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지, 떨어질지는 많은 이들의 관심사입니다. 특히 이번 달에는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또 한 번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데요. 문제는 비트코인이 워낙 예측하기 어려운 변동성을 보여왔던 자산인 만큼, 앞으로도 그 향방을 쉽게 낙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란 말처럼 비트코인 역시 지난 족적을 돌아보면 어떤 요인에 따라 가격이 변화해왔는지 대략적으로나마 가늠해볼 순 있을 겁니다.

이번에 <블로터>는 2편에 걸쳐 올해 1월부터 12월 현재까지 비트코인 가격 변동에 영향을 끼친 외적 요인들을 월 단위로 정리해 소개합니다. 시기별 평균 가격대와 당월 발생한 사건과의 연계성을 중심으로 구성했으며 그간의 경향을 훑어보기 위한 기사로만 참고하길 바랍니다.

▲  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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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비트코인은 안전자산? 불안 속 ‘기사회생’

코인마켓캡 기준 올해 1월 1일 비트코인 가격은 약 780만원선에서 시작했습니다. 앞서 6개월 이상 내리 하락세를 겪던 참이죠. 장기간 불황에 시장도 얼어붙었습니다. 2019년 한 해 동안 폐업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만 약 20여곳에 달합니다.

하지만 2020년 초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안전자산’ 혹은 ‘가치 저장소’로서 비트코인에 거는 투자자들의 기대치가 높아지기 시작했는데요. 그중 한 사례가 미국과 이란의 군사 갈등입니다. 1월 3일 미국이 이란의 군부 실세인 가셈 솔라이마니를 드론 공습으로 사살하고 이에 이란이 8일 미사일 공격으로 보복에 나서자 하루 동안 비트코인 가격은 무려 8%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두 나라 간 전운이 감지되자 비트코인에 투자한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많아진 거죠. 이는 보통 금과 같은 안전자산에서 나타나는 경향인데요. 앞서 2019년 미·중 무역 분쟁이 격화되던 시기에도 비슷한 가격 상승이 관찰된 바 있습니다. 이어 1월 말 전세계에 코로나19 및 그에 따른 경제적 불안이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도 비트코인 가격은 올랐습니다. 780만원에서 시작한 시세는 29일 기준 1000만원을 돌파했고요.

2월: 살얼음 위에 피어난 기대와 희망

2월에는 몇 차례 등락이 있었지만 26일까지 약 4주가량 1000만원대 지지선이 유지됐습니다. 코로나19가 일부 국가를 넘어 본격적인 확산에 들어간 시기인데요. 당시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정치적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처럼 비트코인 가격은 국제 정서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데요. 2월 12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의장이 “연준은 디지털 통화 개발에 상당한 투자를 진행 중이며, 가상자산이 달러를 위협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발언을 하자 비트코인 가격은 이틀에 걸쳐 약 6%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이 시기는 중국이 자체 디지털 통화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며 미국도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던 분위기였는데요. 세계 경제의 양강이 가상자산 시스템을 제도권 금융에 도입하려 한다는 시도 자체가 위기를 넘어 투자자들에게 적잖은 기대를 심어줬던 겁니다.

▲  2020년 1~2월 비트코인 가격(초록선) 그래프 (자료=코인마켓캡)
▲ 2020년 1~2월 비트코인 가격(초록선) 그래프 (자료=코인마켓캡)

3월: ‘디지털 금’이라고? 하룻밤 손실률 ‘50%’

하지만 불안과 기대만으론 튼튼한 기반이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블룸버그>는 3월 9일 “금융 시장의 대학살 속에서는 가상자산도 피난처가 되지 못했다”고 보도했는데요. 당시 가격 그래프를 보면 가파른 절벽이 보입니다. 특히 12일에선 13일 사이엔 하룻밤 사이 약 50% 수준의 폭락이 발생하며 한 달 이상 1000만원대를 유지했던 가격이 최저 480만원대까지 내려앉고 맙니다.

올해 유난히 ‘디지털 금’으로서 비트코인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전세계 실물 경제가 초토화되자 결국 투자자들도 비트코인에 등을 돌린 건데요. 이같이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폭락을 ‘패닉 셀(Panic Sell)’이라고도 합니다. 불안감이 쌓이고 쌓이다 터지는 시점이 되면 누가 먼저일 것 없이 자산을 매도해 현금화하려는 현상이죠.

오히려 같은 시기 금값은 크게 올라 7년만에 뉴욕상업거래소 기준 온스당 1700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는데요. 가장 큰 위기의 순간에 안전자산으로서 빛을 발했던 건 비트코인이 아니라 역시 금이었던 겁니다.

▲  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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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경제에 죽고 정책에 살다

이처럼 강력한 경제 위기 앞에 결국 무너진 비트코인이지만, 이를 살려낸 것도 각국의 강력한 경기 부양 정책입니다. ‘최악의 3월’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까지 비트코인 가격은 전반적으로 상승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데요. 처음 힘을 보탠 게 글로벌 양적완화 정책의 시행입니다.

당시 전문가들은 전세계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기 시작하자, 그 여파가 가상자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금융이 다소 진정되면서 변동성을 노린 투기 수요가 비트코인으로 넘어와 또 한 번의 상승세를 만들어냈다는 건데요. 실제 4월 한 달간 비트코인 가격은 약 38% 반등하며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습니다.

또 4월은 5월 12일로 예정된 비트코인 ‘반감기’를 앞두고 가격 상승에 대한 부수적 기대감까지 차오르던 시기였습니다. ‘반감기’란 총발행량이 2100만개로 제한된 비트코인 시스템이 4년에 한 번 채굴에 따른 비트코인 보상을 절반으로 줄이는 시기를 의미하는데요. 투자자들은 이를 통해 비트코인 신규 공급이 줄면 자연스레 가격이 오를 거란 기대를 갖게 되는 거죠.

▲  3~4월 비트코인 가격 그래프
▲ 3~4월 비트코인 가격 그래프

5월: "모두가 알았다" 김빠진 반감기

그럼 반감기 직후 기대만큼 가격이 올랐을까요? 약 10% 정도 상승했으나 그 이상 치고 나가진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뒤 며칠간 2~3% 등락을 반복하다 반감기 직전 가격으로 떨어지기도 했죠. 곧 다시 회복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변동폭이 크지 않은 달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반감기는 이미 수개월간 가격에 반영돼 왔다”고 분석했습니다. 급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이미 날짜까지 사전에 알려져 있었던 만큼, 기대에 따른 가격 상승은 3~4월에 걸쳐 천천히 이뤄져 왔다는 거죠.

실제로 반감기 이후 직접 영향권에 놓이는 건 일반 투자자가 아닌 채굴 업자들입니다. 같은 자원을 투입해 1000만원을 얻던 수익이 순식간에 500만원으로 반토막 나는 거니까요. 참고로 다음 반감기는 4년 뒤로 예정돼 있습니다. 현재 비트코인은 1850만개 가량 채굴된 상황으로 2100만개까지 얼마 남지 않아 보이지만, 남은 반감기를 고려하면 그 시기는 2140년 정도로 아직 멀었다고 합니다.

6월: 기관의 ‘태세전환’…비트코인 투자 중심축의 변화

이 시기 들어 시장에는 새로운 물결이 감지되기 시작합니다. 바로 지금도 비트코인 가격을 지지하고 있는 기관들이 본격적인 투자에 나선 겁니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최고점 대비 절반에 불과했지만 미국 가상자산 운용사 그레이스케일(Grayscale)의 비트코인 투자신탁(GBTC) 규모는 3개월 사이 3배 이상 증가할 만큼 급격한 성장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비트코인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기관들의 창구 역할을 그레이스케일이 담당했던 거죠.

약 반년여가 지난 지금도 그레이스케일이 보유한 비트코인은 매일 500~600개 이상 증가하고 있습니다. 6월 기준 기관 투자자의 점유율은 88%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요. 현재 그레이스케일의 전체 가상자산 운용 규모도 13조원을 상회하고 있습니다. 실로 적잖은 확장세입니다.

가상자산 분석가 조셉 영(Joseph Young) 역시 비트코인에 부정적이던 기관들의 달라진 태도 변화를 지적했습니다. 특히 JP모건은 고객들에게 "비트코인을 구입하지 말라"고 권유할 만큼 가상자산과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는데요. 이 시기를 전후해 "비트코인 가격이 원가와 비교해 그리 비싼 수준은 아니다"라며 전향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기관이 투자 기조로 전향하면서 시장 주도권도 개인에서 기관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가격 지지선도 이전보다 두터워진 모양인데요. 6월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내리 1000만원 이상을 유지하며 하반기 추가 상승을 위한 에너지 비축에 돌입하게 됩니다.

▲  1~6월 비트코인 가격 그래프
▲ 1~6월 비트코인 가격 그래프

상반기 종합

1~6월 사이 비트코인 가격은 코로나19 경제 위기로 무너졌던 3월을 제외하면, 매달 새로운 기대요인 속에 일정 수준의 상승과 하락 흐름을 반복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안전자산의 면모는 아직 부족했지만 위기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금과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고, 그런 비트코인에 대한 기관의 평가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비트코인의 역할이 재확립된 후 투자 중심축이 이동하며 새로운 모멘텀이 만들어진 시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넘버스]2020 비트코인 가격 변천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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