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금호아시아나그룹 모태 기업 광주여객.(사진=금호고속 인스타그램 캡처)
▲ 금호아시아나그룹 모태 기업 광주여객.(사진=금호고속 인스타그램 캡처)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박삼구 회장을 보좌하며 10여년간 그룹 주요 전략적 의사결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물들이 최근 퇴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부실화 과정에 연루돼 있고 지난달 이뤄진 검찰의 압수수색과도 연관이 있죠. 한때 그룹 경영을 쥐락펴락했던 2인자의 씁쓸한 퇴장입니다.

재계는 오너인 1인자보다 2인자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1인자의 경영 방침을 실행에 옮기는 2인자야 말로 그룹의 방향과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흙수저가 기업에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위치라는 선망도 관심의 배경으로 작용합니다.

▲  금호아시아나그룹 주요 계열사 등기임원 현황.(자료=각사)
▲ 금호아시아나그룹 주요 계열사 등기임원 현황.(자료=각사)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옆에는 이학수 전 비서실장이 있었습니다. '삼성 불법 비자금 의혹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으나 한때 삼성SDS 상장(IPO)으로 조단위 거부가 됐다는 소식이 재계에서 화제였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후계 승계가 잘 이루어지는데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삼성그룹 외에도 현대그룹과 SK그룹, 그리고 롯데그룹에도 2인자가 있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잘 알려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최측근이었죠.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와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을 모두 지근거리에서 보필, 명실상부 SK그룹의 2인자 역할을 했고요. 고 이인원 롯데쇼핑 부회장은 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를 도와 롯데그룹을 국내 최대 유통그룹으로 만드는데 일조했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으로 승계가 무난히 이뤄지도록 직간접적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아 그룹 내에서 신망이 두터웠습니다.

2인자의 삶은 늘 살얼음판 위의 삶이죠. 1인자를 보좌해야 하지만 때로 1인자에게 필요한 조언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1인자의 감정에 따라 눈밖에 나기 일쑤고 매 순간 테스트를 받는 스트레스 속에 살아야 하는 것도 2인자의 숙명입니다.

고 김종필 전 총리는 자서전에서 "2인자는 첫째 절대 1인자를 넘보지 말고 품격을 유지하면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 둘째 성의를 다해서 보좌하는 인상을 주면서 아무리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고 견뎌야 한다. 진정한 인내는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다"라며 2인자론을 말했습니다. 그만큼 2인자의 삶이 고단하고 조심스러워야 하며 무엇보다 신중해야 함을 지적한 거죠.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2인자는 박 모씨와 윤 모씨였습니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더할 나위 없이 부러운 위치에 있었고요.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그룹내 영향력은 훨씬 컸다고 합니다. 하지만 거의 해체 상태에 갔던 그룹(금호산업 및 아시아나항공 등)을 산업은행으로부터 되사와 다시 재건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자금조달을 하며 그룹에 손해를 끼치는 모험도 마다하지 않아 이번에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습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무모한 시도는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업을 활용한 그룹 재건용 자금 조달이죠.

▲  공정위 조사결과 기내식 사업체 관련 금호 부당지원 거래 구조.(자료=공정거래위원회)
▲ 공정위 조사결과 기내식 사업체 관련 금호 부당지원 거래 구조.(자료=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에 따르면 2015년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실(금호산업 지주사업부 소속)은 그룹 차원에서 금호고속 자금 조달에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독점 사업권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실행했습니다. 전략경영실 주도 하에 9개 계열사는 45회에 걸쳐 총 1306억원을 금호고속에 담보 없이 저리(1.5~4.5%)로 신용 대여했는데요. 금호고속은 정상 금리(3.49~5.75%)와 차이에 해당하는 총 7억2000만원 이익을 얻었다는게 공정위의 판단입니다. 공정위는 이런 위법 행위로 총수일가가 약 80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겼을 것으로 추산했고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검찰은 총수 일가 뿐 아니라 그룹 2인자도 이 과정에 깊숙이 연루됐을 것으로 판단, 지난달 압수수색에 이어 지금도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하죠.

공정위의 검찰 고발 내용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그룹을 재건한 이후 아시아나항공을 활용해 했던 여러 거래 중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금호 상표권 계약, 베트남 호텔인 아시아나플라자사이공 지분 거래, 금호산업 지분 TRS 거래, 금호리조트 매각과 회계처리, 금호티앤아이를 활용한 계열사 지분 거래 등 무수히 많은 거래가 그룹 재건 과정에서 또는 재건 이후 이뤄졌습니다. 어떤 거래에 2인자들이 연루됐을 지는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재계 모든 2인자가 그렇지는 않지만 2인자들이 몰락하는 경우는 대부분 그룹이 쇠락하는 상황과 맞물립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지금 급격한 외형 축소 과정을 겪고 있고요. 최근엔 그룹의 중요 의사결정을 하고 그룹 조타실 역할을 하던 전략경영실을 해체했죠. 그만큼 그룹 오너 뿐 아니라 2인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죠.

▲  2008년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구조(출처=동양종금증권의 한국기업의 지배구조)
▲ 2008년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구조(출처=동양종금증권의 한국기업의 지배구조)

2008년과 지금의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구조를 비교해 보면 쇠락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강성부 KCGI 대표가 동양종금증권 애널리스트로 활약할 때 동료들과 만든 '한국기업의 지배구조'라는 책의 내용을 보면 2008년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다른 어느 그룹 못지 않게 막강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었습니다. 건설, 화학, 타이어, 항공, 리조트, 운송물류 등 한때 계열사가 50개가 넘어 재계 서열 10위권이었죠.

이 때 만해도 그룹 2인자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을 겁니다. 그러나 권불십년입니다.

무리하게 인수한 대우건설은 그룹에 부메랑이 돼 돌아왔고 2010년부터 산업은행 주도로 그룹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리, 무리, 무리'한 시도가 화근이었죠. 구조조정 와중에는 이런 '무리한' 경영에 반대하고 경영 노선을 달리한 금호석유화학그룹과는 계열분리했습니다. 이후 2015년 그룹 구조조정 5년여만에 박삼구 전 회장은 금호산업을 인수, 그룹 재건에 성공했으나 재건 과정이 투명치 않았고 자금난도 더해지면서 지금 위기의 시발점이 되고 맙니다.

▲  금호그룹 주요 계열사 재무 현황.(자료=각사 감사보고서)
▲ 금호그룹 주요 계열사 재무 현황.(자료=각사 감사보고서)

지난해부터는 아시아나항공의 어려움이 가중, 결국 핵심 계열사이자 선대 회장들이 피땀으로 일으킨 아시아나항공마저 매각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매각 과정은 험난했고요. 아직도 매각은 최종 완결되지 않았죠. 남아있는 금호고속과 금호산업 역시 대부분 주식이 은행에 담보로 들어가 있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빚 갚는데만 수년을 허비해야 할 판국입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쇠락하는 이 모든 과정을 돌이켜보면 어떤 경영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룹과 소속원의 운명이 크게 바뀌는 것 같아 보여 고개가 숙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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