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에서 SNS, TV 예능 등을 통해 ‘한복 훔치기’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한복의 동북공정'이다.

▲  ‘한복은 한국에서 시작되지 않았다’는 중국 블로거 영상 /웨이보 갈무리
▲ ‘한복은 한국에서 시작되지 않았다’는 중국 블로거 영상 /웨이보 갈무리

지난 5일 중국 SNS 웨이보에는 46만7000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한 비디오 블로거가 ‘한복은 한국에서 시작되지 않았다’는 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은 게시 하루 만에 조회 수 730만 회를 돌파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영상 게시자는 한국에서 확산하고 있는 ‘한복 챌린지’ 그림을 보여주면서 “중국 명 대의 관복과 완전히 같다”고 주장했다. 또한 태조 이성계가 입은 곤룡포와 명 태조 주원장의 복식, 조선 시대와 명 대의 관복 등을 비교하면서 “한복이 '한푸'(汉服·한족의 전통의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도 말했다.

▲  중국 사극에 등장하는 시녀의 한복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중국 사극에 등장하는 시녀의 한복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일부의 주장이 아니다. 최근 중국 TV 프로그램에서도 한복을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사극에 난데없이 한복을 입은 시녀가 나오거나 예능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거나 김장하는 등의 모습도 나왔다.

▲  중국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한복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중국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한복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단순히 우리 복식 디자인이 좋아서 따라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 누리꾼들은 “한복은 중국 명나라 의상에서 유래했다”, “한복은 중국 한푸의 디자인을 훔쳤다” 등의 주장을 하면서 ‘한복 빼앗기’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치파오 대신 한족 고유 의상인 '한푸 밀어주기'


이처럼 최근 중국에서는 한·중 양국 전통 의복의 유사성을 예로 들며 ‘한복은 한국 고유의 양식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지금까지 없던 억지 논리로 ‘한복 빼앗기’에 나선 것일까.

이는 ‘한족 중심의 중화사상 강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중국에서는 애국주의를 바탕으로 중화문명이 최고라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이 힘을 얻고 있다. 여기서 '중화'는 한족의 문화를 뜻한다. 이에 한족 문화의 부흥을 외치는 사람들이 늘면서 한족의 고유 의상인 '한푸'를 즐겨 입는 이들도 많아졌다.

▲  중국의 전통 의상 치파오의 주요 특징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중국의 전통 의상 치파오의 주요 특징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하지만 대외적으로 중국 전통 의상의 대명사로 통하는 것은 청나라 때 만주족으로부터 유래한 치파오다. 그러나 지금은 치파오가 중국을 대표하는 의상으로 알려진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에서 한족은 전체 인구의 약 91.5%를 차지하고, 한족 이외의 중국인은 소수민족으로 분류된다. 이에 중국에서는 한족을 축으로 한 중화사상의 강화, 문화적 자긍심 고취 등을 위해 한푸를 되살리려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특히 명나라 시절의 한푸가 주목 받고 있다. 역사적 배경도 있다. 명을 건국한 주원장은 13세기 몽골 제국이 세운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한족 왕조의 통일국가를 건설했다. 통치 기간 중 주원장은 이민족 통치의 잔재를 씻고 '한족 문화의 부활'을 위해 노력했는데 지금의 중국이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한다. 이 때문에 명나라 시절의 한푸가 떠오르게 된 것이다.


한푸를 띄우자니 한류가 방해된다?

문제는 한푸가 우리 전통 의상인 한복과 형태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유가 있다. 원나라 시기에 중국으로 끌려간 고려인 공녀(貢女)들에 의해 고려의 풍습과 복식, 음식 등이 중국에 전파됐는데 이를 고려양(高麗樣)이라 부른다. 고려양은 명나라 초기까지 유행이 이어졌으며 명 9대 황제 홍치제가 금지시킬 때까지 널리 사랑받았다. 말하자면 오래전의 한류라고 할 수 있다.

▲  중국 명·청 대의 의상 /Nancy Duong 홈페이지 갈무리
▲ 중국 명·청 대의 의상 /Nancy Duong 홈페이지 갈무리

문화는 서로 교류하며 섞이기 마련이다. 따라서 고려양이 유행했던 명나라 시절의 복식과 한복에 유사성이 발견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중국의 의도대로 한푸를 밀자니 한복이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바로 ‘한류’ 때문이다. 한류가 전 세계에 확산하면서 사극 등의 콘텐츠도 자연스럽게 해외에 알려졌다. 단적인 예로 과거 공전의 히트를 쳤던 사극 ‘허준’은 이라크에 수출돼 80% 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엄청난 인기를 끈 바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한복이 곧 한국의 고유 의상으로 널리 각인됐음은 물론이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넷플릭스 제공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넷플릭스 제공

최근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을 통해 한국 전통 의상과 모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바 있다. 미국 인터넷 쇼핑몰 이베이와 아마존에서는 ‘킹덤 모자’라는 이름으로 갓이나 전립, 사모 같은 한국의 전통 모자 판매량이 늘어나며 새로운 한류 상품으로 떠올랐다. 또한 SNS나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국의 전통 복식에 관한 질문이 쏟아지는 등 예상치 못했던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치파오의 자리에 무작정 한푸를 올려놓기에는 부담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류 따라하기'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각종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패션쇼 등에서 한복과 유사한 옷이나 모자, 장신구를 계속 등장시키는 동시에 “한복은 명나라의 영향을 받은 옷”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복 동북공정’ 시도는 단순한 억지 주장 이상의 포석이 깔려 있다. 자국민 대상으로 치파오 대신 한푸에 친숙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한족 중심의 중화사상 강화를 노릴 수 있다. 또한 ‘한복은 한푸의 아류’라는 ‘정신 승리’를 통해 한국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을 없애고, 한류의 인기에 편승해 자연스럽게 한푸를 해외에 홍보할 수 있다. 정황을 따져보면 의도적으로 ‘한복 훔치기’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한류의 힘, 정부 대응으로 이겨내자"

국경을 맞댄 중국과 교류하며 영향을 아예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나라의 문화는 외부의 영향도 받지만 오랜 시간을 거치며 독자적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이를 무시하고 한복을 중국의 일방적 영향을 받은 산물이라고 깎아내리는 것은 무지의 소치에 불과하다.

국내 누리꾼들은 중국의 ‘한복 훔치기’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대응책을 마련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누리꾼들은 “싸울 가치도 없지만 긴장을 늦추면 당할 수 있다"며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한류의 영향력을 이용하자”면서 아이돌 그룹의 한복 무대 확대, 사극 제작 지원 강화, 생활 한복의 대중화 등을 통해 해외에 우리 한복을 적극 알리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  방탄소년단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 방탄소년단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중국의 ‘한복 동북공정’은 정황상 일회성 주장에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역사 자체를 중국에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읽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중국의 동북공정 정책에 대해 국민에게 알리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나라에서 적극 홍보해주세요’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내용에는 현재 중국에서 한복과 유사한 복장이 나오는 시대극. 부채춤을 추며 아리랑을 부르지만 중국 소수민족의 문화라 소개하는 다큐나 예능, 한복을 바탕으로 한 퓨전 복장이 등장하는 패션쇼 등이 만들어지고 있음이 지적됐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청원인은 “잘못된 정보를 담은 콘텐츠들이 최근 들어 계속 재생산되고 세계에 퍼지는 것에 정치적 저의가 있다고 의심된다”며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해 정부 차원에서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세계에 알리도록 적극 지원해달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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