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호 SK텔레콤·SK하이닉스 부회장 주요 프로필(사진=SK텔레콤)
▲ 박정호 SK텔레콤·SK하이닉스 부회장 주요 프로필(사진=SK텔레콤)

인수합병(M&A) 전문가로 꼽히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SK그룹 안팎에서 그의 공과(功過)가 주목받고 있다. 지금의 통신 이외 분야로 SK그룹이 확장하는데 큰 공로를 세웠으나 확장 분야 중 뚜렷한 1위 기업이 없어 한때 그룹 내에서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이번 SK하이닉스 부회장 승진은 그룹에서 그의 공로를 더 높이사고 있고 여전히 그가 SK그룹 경영진 가운데 누구보다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음을 말해준다는 분석이다.

박 부회장은 3일 SK 그룹의 임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를 함께 지휘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신임 박 부회장은 기존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과 같이 SK하이닉스를 이끈다.

SK그룹은 박 사장의 부회장 보임 배경에 대해 “빅테크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SK텔레콤 CEO와 글로벌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SK하이닉스 부회장직을 겸임”한다며 “융복합화가 심화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서 반도체와 통신을 아우르는 SK ICT 패밀리 리더십을 발휘해 다양한 시너지를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라 밝혔다.

하이닉스부터 인텔 낸드 인수까지…반도체 M&A 이끌어

박 부회장은 그동안 SK그룹이 단행한 여러 M&A를 맨 앞에서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반도체 부문에서 각종 인수합병(M&A)을 주도했다.

 

그는 지난 2011년 SK텔레콤에서 사업개발실장을 맡으며 당시 하이닉스의 인수를 실무에서 주도했다. 박 부회장은 인수 이후에도 SK하이닉스와 관련된 굵직한 M&A에는 깊이 관여했다. 박 부회장은 SK하이닉스가 지난 2017년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부문 인수를 추진할 때에도 최태원 SK 회장, 당시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과 일본을 함께 방문하며 인수전에 참여했다.

또 SK하이닉스가 최근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문을 인수할 때에도 중대 결정을 내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그가 인수를 주도한 SK하이닉스는 SK그룹의 효자 계열사가 됐다. 2012년 10조여원이었던 매출액(연결 기준)은 2018년 40조원으로 늘었다. 2019년에는 반도체 사이클 하강과 맞물려 27조원으로 매출이 다소 줄었다. 하지만 2018년까지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간 동안 매년 수십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SK하이닉스가 명실공히 글로벌 2위 메모리반도체 회사로 올라서는데 산파 역할을 했다.

박 부회장이 이번에 SK하이닉스 부회장을 맡는 이유도 반도체 분야 추가 M&A를 염두에 둔 인사라는 게 다수의 관측이다.

박 부회장은 오랜 기간동안 가장 효과적인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 방식을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 현재 SK의 ICT(정보통신기술) 관련 계열사의 지배구조는 SK㈜-SK텔레콤-SK하이닉스로 이어진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사업 호조로 덩치가 커지면서 SK텔레콤을 중간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해 SK하이닉스의 활용 범위를 확대하자는 것이 중간지주사 전환의 목적이다.

SK텔레콤이 중간 지주사로 전환하면 SK하이닉스가 기존보다 더 적극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설 수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증손회사)를 두려면 해당 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지주회사 SK㈜의 손자회사이기 때문에 인수합병을 추진하려면 인수할 기업의 지분을 모두 사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하지만 SK텔레콤이 중간지주사로 전환하게 되면 SK하이닉스는 중간지주사의 자회사로서 손자회사의 인수합병에 따르는 지분 100% 보유 제약에서 벗어나게 된다.

M&A로 SKT 탈통신 주도했지만…"경쟁 치열해 성공여부 미지수"

박 부회장은 2017년 SK텔레콤 대표를 맡으면서 ICT 생태계 구축을 강조하며 주요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이후에도 그의 M&A 및 협력 행보는 이어졌다. 보안 분야에서는 물리보안 분야 2위 기업 ADT캡스를 인수했다. 이달에는 정보보안 자회사 SK인포섹과 ADT캡스의 합병을 발표했다. 정보보안과 물리보안을 합친 융합보안에 ICT를 더한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방침이다. SK인포섹은 앞서 SK㈜C&C의 자회사였지만 보안 경쟁력 강화를 위해 SK텔레콤의 자회사로 편입했다.

커머스 분야에서는 자회사 11번가와 글로벌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과의 협력을 이끌어냈다. 국내 시장에서 G마켓·옥션, 소셜커머스(쿠팡·티몬·위메프) 등과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펼치며 차별화에 고심하던 11번가는 아마존과 손잡으며 제품군을 늘리고 파트너들의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내부적으로는 보다 빠른 사업 추진을 위해 모빌리티 사업 부문의 분사도 결정했다. SK텔레콤은 내비게이션(T맵)·택시(T맵택시)·주차(T맵주차) 등의 모빌리티 사업을 펼치며 카카오모빌리티 등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미디어 분야에서는 SK브로드밴드가 케이블TV 2위였던 티브로드와의 합병을 마무리했다. SK브로드밴드는 기존 IPTV에 티브로드의 케이블TV 가입자들까지 흡수하며 자체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는 가입자를 늘렸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는 지상파 방송사들과 손잡고 웨이브를 출범시켰다. 지상파들의 콘텐츠에 SK텔레콤의 자본력 및 마케팅 역량을 더해 넷플릭스·시즌(KT)·왓챠 등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박 부회장은 SK텔레콤의 사업을 기존 무선사업 외에 미디어·보안·커머스·모빌리티 등으로 확장하며 '탈통신'을 추진하고 있지만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특히 모빌리티는 이미 경쟁사인 카카오모빌리티가 시장을 선점한 상황이고 커머스 분야는 국내 업체들과의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다. 미디어 분야는 OTT 절대강자 넷플릭스를 넘어야 하는 것이 숙제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박 부회장이 M&A 전문가로서 각종 M&A를 이어가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지만 시장을 선점한 분야는 없어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며 "M&A 사례들이 회사의 수익성 향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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