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갤러리아 명품관.(사진=갤러리아백화점 홈페이지)
▲ 갤러리아 명품관.(사진=갤러리아백화점 홈페이지)

갤러리아백화점을 운영하는 한화갤러리아가 모회사인 한화솔루션에 피흡수된다는 발표가 지난 8일 있었습니다. 궁금증을 낳고 있죠. 싱크대 수납장에 있을 식품이 공구 창고에 보관되는 격이거든요. 백화점 사업체가 전혀 이질적인 화학회사로 피흡수되는 것은 누가봐도 어색해 보이는게 사실이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는데요. '위기의 갤러리아백화점 구하기'가 아니냐는 관측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2020년 백화점 업계는 코로나19가 야기한 팬데믹 상황에서도 힘들지만 비교적 선방한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주요 4개 백화점의 매출(순매출액 기준)은 올 들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 중입니다. 1위인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3분기까지 2조2640억원이었던 순매출액이 올들어 1조8920억원으로 16.42% 감소합니다. 백화점 중에서 가장 큰 폭의 매출 감소죠. 그래도 온라인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백화점이 이 정도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점만 해도 선방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곳이 롯데백화점입니다.

신세계백화점도 나름 선방하고 있죠. 매출 감소폭이 7.42%였고요. 다른 백화점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쓱닷컴 등을 활용한 온라인 시장 대비를 미리미리 했던게 주효하지 않았나 하는 분석이 있습니다.

▲  주요 백화점 3분기 누적 순매출 및 영업손익 비교.(자료=각사 실적발표 자료)
▲ 주요 백화점 3분기 누적 순매출 및 영업손익 비교.(자료=각사 실적발표 자료)

이익 규모도 줄긴 했으나 아직 적자까지는 아닙니다. 주요 3사는 모두 이익을 거두고 있습니다. 롯데백화점은 여전히 1500억원의 이익을,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3분기까지 누적으로 각각 915억원, 1168억원의 이익을 내고 있죠.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수준들의 백화점이니 정말 산업의 구조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이익을 낼 수 있는 채비가 돼 있는 거라고 봐야 합니다. 비교적 코로나19 영향을 덜받는 고가품 시장을 파는 백화점이라는 점도 이익을 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문제는 갤러리아백화점입니다. 드러난 수치만 보면 매우 선방한 듯 보이지만 알고보면 간과할 수 없는 상당한 위기 상황에 있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자회사인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를 포함 올해 3분기 한화갤러리아의 누적 순매출액은 3150억원입니다. 한화솔루션이 공개하는 실적자료의 '리테일' 부문 수치입니다. 그런데 이 수치는 지난해 3분기 누적 순매출액(3347억원, 작년까지 영업한 면세점 매출액 제외) 대비 5.89% 감소한 것입니다.

매우 선방한 듯 보이는데, 여기엔 숫자의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올해 3월 신규 출점한 갤러리아백화점 광교점과 나인원한남점(고메이494)의 매출이 포함돼 있다는 점입니다. 광교점과 나인원한남 고메이494의 정확한 매출액은 알 수가 없으나 대략적으로 유추를 해보고 이를 올해 매출에서 빼보면 기존점의 부진이 얼마나 심각한 지 가늠해 볼 수 있죠. 3월부터 영업을 시작한 광교점의 경우 대략 순매출액이 1000억원(순매출액 기준) 내외로 분석됩니다. 올해 1월 폐점한 수원점의 매출이 총매출액 기준 2100억원 가량이었고 광교점의 경우 수원점 대비 2배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순매출액은 총매출액의 30~40% 가량인게 일반적이고요.

광교점 순매출액을 제외하면 올해 3분기까지 갤러리아백화점이 기록한 누적 순매출액은 2000억원 남짓에 불과한 거죠. 이는 지난해 3분기 누적 순매출액 대비 30% 이상 급감한 수치고요.

주요 4개 백화점 중에서 코로나19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곳은 갤러리아백화점인 거죠. 언택트 소비가 증가함에도 재원과 인력의 부족으로 다른 경쟁사보다 온라인 시장 확장에 대비를 못하지 않았나 싶고요. 정확한 사정이야 회사 내부에서만 알고 있겠지만 이번에 급작스럽게 한화솔루션에 피흡수하는 이유도 이런 어려움이 반영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  한화갤러리아 부채비율 추이.(자료=공시 종합)
▲ 한화갤러리아 부채비율 추이.(자료=공시 종합)

재무 상황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네요. 지난해부터 부채가 급격히 늘더니 올 들어서는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갔습니다. 면세점 사업 실패에 따른 자본 감소, 광교점 등 신규 출점에 따른 부채 증가가 가장 큰 이유로 보입니다. 여기저기 부동산을 처분하며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도 불안한 재무상황이 이유인 것 같습니다.

영업손익은 3분기까지만 보면 적자입니다. 다만 이에 대해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는 "연간으로는 지난해 대비 매출이 3% 가량 늘어나고 영업이익도 흑자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광교점의 경우 수원점 대비 매출이 약 2배 가량 많은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백화점은 연말 특수로 4분기 매출이 3분기보다 많습니다. 다만 올해는 연말에도 코로나19 영향이 계속돼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봐야겠죠.

갤러리아백화점은 그동안 끊임없이 매각설이 나왔던 백화점입니다. 이번 한화솔루션과의 합병 거래는 이런 세간의 추측을 모두 없앨 게 분명해 보입니다. 매각을 하려면 별도 법인으로 두는 게 거래의 편이성을 주니까요. 그러나 한화그룹이 백화점 사업을 궁여지책으로 화학 회사 안에 넣어 두었지만 이를 어떻게 운영하고 이익을 내 갈 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방책이 잘 안보이는 상황입니다.

한화솔루션을 재무적 버퍼(완충장치)로 삼아 백화점의 위기는 넘길 수 있으나 위기 이후의 도전도 생각해 봐야 하는거죠.

갤러리아백화점을 떠안게 된 한화솔루션은 정말 기이한 사업포트폴리오를 거느린 공룡 기업이 됐고요. 사업부문은 케미칼·태양광·첨단소재·리테일·기타 등 총 5곳입니다. 이전에도 100% 자회사로 한화갤러리아를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바뀌는 것은 없으나 별도 법인으로 거느리는 것과 통합 법인 안에서 하나의 사업부로 거느리는 것은 차이가 있죠.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공룡의 덩치에 비해 사업부별 시황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 사업구조였던 한화솔루션의 실적 변동성은 더 커질 수도 있어 보입니다. 2019년 기준 한화솔루션은 9조5033억원의 매출액(연결 기준)에 248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봤던 터고요. 올해는 3분기까지 누적으로 6조6332억원의 매출액과 401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8년의 경우 영업이익률은 채 2%가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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