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콘텐츠뷰’는 게임, 드라마, 영화 등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콘텐츠를 감상·체험하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풀어보는 기획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치 않는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과거로 돌아가 현재의 불행을 막을 수 있다면? '타임 슬립(Time Slip)'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우연한 계기로 과거의 상대방과 조우하게 된 주인공이 미래에 닥칠 위험 요소를 없앤 후 뒤바뀐 현재에 안주한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시그널', '터널', '라이프 온 마스' 등이 비슷한 플롯(서사의 구성)으로 설계됐다.

▲  (사진=넷플릭스)
▲ (사진=넷플릭스)

영화 '콜'은 위에 예시로 든 드라마와 전혀 다른 전개 방식을 취한다. 선의로 베풀었던 도움으로 인해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는 내용이다. 전화로 맺어진 인연이 악연으로 변하는 과정을 타임 슬립 형태로 풀어내면서 특유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적백 대비, '분노'와 '고통'의 교차점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콜'은 1999년과 2019년을 사는 두 사람의 현재를 통해 각자가 처한 상황을 조명한다.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서연(박신혜 분)'은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어머니를 원망하며 살아간다. 1999년을 살아가는 '영숙(전종서 분)'의 경우 무당이자 신을 모시는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으며 고통에 몸부림친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통화는 두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1999년의 영숙이 서연의 집에 찾아가 가스폭발 사고를 막자, 20년 뒤 서연은 행복한 삶을 누린다. 과거를 바꾸면 현재의 삶도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것. 마음의 빚이 생긴 서연은 영숙이 죽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화로 전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영화는 영숙의 심리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빨간색'을 전면에 내세운다. 콜에서 상징하는 '빨강'의 의미는 '억압'이자 '분노'다. 미래를 내다보는 '신엄마(이엘 분)'는 영화 내내 빨간 립스틱을 짙게 바른 모습으로 나타나 영숙을 통제하고 구속한다. 강한 통제 속에 살던 영숙의 시선에서 볼 때 빨간색은 '억압하는 자'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  영화 속 '서연(박신혜 분)'과 '영숙(진종서 분)'. (사진=넷플릭스)
▲ 영화 속 '서연(박신혜 분)'과 '영숙(진종서 분)'. (사진=넷플릭스)

영숙은 신엄마의 통제에서 벗어난 후 빨간 가발과 붉은색 바지를 입는다. 방에 갇혀 있을 당시만 해도 무채색 옷을 입고 있던 영숙이 빨간색 의상을 선호하게 된 것은 앞으로 누군가를 통제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빨갛게 익은 딸기와 흥건한 핏자국도 억압됐던 영숙의 분노를 표출하는 매개체로 사용된다.

빨간색 소화기 또한 억압된 분노와 그에 대한 표출로 표현할 수 있다. 영숙이 신엄마와 대치하는 상황에서 사용한 소화기에는 하얀 분말이 담겨져 있는데 안전핀을 제거하는 순간, 상대의 시야를 흐리는 무기로 사용된다. 영숙은 안전핀을 뽑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억눌린 감정을 폭발시킨다.

이처럼 영화는 빨간색과 흰색의 대비를 통해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한다. 통제받는 사람의 옷 색깔과 소화기 분말가루를 통해 '고통'의 색을 표현했다면, 광기와 분노로 인한 희열의 상태는 빨간색으로 정의한 것에 주목할 만하다.

어쩌면 세대간 갈등의 이야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복합적인 연출을 통해 세대간 갈등에 대한 서사도 엿볼 수 있다. 영숙이 미쳐 날뛰게 된 결정적 배경은 '서연의 무관심'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갖고 있던 영숙은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현재의 서연을 위해 사고를 막아줬지만, 행복한 삶에 취해 자신을 홀대하는 것을 알게 되자 크게 분노한다.

영숙의 분노를 느끼고 죄책감에 휩싸인 서연은 그의 죽음에 대해 예고하게 되는데, 이것이 일종의 트리거(방아쇠) 역할로 작용한다. 살인에 눈뜬 영숙은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게 되고 이를 눈치챈 서연은 영숙에게 실망감을 표한 채 소통을 단절한다. 소통의 단절에서 비롯된 오해와 분노는 영숙을 광기에 물들게 만들고, 결국 서연을 고통속으로 몰아넣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  영화는 영숙의 분노와 표출을 통해 삶이 바뀌는 서연을 조명한다. (사진=넷플릭스)
▲ 영화는 영숙의 분노와 표출을 통해 삶이 바뀌는 서연을 조명한다. (사진=넷플릭스)

영화의 극적 장치일 뿐이지만 '전화기'로 대변하는 소통의 매개체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현 시대를 감안하면 모순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서연이 영숙과 통화할 때 사용한 전화기는 현 세대의 20대와 과거의 20대가 한 번쯤 사용해 본 익숙한 소통 기구다. 서연이 전화선을 뽑은 채 영숙과의 소통을 끊는 것은 현재의 20대와 기성세대간의 단절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2019년의 '서연'은 전형적인 '밀레니얼 세대'이며 그와 대립하는 영숙의 경우 설정상 'X세대(1960년대와 1970년대 베이비붐 세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지칭하는 말)' 시대의 인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극단적인 갈등을 표출하는 두 사람의 서사에서 혹독한 세대갈등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가 스쳐 지나간다. '서연이 영숙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며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갔다면 살인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처럼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이해관계에서 대립하고 있는 세대간 갈등도 서로의 '다름'을 수용할 줄 아는 배려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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