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 구본준 LG그룹 고문.(사진=LG그룹)
▲ 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 구본준 LG그룹 고문.(사진=LG그룹)

이번 주 초 구본준 LG그룹 고문이 LG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한다는 보도가 나와 한 바탕 떠들썩했죠.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그룹을 승계했을 당시부터 구 고문의 계열분리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실제 구체적인 시기와 내용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계열분리 대상 회사로는 LG상사, 판토스, LG하우시스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LG가 갖고 있는 세 회사의 지분가치가 아주 크지는 않아 계열분리 자체가 어려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업계에서는 계열분리를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번 계열분리와 관련해 다소 섣부르지만 주목받는 사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승계입니다. 구 고문이 LG그룹에서 계열사들을 떼어 갖고 나온 이후 새로 탄생할 범LG가 그룹을 바로 누가 어떻게 이어받을까 하는 것이죠.

▲  LG그룹 계열분리 예상도.(자료=사업보고서)
▲ LG그룹 계열분리 예상도.(자료=사업보고서)

물론 아직 계열분리를 결정할 이사회도 열리지 않은 시점인데 벌써 승계를 논하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는데요. 실제 승계플랜은 승계보다 훨씬 일찍 가동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면 승계할 때 상속세, 분쟁 등으로 고생하기 때문이죠. 사실 LG그룹 특유의 장자승계의 원칙 또한 거대한 승계플랜의 하나이기도 하고요.

대표적으로 구광모 회장의 사례를 보시죠. 구 회장이 LG그룹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은 지난 2018년 6월입니다. 그런데 승계를 위한 준비는 언제부터 이뤄졌을까요. 물론 이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2004년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었던 당시 구광모 상무를 양자로 입적한 시기가 꼽힙니다. 승계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이러한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었겠죠.

구광모 회장은 같은 해 보유하고 있던 희성전자 지분 일부를 처분했는데요. 희성그룹과의 관계를 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을 겁니다. 향후 LG그룹 승계를 위한 재원마련 성격이라고 보는 게 맞죠. 2007년에는 희성전자 나머지 지분 모두를 처분했구요. 동시에 LG그룹의 지주사인 ㈜LG 지분을 매집해 나갔습니다.

이번에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하는 구본준 고문에게는 승계를 책임질 장남 한 명이 있습니다. 구형모 LG전자 책임(차장급)으로 현재 LG전자 일본법인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구광모 회장과는 사촌형제 관계며 LG그룹 4세 경영 시대를 책임질 후보자죠.

그렇다면 구형모씨는 향후 아버지인 구본준 고문으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나 과거 구광모 회장과 상당히 비슷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  지흥 과거 실적 추이.(자료=감사보고서)
▲ 지흥 과거 실적 추이.(자료=감사보고서)

구형모씨는 ‘지흥’이라는 개인회사를 갖고 있었는데요. 전자부품·소재 제조 업체로 LG그룹 계열사들과의 거래를 통해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지흥은 12년 전인 2008년에 충청남도 천안에 설립될 때부터 구 씨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구씨의 나이는 22세였습니다. 대표이사는 LG상사에서 근무했던 박종만 상무가 맡았던 것으로 과거 공시에 기록돼 있습니다.

지흥은 잘 나갈 때는 매출이 1000억원을 넘기도 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10% 웃돌기도 했죠. 가장 실적이 좋았던 해는 2012년으로 매출액 1263억원, 영업이익 103억원을 기록했습니다. 2015년 들어 갑자기 매출이 확 줄고 이후에는 영업손익도 적자로 돌아섰는데요. 정부가 대기업집단의 내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시작하며 사업을 중단한 데 따른 영향이었습니다. 구 씨는 2018년 본인이 소유하던 지분 전량을 사모펀드에 153억원을 받고 매각했습니다. 이후 지흥은 ‘이케이’로 사명을 바꿨고요.

구 씨 본인이 현재 얼마큼의 현금을 확보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의 배당금 및 지흥 지분 매각을 통해 재원을 마련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뿐이죠. 이외에 드러난 바로는 ㈜LG 지분 0.6%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시가로 따지면 790억원 수준입니다.

구본준 고문의 이번 계열분리는 향후 승계 이슈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현재 분리 가능성이 높은 계열사로는 LG상사, 판토스, LG하우시스 이렇게 세 곳인데요. 반도체 설계 회사 실리콘웍스와 화학 소재 제조업체 LG MMA의 분리 가능성도 점쳐집니다.

우선 구 고문이 LG상사와 LG하우시스 지분을 인수하는데 큰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구 고문이 보유한 ㈜LG 주식은 시가 1조원으로 평가받고 있고, ㈜LG가 보유한 LG상사와 LG하우시스 지분 가치는 3800억원이 채 안 됩니다. 구 고문 입장에서 실리콘웍스와 LG MMA 지분을 인수하는 게 큰 무리는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  구본준 고문 계열분리 후 지배구조 예상도.
▲ 구본준 고문 계열분리 후 지배구조 예상도.

다만 만약 구 고문이 5개 회사를 모두 떼어서 나온다면 지배구조를 어떻게 재편할지가 관건입니다. 승계를 고려한다면 지주사를 만들거나, 아니면 최소한 지주사 역할을 하는 회사를 놓고 다른 계열사들을 그 밑에 종속시키는게 유리하기 때문이죠. 구 고문이 각사의 지분을 문어발 형태로 소유하는 형식이라면 향후 승계작업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반대로 LG상사, LG하우시스, 판토스 세 개 회사만 분리한다면 아주 복잡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판토스는 LG상사에 종속돼 있기 때문에 두 개 회사의 소유권만 이전하면 되기 때문이죠.

물론 앞서 언급했듯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달 말 열리는 이사회에서 어떤 결정이 나는지에 따라 향후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계열분리한 회사들이 대부분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거나 그와 유사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며 “계열분리 후 차차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플랜이 함께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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