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벌어진 ‘한복 동북공정’에 이어 한국의 식문화마저 중국이 빼앗으려고 시도한다는 의혹이 인터넷에서 일고 있다. 중국의 한 유명 유튜버의 영상에 ‘상추쌈’이 등장한 이후다.

▲  /전서소가 유튜브 영상 갈무리
▲ /전서소가 유튜브 영상 갈무리

구독자 646만명을 보유한 중국의 유명 유튜브 채널 ‘전서소가’에는 10일 ‘고목 호두 백 년에 거쳐 머금어진 과실의 향’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호두를 따고 빻아 기름을 만드는 평범한 내용이지만 업로드 이틀 만에 조회 수 100만을 넘겼다. 논란은 식사 장면에서 불거져 나왔다. 영상 후반부에는 철판에 구운 고기를 상추에 얹고 썰어놓은 마늘과 고추를 얹어 먹는 모습이 있었다.

해당 유튜브 채널 소유자인 ‘아펀’은 젊은 여성으로 현재 중국 윈난성 서쪽의 바오산시에 거주 중이다. 다루는 요리 역시 토속적인 윈난성 현지 음식이 주를 이룬다. 베트남, 라오스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윈난성의 지리적 특성상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의 열대 과일도 자주 등장한다. 상추쌈 장면이 어색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  /전서소가 유튜브 영상 갈무리
▲ /전서소가 유튜브 영상 갈무리

상추쌈은 한국의 고유문화

상추쌈은 한국만의 독특한 식문화다. 식재료에 다른 식재료를 올려 싸 먹는 음식은 흔하지만 춘권처럼 밀가루나 쌀로 만든 피에 채소나 고기를 싸 먹는 형태가 많다. 상추쌈처럼 잎채소를 쌈의 주재료로 쓰는 경우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  춘권 이미지
▲ 춘권 이미지

우리의 쌈 문화는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전문가들은 신라고분 천마총에서 ‘구절판찬합’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한국 쌈 문화의 뿌리는 삼국시대부터라고 추정하고 있다.

상추쌈 문화는 고려시대에 널리 퍼져 있었다. 고려말 중국 원나라에 끌려간 고려 사람들은 상추를 궁중 뜰에 심어놓고 상추쌈을 먹으며 고향의 향수를 달랬다. 이러한 상추쌈 문화가 전파되면서 원나라 시절 민간에도 크게 유행했다. 원나라 시대의 인물인 양윤부는 ‘난경잡영’에서 고려의 상추를 소재로 "마고(표고버섯)의 향기보다 향긋한 고려의 상추”라는 시를 읊기도 했다. 이를 두고 ‘성호사설’의 저자 이익은 ‘고려 사람들은 생채(生菜)로 밥을 쌈 싸 먹는다’고 주를 달았다.

조선 시대에서도 상추쌈은 큰 사랑을 받았다. 서민 가정은 물론 왕실에서도 상추쌈을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승정원일기는 숙종 때 대왕대비였던 장렬왕후의 수라상에 상추가 올랐다고 적고 있다.

중국서 생채소 먹는 문화 드물어

반면 중국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채소를 날것 그대로 먹지 않고 삶거나 볶는 등의 방법으로 익혀 먹는다. 전통적으로도 그렇지만 불에 익히지 않은 채소에는 벌레가 있거나 위생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한 측면도 있다. 최근까지도 중국에서는 ‘생채소를 먹은 후에 반드시 구충제를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중국 물에는 석회질이 많아서 끓여 먹어야 탈이 나지 않는다. 지금도 중국 식당에서는 한여름에도 뜨거운 물을 내어주는 곳이 대부분이다. 좋지 않은 중국의 수질 탓에 채소를 그냥 물에 씻어 먹는 것은 보편적이지 않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외국 문화가 유입된 대도시의 경우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도시화가 덜 진행된 윈난성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법으로 채소를 조리한다.

▲  윈난성의 산세 /픽사베이 제공
▲ 윈난성의 산세 /픽사베이 제공

당국의 요구가 있었다? 의심하는 누리꾼

이 때문에 윈난성을 배경으로 한 영상에 갑자기 ‘한국식 상추쌈’ 장면이 왜 등장했는지를 두고 갖은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 지방 당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최근 아펀이 윈난성 바오산시 문화관광 홍보대사로 공식 임명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  전서소가 제작자 아펀 /유튜브 영상 갈무리
▲ 전서소가 제작자 아펀 /유튜브 영상 갈무리

아펀은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물론 2019년 웨이보 동영상 유명인에 꼽힐 정도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이에 윈난성 바오산시는 지난 1월 8일 아펀을 문화관광 홍보대사로 공식 임명했다. 당시 바오산시 측은 “(아펀의 영상이) 바오산의 문화 관광 진흥 방법을 혁신하고 뉴 미디어의 이점을 활용해 바오산의 고유문화를 전파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에 누리꾼들은 “생채소를 즐겨 먹지 않는 중국의 문화적 특성, 홍보대사 임명에 따른 제작자의 상황 변화 등을 고려하면 상추쌈 장면은 의도적으로 보인다”며 “중국이 한복에 이어서 상추쌈을 비롯한 한국 음식마저 자국 문화라고 주장하려는 시도가 아닐지 우려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개 제작자의 영상 하나가 중국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단순히 한 장면만 가지고 ‘중국의 상추쌈 훔치기’라고 하기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 거세지고 있는 ‘한복 빼앗기’를 비롯해 중국의 동북공정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이 짙은 만큼 사소한 것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인터넷에서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모습이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