 기준)
▲ ㈜GS 지분 현황./자료=금융감독원(2020년 2분기 기준)

GS그룹의 지배구조는 투자형 지주사인 ㈜GS가 에너지와 건설, 유통 등 계열회사를 지배하는 형태입니다. 올해 2분기 기준 지주사 GS에는 허태수 회장을 비롯해 48명의 특수관계인이 51.32%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허태수 그룹 회장은 지분 2.12%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GS그룹은 회장이 그룹의 경영을 총괄하고, 계열사는 전문경영인과 오너일가가 경영을 맡는 구조입니다.

회장은 가족회의에서 추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해 GS그룹 초대 회장으로 15년 째 그룹을 이끌던 허창수 회장(현 GS건설 회장)이 물러나고, 허태수 회장(전 GS홈쇼핑 부회장)이 취임했습니다. 그룹 안팎의 사업환경이 바뀌면서 변화가 필요했다는 게 허태수 회장이 등판한 이유였습니다. 이번 결정도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죠.

GS그룹의 지배구조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모델과 흡사하고, 지분구조와 오너십은 미국의 포드와 흡사합니다. GS그룹의 가풍은 형제 간 분쟁이 없고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며 신뢰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주사의 지분을 잘게 쪼갠 것도 오너일가 중 특정인에게 지배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하고, 양보하고 화합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재계는 GS의 이 같은 가풍이 4세 때에도 무리없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합니다. GS그룹의 '유교적 가풍'은 앞으로도 가족경영을 가능하게 할 뼈대가 되고 있습니다.

기업경영도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변화의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가족기업의 후손들이 각자의 역할을 평가하고 불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GS 주요 인물 가계도./자료=GS그룹 등
▲ GS 주요 인물 가계도./자료=GS그룹 등

이전까지 GS그룹은 창업주인 고 허만정 회장의 손자들이 주요 사업 부문을 맡아 왔습니다. 장남인 허창수 GS건설 회장(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 장남)은 그룹 경영과 건설 부문을, 허명수 GS건설 전 부회장(허준구 4남)은 형을 보좌해 GS건설의 경영을 담당했습니다.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과 허진수 GS칼텍스 이사회 의장(허준구 3남)은 정유 부문을 경영했습니다.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은 유통부문을, 허태수 GS그룹 회장(허준구 5남)은 홈쇼핑 부문을 이끌었습니다. 허창수 회장이 그룹의 초대 회장이었던 만큼 부친인 '허준구 일가'가 그룹의 중심이었습니다.

4세 경영체제에서는 어떨까요. 유력한 승계 후보인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 장남)는 50세, 허윤홍 GS건설 사장(허창수 GS건설 회장 장남)은 40세입니다. 그룹 경영을 아우르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재계의 관측입니다.

후계 구도는 윤곽이 언뜻 잡힌 듯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은 남아있어 보입니다. 정유와 건설 부문을 들여다 보면 후계구도는 더욱 복잡해지는 양상을 띱니다.

지난해 9월 한국기업평가가 발표한 GS그룹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그룹 매출은 50조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GS칼텍스의 대주주인 미국 쉐브론(보유지분 50%)의 몫을 제외하고 산정한 수치입니다. GS그룹은 출범 당시인 2004년 매출 비중이 23조원에 달했는데, 2배 이상 성장했죠.

과거 GS그룹의 매출 비중은 정유업이 절대적으로 높았습니다. 2013년 GS칼텍스의 매출은 45조원을 넘었는데, 이듬해 중동 '아랍의 봄' 사태 후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지난해 매출은 33조원을 기록했습니다. 그룹 매출 중 정유업 비중은 과거 50% 안팎이었는데, 2018년 36%까지 낮아졌죠. 정유업은 GS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을 차지했는데, 2018년 23%로 비중이 줄었습니다.

정유업은 유가가 상승세일 때 '래깅효과(원재료 구매시기와 석유제품 판매시기 사이의 가격변동에 따른 마진 등락효과)'로 매출이 높아지는 구조입니다. 유가가 하락할 때는 반대로 마진이 악화됩니다. 저유가 기조는 지난해에도 계속됐고, 올해 코로나19로 더욱 낮아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GS칼텍스의 경영환경은 이전보다 나빠진 셈입니다.

▲  GS그룹 사업부문별 매출 및 영업이익 추이./자료=한국기업평가원
▲ GS그룹 사업부문별 매출 및 영업이익 추이./자료=한국기업평가원

정유업이 어려움을 겪는 동안 GS건설은 서서히 몸집을 불렸습니다. GS건설은 2018년 매출 13조원을 달성해 그룹 전체 매출의 27%를 차지했습니다. 같은해 1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그룹 전체 영업이익(2조7150억원)의 40%를 차지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0%(2조7227억원), 27%(2972억원)씩 감소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GS건설의 자산 규모는 14조원으로, 2010년(약 9조3000억원)과 비교해 32% 증가했습니다. GS칼텍스의 자산총액은 19조4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15%(약 3조4000억원) 감소했습니다.

건설업의 GS그룹 기여도는 높아진 반면 정유업은 축소됐다고 볼 수 있는 셈입니다. GS그룹이 계열분리 후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허창수 회장의 공이 컸습니다. GS칼텍스 등 에너지 부문이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것도 원동력이 됐습니다. 안정적인 비즈니스와 직계자손 혈연 관계는 GS그룹의 3세 시대를 탄탄하게 묶은 고리가 됐다는 평입니다.

GS그룹의 '4세 시대'는 어떨까요. 현재 지배구조와 가족경영 체제는 앞으로도 유지될까요. 시장은 GS그룹이 4세 경영으로 오너십이 전환될 때 계열분리 가능성도 점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직계자손 중심의 가족경영체제가 유지될 수 있지만, △건설 및 유통 △에너지 계열로 계열분리하는 시나리오입니다. '허정구 일가(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과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와 '허준구 일가(허창수 GS건설 회장과 허윤홍 GS건설 사장)'로 분리하는거죠.

GS건설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추진하는 것도 계열분리 측면에서 보면 납득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GS건설은 건설업을, 두산인프라코어는 건설기계 제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기업의 사업영역은 밸류체인 상 전·후방산업이 아닌 연관산업에 해당됩니다. 이 때문에 비즈니스 측면에서 시너지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건설업계의 설명입니다.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로 보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효과는 큽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약 3조7000억원의 매출(두산밥캣 제외)을 냈고, 영업이익은 약 36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GS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면 자산규모로 한화그룹(7위, 자산총액 71조원)을 앞지릅니다. 기업이 재계 순위를 앞지르기 위해 M&A를 하는 게 아닌 만큼 다른 이유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  GS건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전후 실적 비교./자료=금융감독원
▲ GS건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전후 실적 비교./자료=금융감독원

GS그룹 내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전보다 커졌지만, 여전히 정유업보다는 낮습니다. GS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할 경우 GS건설 지배하에 둘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 두산인프라코어 매출은 GS건설의 연결 손익계산서에 합산되는 효과가 생깁니다. GS건설의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 모두 커지게 되죠. 지난해 실적을 기준으로 합산하면 매출은 14조원, 영업이익은 약 1조1000억원이 됩니다.

향후 GS그룹이 계열분리를 한다고 가정하면 정유업의 분리로 인해 줄어들 이익을 두산인프라코어가 일부 메우게 되는거죠. 게다가 두산인프라코어는 연간 3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창출하는 안정적인 회사입니다.

GS그룹은 계열분리를 고려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추진하는 걸까요. 이를 확정할 수 없지만 GS그룹은 본업과 연관성이 크지 않은 회사들의 인수를 추진한 바 있습니다. 2008년 대우조선해양과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 인수전에 참여했다 하차했습니다. 2012년 코웨이 인수를 추진했고, 2019년 아시아나항공 인수도 검토했죠.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연매출은 13조원, 대한통운과 코웨이의 매출은 2조원에 달했습니다. 이들 M&A는 매각가격이 조 단위로 인수 부담은 컸지만, 수익 창출 규모가 커 인수에 성공할 경우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 기회였습니다. GS그룹이 인수전 중 하차한 것과 무관하게 말이죠. GS그룹이 각 산업의 주요 회사들 인수를 검토했던 건 비정유 부문을 키워야겠다는 의지가 크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게다가 GS건설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는 그룹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딜입니다. 이번 인수를 추진하는데 허창수 회장이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GS건설 특수관계인 주식 현황./자료=금융감독원
▲ GS건설 특수관계인 주식 현황./자료=금융감독원

GS건설은 그룹 주요 계열사 중 유일하게 지주사인 ㈜GS의 지분이 한 주도 없는 곳입니다. 허창수 회장 등 18명이 25.59%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최대주주는 8.89%의 지분을 보유한 허 회장입니다.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GS가문'이 참여하는 가족회의의 문턱을 넘어야 합니다. GS건설이 인수를 주도하는 만큼 '문턱'은 이전보다 낮을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에는 가족회의를 넘지 못해 인수전에서 하차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GS건설이 두산인프라코어를 품는다면 사업영역은 건설기계산업까지 확장되고, 매년 수천억원의 수익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허창수 회장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추진한 속내는 무엇이었을까요. 건설업의 시너지를 염두한 걸까요. '4세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희망하는 건 아닐까요. 해답은 4세 경영의 서막이 올랐을 때 밝혀질 듯 합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