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글로벌 컨설팅 회사 PwC는 블록체인 기술이 향후 10년간 전세계 GDP 향상에 미칠 영향을 1조7600억달러(약 1990조원) 수준으로 내다봤다. 특히 다섯 가지 응용 분야에 주목했는데, △공급망 관리 △금융 서비스 △신원관리 △계약·분쟁해결 △고객관리 등이다. 그리고 이들 서비스가 공고히 확산되기 위한 인프라 개념으로서의 DID(분산 아이디) 사례도 최근 점점 구체화되는 추세다.

DID는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개인 식별자를 의미한다. 기존 인터넷 ID와 다른 부분은 기록된 개인정보의 주권이 철저히 개인에게 있다는 점, 그에 따라 자신의 정보는 원할 때 필요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모든 데이터는 유출 및 위변조 위험 없이 안전한 보관이 가능하고 데이터의 진위를 블록체인에 기록된 정보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개인정보보호, 마이데이터 개념이 강화되고 있는 최근 트렌드에도 일맥상통하는 특징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DID는 주로 특정 서비스만을 위한 제한된 인증 수단에 그쳤다. 더 넓은 저변 확대를 위해선 실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일상 서비스 개념의 사례 발굴이 필요했던 시기다.

‘사용자 중심’으로 변화한 부산시 공공 서비스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는 “시민들에게 중요한 건 블록체인이 아니라 블록체인을 도입함으로써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있다”며 “이를 고민해 나온 결과가 불편했던 공공 서비스 이용 절차를 DID 플랫폼으로 간소화한 ‘B PASS’”라고 말했다.

▲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
▲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

B PASS는 코인플러그가 부산시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한 ‘DID 기반 부산 블록체인 통합서비스’ 이다. B PASS 앱 설치 후 가입(DID 생성) 절차를 최초 1회만 거치면 이후 B PASS와 연계된 부산 공공 서비스 및 블록체인 특구 서비스 이용 시 가입 및 인증 과정이 대폭 간소화된다.

현재 B PASS를 통해 부산시민카드, 부산시청 방문증, 부산 도서관 회원증, 다자녀를 위한 모바일 가족사랑카드, 해운대구민카드, TP 사원증 등을 발급받을 수 있다. 연계 서비스로는 부산시 디지털 바우처(현금처럼 쓰는 일종의 마일리지), 시민안전제보 등이 제공 중이다.

▲  B PASS 앱 이용화면 갈무리
▲ B PASS 앱 이용화면 갈무리

어 대표는 “기존에는 각각의 공공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개별 앱을 다운로드 받아야 했고 그 마저도 철저히 공급자 중심이었던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연히 접근성도 낮았을뿐더러, 150만 명이 이용하는 부산시 공공 도서관만 해도 방문할 때마다 복잡한 발급 및 출입 절차를 반복해야 했던 불편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B PASS가 DID 기반의 원스톱 플랫폼 역할을 하면서 이런 불편이 상당수 해소됐다. DID는 서비스 밑단에서 각 부산 시민의 신원 증명서 역할을 하며, 현재 DID를 기준으로 다양한 공공 서비스 및 혜택 제공이 이뤄지고 있다.

공공과 시민의 벽을 허무는 DID

부산 디지털 바우처 연계가 좋은 예다. 바우처는 정부가 기업이나 개인에게 제공하는 디지털 포인트로, 제휴 범위 내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가령 B PASS와 연동된 시민안전제보 앱으로 특정 미션을 수행하거나 부산시 관련 개선 사항을 제보할 경우 접수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디지털 바우처를 참여 보상으로 획득할 수도 있다.

시민은 공공활동 수행에 따른 대가를 받을 수 있고, 시 입장에선 시민 기여 활동에 대해 투명한 보상 지급과 이력 관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Win-Win이다. 나아가 이 같은 모델이 공고해지면 공공기관, 지자체별로 다양한 보상 제공 및 질과 참여도가 높아진 공공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진다.

▲  B PASS와 연계된 시민안전제보 앱 예시
▲ B PASS와 연계된 시민안전제보 앱 예시

DID는 지자체와 시민을 더 가깝게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도 한다. 어준선 대표는 “DID 기반 공공 서비스 플랫폼”은 지자체가 더 많은 공공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며 “시민 대상 여론· 설문조사 및 투표, 서명 등을 진행할 때도 일일이 연락하고 방문하도록 할 필요 없이 온라인에서 푸시(Push, 앱 알림)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인플러그는 이미 지난 3월 서비스를 개시한 DID 기반 투표 플랫폼 '더폴(THEPOL)' 운영을 통해 지금까지 45만명에게 330건 이상의 간편 설문조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례가 있다.

DID 기반의 설문, 투표에는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수집되지 않는다. 목적에 따라 DID에 저장된 신원 데이터 중 필요한 정보만 내어주거나, 개인정보 기반의 비식별화 된 속성 정보만 제공되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디지털 처리 과정에서 절약된 예산을 다시 바우처 같은 시민 보상으로 전환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나아가 미래엔 CBDC(정부 디지털화폐) 연동, 개인 맞춤형 복지혜택 알림·확인, 세금, 부동산 연계, 민원24 전자정부 증명서 연계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의 공공 서비스 연계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DID는 사람만을 위한 기술 아냐

물론, 공공 DID 도입은 기술 검증을 위한 작은 시험대일 뿐이다. 향후 DID의 역할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어준선 대표는 “DID를 꼭 사람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며 “자동차나 부동산 등 개인이 소유한 물건에도 DID가 부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주유 시 개인 DID와 연결된 카드로 자동 결제가 이뤄지거나, 부동산 매매 등이 이뤄지는 식의 편의 구현이 가능해진다.

국내 DID 기술 개발, 정책 지원에 대해 어 대표는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올해 국내에선 과학기술 정보통신부와 중소기업벤처부 중심으로 DID 표준화, 부산규제자유특구 운영, 민관합동 DID협의체 발족 등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DID 사업 지원이 이뤄지는 중이다.

다만 올해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삭감된 정부 블록체인 지원 예산에 대해선 아쉽다는 입장이다. 어 대표는 “앞으로 더 많은 공공기관이 블록체인 실증 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의 예산 지원도 더욱 강화돼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한편 그는 DID가 블록체인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어 대표는 “블록체인의 강점은 ‘신뢰’와 ‘자산 토큰화’에 있다”며 “앞으로의 DID는 블록체인 인프라 기술로서 계속 성장할 것이고 그 위에 무형자산을 포함한 다양한 실물자산이 토큰화될 것이다” 또 “DID 기반으로 토큰화된 실물·가상자산이 거래되는 진정한 디지털 세상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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