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LG화학 건물.(출처=LG화학)
▲ LG화학 건물.(출처=LG화학)

LG화학이 주식시장에서 얼마전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배터리 사업을 물적분할 방식으로 분사하겠다고 발표하자 주가가 요동쳤죠. 소액주주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뜨거운 이슈가 됐었는데, 이번엔 다른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배터리 문제인데요. LG화학 배터리를 사용하는 현대자동차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전기차에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며 책임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구체적으로 미국 자동차업체 GM은 2017∼2019년 사이 생산된 쉐보레 볼트 전기차 6만8000여대를 리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기에는 LG화학이 오창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가 탑재돼 있습니다. 또 이에 앞서 현대차 역시 지난 10월 2017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제작된 코나EV 7만7000대를 리콜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LG화학이 제조한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이죠. GM과 현대차가 리콜하기로 결정한 차량 대수만 14만5000대에 이릅니다.

▲  한국GM 전기차 볼트EV.(사진=한국GM)
▲ 한국GM 전기차 볼트EV.(사진=한국GM)

전기차는 아시다시피 순수히 전기에너지를 동력원으로 활용해 구동하는 차량이죠. 연료를 내부 실린더 혹은 연소실에서 연소시켜 동력을 얻는 내연기관 차량과 완전히 다릅니다. 전기를 주원료로 활용하다 보니 전기를 빨리 충전하고 또 오래 지속하는 게 관건입니다. 한 마디로 배터리가 전기차의 핵심인 셈입니다.

이런 전기차에서 연달아 화재가 발생하면 의심의 눈초리가 배터리에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논리의 흐름 아닐까요. LG화학 배터리가 화재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화재 원인이 LG화학 배터리에 있지 않을까’ 하고 의심할 만하다는 것이죠.

국토교통부 역시도 코나EV 전기차 화재 원인에 대해 배터리 셀 불량을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당시 국토부의 발표는 상당히 의미있었다는 평가입니다. 배터리를 조립이나 소프트웨어 불량이 아닌, LG화학이 제조한 셀 자체를 화재 원인으로 지목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LG화학은 ”리콜은 화재의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한 것"이라며 "현대차와 공동으로 실시한 재연 실험에서도 화재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며 배터리 결함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LG화학의 화재 원인이 배터리에 있지 않다는 주장은 회계상으로도 나타납니다. 올 3분기 LG화학이 진행한 컨퍼런스콜 질의응답 시간에 눈에 띄는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요. 코나EV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를 충당금으로 반영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LG화학의 대답은 ‘노(NO)’였습니다. 당시 LG화학은 "현재 화재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 충당금 규모를  말하기는 어렵다"면서 "당사는 매달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워런티(보증금)로  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LG화학 잘못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 이를 회계적으로 미리 반영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겠죠. 반대로 말하면 회계상 충당금을 인식하는 것이 LG화학의 배터리 결함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현재 상황에서 충당금 반영은 LG화학에게 그 어느때보다 악재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충당금 반영은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돼 당장의 실적 악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 3분기 전기차 배터리 부문 흑자를 냈다고 온갖 얘기가 나온 상황에서 충당금 때문에 적자가 났다고 발표하면 다소 상황이 우스워지는 것도 사실이죠.

현대차는 올 3분기 좋은 영업실적을 거둬 놓고도 품질비용 충당금 반영 탓에 31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요. 예를 들자면 LG화학에게도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거죠.

또 LG화학의 배터리 분사와 관련해서도 좋을 것은 없어 보입니다. LG화학은 배터리 부문을 떼어내 오는 12월 1일 ‘LG에너지솔루션’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범시킬 예정인데요. 분사 시점에 대규모 손실을 반영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 LG화학의 이번 분사 목표는 어쨌거나 ‘독립’입니다. 스스로 먹고 살 돈을 벌어가며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겁니다. 중장기적으로 모회사의 도움 없이요. 전기차 배터리 부문의 흑자가 이러한 ‘독립’생활이 가능하다고 대내외적으로 평가받은 근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품질 문제 때문에 손실이 발생한다면 이 ‘독립’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겠죠.

▲  LG화학 충당부채 내역.(출처=사업보고서)
▲ LG화학 충당부채 내역.(출처=사업보고서)

LG화학의 충당부채 현황을 한 번 보시죠. LG화학은 총 4가지 종류의 충당부채를 쌓아두고 있습니다. 판매보증, 온실가스배출, 소송, 복구 등인데요. 여기서 판매제품과 관련한 충당부채는 첫 번째 항목인 판매보증 충당부채에 해당됩니다.

판매보증 충당부채를 살펴보면 지난해 큰 변화가 하나 보입니다. 2019년 초만 하더라도 충당부채 기초금액이 2000억원이었는데요. 같은 해 말에는 4000억원이나 증가한 6000억원으로 늘었습니다. 충당부채가 급증한 원인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화재’였습니다. 다만 전기차 배터리가 아닌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화재에 따른 충당금 반영이었습니다.

▲  LG화학 2019년 실적내용.(출처=사업보고서)
▲ LG화학 2019년 실적내용.(출처=사업보고서)

LG화학의 ESS화재 이슈는 2017년부터 시작됐습니다. 현재까지 화재가 난 ESS시설 중 LG화학의 배터리를 사용한 곳은 수십여곳에 달합니다. 화재가 너무 많이 발생하자 민관 ESS 합동조사단까지 출범했는데요. 올 초 ESS 조사단은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를 지목했습니다. LG화학은 물론 조사결과에 반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지난해 말 대규모 충당금을 반영했습니다.

이번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아직 명확한 원인이 발견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LG화학 배터리 결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차량 제조 과정 혹은 제어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죠. 다만 이번 LG화학 배터리를 사용하는 차량 리콜이 LG화학에게 리스크인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LG화학 전지사업부문은 지난해 4500억원의 손실을 냈구요. 올해는 3분기까지 2700억원의 이익을 냈습니다. 충당금을 반영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흑자와 적자가 결정될 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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