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홈페이지)
▲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홈페이지)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둘러싼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삼일회계법인'이 추정한 통합 항공사 매출 추정치와 수익성 추정치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통합해야 한다는 정당성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산업은행이 HDC현대산업개발로의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된 이후 약 2달만에 아시아나항공 생존 가능성 판단을 바꾼 이유에 대한 해소되지 않은 의혹과 궁금증이 있었죠. 이동걸 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참고하면 그 근거가 삼일회계법인이 작성한 모종의 보고서였던 것으로 밝혀진 셈입니다.

이동걸 회장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단지 약 1개월의 기간 동안 회계사들이 사무실에 앉아 만든 보고서 몇 장이 32년간의 복수민항 체제를 종식시키는 영향력을 지금 대한민국에서 발휘하고 있는 셈이죠. 지하철 노선 1개를 신설하는데도 수년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벌이는데 자칫 항공 소비자 편익이 크게 위태로워질 수 있는 복수 민항체제 종식과 같은 국가 항공정책 중대 사안을 산업은행이 의뢰한 민간 회계법인 1곳의 보고서가 좌지우지하는 형국입니다. 지금의 대혼란이 삼일회계법인이 만든 비밀 보고서 때문에 빚어진 상황이라면 산은은 이 보고서를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검증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동걸 회장은 지난 27일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죠.

"2022년 여름에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항공 수요가 회복된다는 전제하에 2023년 통합항공사 매출이 18조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삼일회계법인이 추정했다. 이후 연간 매출이 5000억~6000억원씩 늘어나고 당기순이익이 8000억~9000억원이 될 것이다. 또 합병으로 인해 3000억원의 수익 증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건 3% 금리로 이자 10조원을 감당하는 수준이다."

이 인터뷰에서 이동걸 회장은 수치의 근거 자료 제공처가 '삼일회계법인'임을 콕 집어 얘기했지만 그 이전 발언들에서는 '삼일회계법인'을 언급하지 않았죠. 앞선 <한국경제신문>과 24일 인터뷰에서는 "항공사 통합 경영 시뮬레이션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연 3000억원의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 연 3% 금리로 10조원의 부채를 더 감내할 수 있는 재무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부채 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라고만 말했습니다.

항공사 통합의 정당성에 대한 언론 인터뷰가 이어질수록 통합의 근거 논리로 참고했던 내부 자료와 수치를 하나씩 더 말해버리고 있는 겁니다. 삼일회계법인 언급도 앞선 인터뷰에서는 내세우지 않았다가 인터뷰가 더 많아지면서 발언을 해 버린 거고요.

그동안 시장에서는 구조조정없이 통합했을 경우 어떤 시너지가 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논란이 계속돼 왔습니다. 산업은행도 곤혹스러운 사정에 처하자 연일 자료를 내거나 기자간담회를 갖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애쓰는 상황이었죠. KCGI가 한진칼을 상대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소송까지 제기하면서 산업은행이 주도한 양대 국적 항공사 통합 과정은 중대한 기로에 처한 상황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통합 주장의 신빙성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삼일회계법인'을 언급한 것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이동걸 회장의 '삼일회계법인' 언급은 통합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설득력을 더해주기보다 오히려 반감시킬 가능성이 커 보이네요. 삼일회계법인이 작성한 이 보고서의 정체가 불확실할 뿐 아니라, 정상적인 보고서라도해도 매우 단기간에, 비밀리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체가 불확실한 보고서라면 국가 항공 정책이 이런 불확실한 보고서에 기초해 세워지고 있다는 가설을 만들어주고요. 정상적인 보고서인데 단기간에 만들어진 보고서라면 복수 민항 체제 폐기에 따른 소비자 편익 분석이 급조되고 허술하게 만들어졌을 의혹마저 던집니다.

▲  2020년 한국산업은행 수의계약 현황.(출처=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 2020년 한국산업은행 수의계약 현황.(출처=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우선 이 보고서는 산업은행과 정상적인 계약 절차를 맺고 만들어진 보고서는 아니어 보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공시되는 '2020년 한국산업은행 수의계약 현황(2020년 1월1일~2020년 9월30일)'을 보면 산업은행은 올해 들어 총 7건의 회계법인 용역 계약을 체결했네요. 이 중 삼일회계법인과 체결한 용역은 4건입니다. 확인해보니 항공사 통합과는 연관이 없는 계약입니다.

9월11일 HDC현대산업개발로의 아시아나항공 매각 계약을 해제했으므로 9월11일 이후 삼일회계법인과 계약을 맺고 항공사 통합 관련 컨설팅을 의뢰했을 수 있죠. 하지만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기록된 9월치 수의계약 현황에는 이런 기록이 없습니다. 500만원 이하 거래는 계약 상대방과 내용을 공개하지 않지만, 이런 중요한 컨설팅이 단돈 500만원짜리 거래일 리도 만무해 보이죠.

약 1개월 정도 시간이 소요된 단기간에 만들어진 보고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지난 16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9월 HDC현대산업개발과의 매각 협상이 최종 결렬된 이후 한진그룹 외 5대 계열 그룹과 항공업을 영위하는 타그룹사에도 의견 타진을 진행했지만, 코로나로 인한 산업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이들은 거절했고) 한진그룹과 뜻을 같이 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죠.

이 발언을 근거로 유추하면 HDC현대산업개발로의 매각이 결렬된 이후에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논의하고 내부 검토를 벌인 거죠. 5대 그룹의 의사를 모두 확인하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만큼 10월 정도가 되어서야 한진그룹과 본격 협상에 들어갔고 삼일회계법인 보고서 역시 그 즈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정상적인 보고서도 아니어 보이고, 게다가 단기간에 만들어진 보고서일 가능성이 커 보이는거죠.

이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보고서 작성 기간이 짧을 수록 시간에 쫒기게 되고 왜곡된 수치가 담길 가능성이 커보이는 것은 상식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과거 실적 추이.(자료=각사 사업보고서)
▲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과거 실적 추이.(자료=각사 사업보고서)

실제 이동걸 회장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2023년 통합 항공사 매출 추정치는 2018년 양대 항공사가 기록한 매출 추정치의 단순 합계 수치와 대동소이합니다.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보고 내용이라는 거죠. 2018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각각 12조6469억원, 6조2012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단순 합계는 18조8481억원이죠. 2018년은 코로나19도 없었고 '노(NO) 재팬'에 따른 일본 노선 매출 급감 사태도 없었던 시기입니다. 팬데믹 국면이 끝나면 2018년의 상황으로 항공 수요가 되돌아 갈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죠. 또 두 항공사를 통합하지 않아도 거둘 수 잇는 매출이기도 하고요.

아울러 이동걸 회장은 삼일회계법인의 보고서를 근거로 2023년 이후 통합항공사 매출이 5000억~6000억원씩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는데, 양대 항공사는 지난 2010년대부터 매년 매출 합계치가 이런 폭으로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어떤 근거를 기반으로 2023년 매출 예상치를 분석했는지 분석의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죠.

삼일회계법인의 컨설팅 중립성도 검증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서도 수의계약을 체결할 때 2인 이상으로부터 견적서를 받도록 합니다. 공정성과 중립성이 필요한 국가 사업에서는 한군데의 회계법인 보고서만 받아보고 의사결정을 하지 말라는 규정이죠.

이동걸 회장이 언급한 삼일회계법인 보고서 1장 때문에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 기금운용심의회의 직무유기 가능성도 불거질 수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9월 2조4000억원의 기안기금을 신청, 승인받았죠. 기금 신청 당시 아시아나항공이 '정상기업'이며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는 검토 의견서가 첨부됐기 때문에 기금 사용이 승인됐습니다.

그런데 불과 1개월여 남짓 뒤 이동걸 회장과 산업은행은 별도의 삼일회계법인 보고서를 받아 본 게 이번 인터뷰를 보면 드러난거죠. 이동걸 회장은 이 보고서를 근거로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과 통합하지 않을 경우 파산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을 거고요. 그렇다면 1개월 전 기금 신청 당시 기금 요청 자료에는 잘못된 수치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금운용심의회는 그 근거자료를 산업은행에 요청해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게 상식적인 직무 절차이고요.

업계 관계자는 "삼일회계법인 보고서 얘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소비자들의 편익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국가 정책이 1개월짜리 회계법인 보고서에 기초했다는 의혹을 갖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동네에 도로 하나 개설하는데도 수개월이 걸리고, 지하철 하나 뚫는 데도 타당성조사에 수년이 걸리는데 수조원짜리 국가 기간산업의 구조 변형을 결정하는데 단 1개월짜리 보고서가 영향을 주었다는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동걸 회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마지막으로 또 하나 부탁 드린다. 이 문제는 대한민국의 앞으로 항공운송산업의 명운이 달린 문제다. 지난 4~5년 전 한진해운-현대상선의 동반부실화가 있었다. 큰 호황 뒤 불황오며 해운업이 다 망할 지경이었는데 잘못 처리해서 비용은 엄청 들고 많은 노력 끝에 가까스로 과거 현대상선이 정상화의 길로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운업이 양사가 있었을 때의 시장점유율을 못따라가고 있다. 몇년 더 있어야 한다. 그 교훈 살려서 대한민국 항공운송업 발전하고 세계에서 중요 역할 할 수 있도록 점유율 더 높이기 위해 한 개 회사에 집착할 게 아니라 2개 회사 어떻게 합병해서 능력 있는 훌륭한 회사 만들 건지 정말 열심히 고민해야 할 때다"고 말했죠.

대한민국 항공운송산업의 명운이 달린 문제,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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