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와의 조우. 애플이 3년 전 '아이폰X'을 내놓으며 던진 말이다. 실제 아이폰X은 미래 아이폰의 모습을 제시했다. 지난해까지 애플은 일관된 디자인을 유지했다. 인덕션 디자인으로 시선을 끌었던 '아이폰11 프로'도 정면으로 뒤집어 놓고 보면 아이폰X과 똑같다. 마치 미래와 조우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이폰12 프로'는 5G와 함께 그때 그 시절 디자인으로 각 잡고 돌아왔다.

혁신은 없었다. 매년 아이폰을 향해 쏟아지는 이 말 만큼 혁신 없는 말도 없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최근 애플이 아이폰에서 보여준 변화의 폭이 작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 비춰봤을 때 아이폰12 시리즈는 아이폰X 이후 출시된 아이폰 중 가장 변화가 큰 제품이다. 각진 디자인과 5G 지원을 비롯해 맥세이프 충전, 프로 모델에 추가된 라이다 스캐너, 더 다양해진 화면(가격) 선택지 등이 주요 특징이다. 특히 프로 모델은 애플이 보여주고자 하는 최신 성능을 모두 담았다. 아이폰12 프로는 애플이 그린 미래에 얼마큼 다가섰을까.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었던 디자인


디자인은 각을 세웠다. 이른바 ‘깻잎 통조림’으로 불리던 아이폰4와 5 시절의 각진 디자인으로 돌아왔다. 오랜 애플 팬들의 가슴을 웅장해지게 만드는 디자인이다. 애플은 2014년 ‘아이폰6’부터 모서리가 둥근 디자인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2018년 ‘아이패드 프로’부터 다시 그때 그 시절 각진 디자인을 선보였고, 이번 아이폰 역시 해당 디자인을 패밀리 룩으로 이어갔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걸까. 아이폰12 프로 옆에 나란히 놓인 아이폰11 프로는 순식간에 구형 아이폰으로 전락했다. 또 테두리가 알루미늄으로 마감된 일반 모델과 달리 프로 모델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돼 번쩍 빛난다. 대놓고 과시하기 좋게 생겼다. 또 각 아이폰 색상별로 테두리 색상도 깔맞춤했다. 색상에도 급을 나눈 걸까. 내가 손에 쥔 퍼시픽 블루 모델은 원색이 강조된 일반 모델 블루 색상과 달리 마냥 시퍼렇지 않은 은은한 색상을 담아냈다.

이외에는 아이폰X부터 이어진 디자인 기조를 이어간다. 머리가 비어 보이는 노치 디자인은 여전하고, 방망이 깎는 안드로이드 진영과 달리 베젤 비율도 그대로다. 단, 화면 베젤과 스테인리스 테두리를 이어주는 접합부가 사라지고, 가장자리가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바로 떨어져 베젤이 준 듯한 착시 효과를 준다. 후면 디자인도 전작 그대로다. 인덕션 카메라 디자인을 유지하고, 애플 로고도 정중앙에 박혀있다.

화면 크기는 전작 5.8인치에서 6.1인치로 커졌다. 전체 크기도 세로로 좀 더 길쭉해졌다. 아이폰6부터 아이폰8, 아이폰SE 2세대까지 이어진 디자인에 익숙한 이용자라면 제품이 조금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두께는 7.4mm로 전작보다 약 0.7mm 얇아졌고, 무게는 187g으로 1g 가벼워졌다. 전면에는 코닝사와 함께 '세라믹 실드'라는 새로운 소재를 도입해 내구성을 높였다. 애플에 따르면 4배 더 나은 낙하 성능을 제공한다고 하는데 용기가 부족한 탓에 직접 실험해보진 못했다. 후면 강화 유리는 전작과 같다.

▲  (왼쪽부터) 아이폰6S, 아이폰12 프로, 아이폰11 프로 크기 비교
▲ (왼쪽부터) 아이폰6S, 아이폰12 프로, 아이폰11 프로 크기 비교

단점은 그립감. 각진 테두리 탓에 손에 쥐었을 때 느낌이 전작보다 떨어진다. 예뻐 보이는 건 일정한 불편함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또 삼성 갤럭시 등 안드로이드폰이 화면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120Hz 주사율을 선보이고 있는 데 반해 60Hz 주사율 그대로라는 점도 아쉽다. 눈은 간사하다. 120으로 올라간 눈은 60으로 못 내려온다.

▲  모서리가 둥근 아이폰11 프로(왼쪽)와 각진 아이폰12 프로
▲ 모서리가 둥근 아이폰11 프로(왼쪽)와 각진 아이폰12 프로

똑똑한 콤퓨타 카메라


카메라는 조금 더 진일보했다. 하드웨어적인 개선점은 크게 없지만, 똑똑해진 머리를 바탕으로 한 컴퓨터를 이용한 사진 기법(computational photography)은 더 발전했다. 전작처럼 큰 폭의 카메라 성능 개선은 없지만 초광각, 광각, 망원 모든 카메라에서 디테일이 좋아졌다. 삼성 갤럭시가 깡패 같은 이미지센서를 바탕으로 K-감성이 담긴 화려한 색감과 선명한 사진을 제공한다면, 아이폰은 자연스럽고 디테일에 강한 사진을 준다. 취향의 영역이지만 이미지 프로세싱이 좀 더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기본 사양과 카메라 구성은 전작과 거의 동일하다. ▲1200만 화소 초광각 카메라(F2.4, 120도 시야각) ▲1200만 화소 광각 카메라(F1.6) ▲1200만 화소 망원 카메라(F2.0) 등으로 구성된 트리플 카메라를 갖췄으며 최대 4배 광학줌, 10배 디지털 줌을 지원한다. 메인 카메라인 광각 카메라의 조리개가 전작 F1.8에서 F1.6으로 밝아졌다는 점이 눈에 띄는 차이다.

하지만 하드웨어가 다가 아니다. 아이폰12 프로 카메라는 이미지센서와 ISP(이미지 신호 처리), 프로세서, 뉴럴 엔진, 최신 알고리즘을 통합해 D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와 다른 방식으로 사진의 디테일을 살려내고, 큼지막한 렌즈 없이 아웃포커싱 효과를 낸다. 아이폰의 핵심 카메라 기능은 스마트 HDR, 딥퓨전, 야간모드 등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사진 기법으로, 머신러닝을 활용한 이미지 처리 시스템을 통해 순간적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가장 좋은 사진 한 장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이 과정은 이용자가 셔터를 누르는 찰나의 순간 이뤄진다.

3세대 스마트 HDR은 더 정교해졌다. 스마트 HDR은 노출이 각기 다른 이미지를 합성해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디테일을 살리는 방식이다. 아이폰12 프로에 적용된 스마트 HDR 3은 피사체 인식 성능이 좋아졌으며,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 질감을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 스마트 HDR이 역광 등 명암 대비가 극명한 환경에서 작동한다면, 일반적으로는 딥퓨전 기능이 활성화된다. 딥퓨전은 사진을 찍는 순간 9장의 사진을 분석해 사진을 픽셀 단위로 처리하고 사진의 질감과 디테일, 노이즈를 최적화해준다. 아이폰12 프로부터는 모든 카메라에 적용된다. 즉, 아이폰 카메라에서 명암의 폭, 다이내믹 레인지(DR)가 넓어졌다고 보면 된다.

무엇보다 야간모드가 더욱 발전했다. 어두운 환경에서 작동하는 야간모드는 노이즈는 줄여주고 색상은 자연스럽게, 사진은 밝게 만들어준다. 전작에서는 메인 카메라에서만 작동했지만, 12 프로에서는 초광각 카메라에도 적용된다. 여전히 망원 카메라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2배 디지털 줌 방식으로 촬영된다. 야간에 빛이 렌즈에 반사돼 나타나는 고스트·플레어 현상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프로 모델에는 사물의 깊이를 측정하는 라이다(LiDAR) 스캐너를 적용해 저조도 상황에서 6배 빠른 자동 초점과 야간모드 인물 사진, 향상된 AR 경험을 제공한다. 라이다 스캐너는 3D 카메라를 구현하는 방식인 ToF(Time of Flight) 센서의 일종이다. 빛의 비행시간을 측정해 거리를 재는 기술이다. 신호를 방출했다 물체에 부딪쳐 돌아오면 그 시간차를 측정해 사물과의 거리를 알아낸다. 특히 애플은 일반적으로 스마트폰에 사용하는 간접 ToF 대신 직접 ToF 방식을 적용했고, 이를 라이다 스캐너라고 명명했다. 직접 ToF 방식은 부품 가격이 비싼 대신 측정 거리가 간접 ToF의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에 따르면 최대 라이다 스캐너는 5m 거리에서 반사된 빛을 측정할 수 있다.

애플은 라이다 스캐너를 올해 아이패드 프로에 이어 아이폰으로 확대 적용하면서 AR 생태계를 활성화하려고 한다. 직접 ToF 센서는 정교한 거리·깊이 측정이 가능한 만큼 본격적인 AR 콘텐츠 제작에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아직 활용도가 낮다는 점이다. AR 시장은 기대만큼 크지 않았고, 야간에 사진 촬영을 즐기지 않는다면 라이다 스캐너의 이점을 누리기는 힘들다. 라이다 스캐너의 영향인지, 발전된 머신러닝 성능 덕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인물 사진 모드에서 빨대, 유리잔 등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사물을 전작보다 디테일하게 포착한다는 점은 장점이다.

이 밖에도 초광각 카메라, 전면 카메라에서 렌즈 왜곡 보정 기능이 적용되며, 전면 카메라에서 야간모드가 작동한다. 또 아이폰12 프로부터는 애플 프로로우(Apple ProRAW)가 올 연말 적용된다. 이미지 프로세싱을 거치지 않아 보정 폭이 넓은 로우 파일의 특성을 가져가면서 컴퓨테이셔널 포토그래피의 이점을 더한 포맷으로, 색상, 디테일 및 다이내믹 레인지 유연성이 높다. 동영상 촬영에서는 돌비 비전 HDR 비디오 포맷을 지원한다.

▲  전면 카메라도 야간모드를 지원해 어두운 환경에서도 '셀카'를 선명하게 찍을 수 있다.
▲ 전면 카메라도 야간모드를 지원해 어두운 환경에서도 '셀카'를 선명하게 찍을 수 있다.

5G 어서 오고, 배터리 선 넘네


아이폰12 시리즈는 첫 5G 지원 아이폰이다. 5G는 아직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좁은 커버리지와 망 불안정성으로 인한 간헐적인 연결 끊김 문제, 배터리 소모 증가 등의 문제가 지난해 상용화 이후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5G망 안에서 속도는 확실하다. 실제 아이폰12 프로에서 5G망을 이용했을 때 800Mbps 넘는 다운로드 속도를 기록했다.

서울 영등포구 일대에서 LG유플러스 5G망을 사용하는 LG헬로모바일 유심칩을 넣은 아이폰12 프로와 KT LTE망을 쓰는 아이폰11 프로를 인터넷 속도 측정 앱 '벤치비'로 비교했을 때 아이폰12 프로는 3회 측정 평균 다운로드 909Mbps, 업로드 151Mbps, 핑 16.9ms의 속도를 나타냈다. 아이폰11 프로는 3회 측정 평균 다운로드 56.6Mbps, 23.9Mbps, 핑 43.2ms의 속도를 냈다. 물론 이는 엄밀한 측정 방식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5G망은 천차만별이며, 특히 이동 중에 체감하는 5G 속도는 이보다 떨어진다.

▲  (왼쪽부터) 아이폰11 프로(KT LTE)와 아이폰12 프로(LGU+ 5G) 속도 비교
▲ (왼쪽부터) 아이폰11 프로(KT LTE)와 아이폰12 프로(LGU+ 5G) 속도 비교

5G 품질 문제와 더불어 가장 큰 문제는 배터리 소모다. 5G망이 연결된 것만으로도 LTE보다 더 큰 전력이 소모된다. 이에 애플은 5G 지원으로 인한 빠른 배터리 소모를 막기 위해 스마트 데이터 모드를 제공한다. 지능적으로 5G가 필요한 상황인지 파악하고 실시간으로 데이터 사용, 속도 및 전원을 조절해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려준다. 모든 순간에 5G 경험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고화질 영상 스트리밍 등 속도가 중요할 때는 5G, 단순 웹 서핑을 할 때나 배터리가 중요할 때는 LTE를 사용하는 식이다.

하지만 해당 모드를 사용해도 아이폰12 프로가 옆에 둔 아이폰11 프로보다 약 10% 이상 배터리가 빨리 닳았다. 하루를 버티기엔 조금 버거운, 불안한 눈빛으로 배터리 상태를 살펴야 하는 수준이다. 가뜩이나 5G로 전력 소모가 늘었지만, 아이폰12 프로는 3046mAh에서 2815mAh로 전작보다 배터리 용량이 준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5G 킬링 콘텐츠가 부재하다는 점, LTE 대비 비싼 요금도 5G 가입자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성능은 확실한 아이폰의 미래


애플답게 프로세서 성능은 확실하다. 아이폰12 프로에는 A14 바이오닉이 탑재됐다. 업계 최초로 5나노미터 공정이 적용됐으며, 6코어 CPU와 4코어 GPU로 구성됐다. 애플에 따르면 다른 플래그십 스마트폰 칩 대비 최대 50% 더 빠른 GPU 및 CPU 성능을 제공하며, 16코어 뉴럴 엔진을 탑재해 전작보다 머신러닝 성능을 80% 높였다. 애플은 A14 바이오닉이 다른 스마트폰 칩들보다 몇 세대 앞서 있다고 자신한다. 긱벤치5로 측정한 결과 벤치마크 점수는 싱글코어 1597점, 멀티코어 4177점으로 각각 1335점, 3521점을 기록한 아이폰11 프로보다 수백점 앞섰다. 하지만 고사양 게임을 즐기거나 아이폰으로 동영상 편집을 하는 게 아니라면 성능은 체감하기 힘들다. 이 같은 성능은 폰이 오래될수록 생명 연장의 꿈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  (왼쪽부터) 아이폰12 프로, 아이폰11 프로
▲ (왼쪽부터) 아이폰12 프로, 아이폰11 프로

아이폰12 시리즈는 ‘슈퍼사이클(교체 대주기)’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익숙한 디자인으로 돌아온 아이폰12 프로는 미래와 조우한 기능을 펼쳐 보였다. 5G와 라이다 스캐너는 애플이 미래를 걸고 있는 AR 생태계 활성화에 더 바짝 다가설 수 있는 기반 기술이다. 전작부터 적용된 초광대역(UWB, ultra-wideband) 기술에 기반한 U1칩은 애플 기기 간의 연결성을 높이고 디지털 열쇠 등 각종 편의 기능을 제공한다. 애플이 그리는 IoT 세상의 밑그림을 제공한다. 맥세이프는 선 없는 아이폰, 나아가 포트 없는 아이폰을 향한 한 걸음이다.

▲  충전기 어댑터와 이어폰을 뺀 '친환경' 아이폰12 프로 패키지(오른쪽)
▲ 충전기 어댑터와 이어폰을 뺀 '친환경' 아이폰12 프로 패키지(오른쪽)

그러나 5G는 불안정하고, 라이다 스캐너는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 U1칩도 1년이 지났지만 아직 가능성의 영역에 있다. 맥세이프는 무선 충전 경험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비싸다. 국내 출시가 늦어지면서 아직 체험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다. 아이폰12 프로는 다시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하지만 아직 그 미래는 내 삶의 현실이 되진 않았다.

▲  아이폰12 프로 맥세이프 케이스
▲ 아이폰12 프로 맥세이프 케이스

장점


  • 익숙하지만 새로운 디자인

  • 더 개선된 카메라

  • A14 바이오닉, 성능 확실하구만

  • 속도는 확실한 똑똑한 5G


단점

  • 120Hz 주사율 미지원

  • 친환경 무선 패키지

  • 배터리 잡아먹는 비싼 5G


추천 대상

'존버'했던 구형 아이폰 이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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