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현대차 IT3사 합병 합병비전.(출처=현대오토에버 합병 증권신고서)
▲ 현대차 IT3사 합병 합병비전.(출처=현대오토에버 합병 증권신고서)

현대자동차그룹의 자동차IT를 담당하는 3개사가 지난 11일 전격적으로 합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합병의 취지, 격하게 공감합니다. 그동안 하드웨어에 집착하는 것으로만 보였던 현대차그룹의 전략이 소프트웨어 분야로까지 이제서야 넓혀지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하는 합병 발표죠. 다가오는 미래차 시대의 방향과 흐름을 잘 올라탄 전략으로 일단 평가하고 싶고요.

이미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포커스는 누가 빠르고 보기좋은 자동차를 잘 만드는지에 있지 않죠. 얼마나 환경 우호적이고 비용 효율적이며 일상생활 친화적인지가 차량 선택 기준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자율주행과 같은 미래차 기술이 미래차 시장을 선점하는데 주요 선택 기준이 될 정도로 급격하게 소비자 인식도 바뀌고 있고요.

현대차그룹도 이번 합병 배경에 대해 "자동차 산업은 기존 내연기관 기반 대량생산 기술에서 MECA(Mobility Electrimication, Connectivity, Autonomous) 기술로 트렌드가 변화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차량 내 주요 기능의 융·복합과 연결성이 확대되면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과 복잡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차량 내부에는 차량 기능의 융·복합과 연결성을 아우르고 표준화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요구되며, 차량 외부에서는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차량보안 등 차량 소프트웨어와 연동되는 인프라의 구축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의도는 좋은데 또 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8년 현대모비스를 ‘존속 모비스(가칭)’와 ‘분할 모비스(가칭)’ 2개로 쪼개고, ‘분할 모비스’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시켜 ‘합병 글로비스’를 탄생시킨다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가 부당한 합병비율이라는 강한 비난으로 시장에서 철퇴를 맞은 적이 있죠. 이번에도 또 비슷한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이번엔 현대엠엔소프트 소액주주들이 들고 일어날 기세인데요. 또 합병비율이 이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2018년의 현대글로비스 합병 추진 때는 힘있는 기관투자가들이 들고 일어나 합병 계획을 철회시켰으나, 이번엔 힘없는 소액주주들이라 별 힘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크긴 하죠.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두가 알아야 하고 국내 굴지의 대그룹이 진행하는 자본거래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 자동차IT 3사(현대오토에버, 현대오트론, 현대엠엔소프트)의 합병 계획은 겉으로만 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합병신고서를 보면 합병비율은 ‘1 대 0.1177810 대 0.9581894(현대오토에버:현대오트론:현대엠엔소프트)’입니다. 현대엠엔소프트 주주는 보유하고 있는 현대엠엔소프트 주식 1주당 합병 후 존속회사인 현대오토에버 주식 0.9581894주를 받는다는 의미죠. 합병가액이 각각 8만4949원, 1만864원, 8만8381원으로 결정된 데 따른 결과입니다.

▲  합병 후 재무상태표 추정치.(자료=현대오토에버 합병 증권신고서)
▲ 합병 후 재무상태표 추정치.(자료=현대오토에버 합병 증권신고서)

합병 전·후 재무상태 추정치를 보면 현대엠엔소프트의 자본총계가 2089억원이고 현대오토에버의 자본총계가 5426억원이죠. 한마디로 현대엠엔소프트의 기업가치가 현대오토에버의 절반에도 못미친다는 뜻입니다. 현대엠엔소프트 자본총액이 현대오토에버 자본총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니 현대엠엔소프트 주주들은 합병으로 현대오토에버 주식 0.95주를 받는 것도 "감사합니다"를 외쳐야 할 처지인 듯 보이죠.

그러나 두 회사는 발행주식 수가 다릅니다. 현대엠엔소프트는 414만5000주, 현대오토에버는 2100만주입니다. 자본총액을 발행주식총수로 나눈 1주당 자본총액은 각각 5만404원, 2만5836원입니다. 거의 두배죠. 우위의 순서가 뒤바뀝니다. 이 말은 1주당 자본총액으로만 보면 현대엠엔소프트 주주들이 현대오토에버 주식 약 2주를 받아야 하는데, 0.95주밖게 받지 못하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현대엠엔소프트 소액주주들이 뿔이 난 이유입니다. 비록 장외시세이긴 하지만 최근 현대엠엔소프트 거래호가는 14만원대까지 올라갔었다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합병가액은 8만8000원대로 결정됐죠. 거래 가격으로만 봐도 약 40%의 심리적 재산상 손해를 현대엠엔소프트 주주들이 보는 셈인 거죠.

이런 합병비율이 도출된 까닭은 합병 후 존속회사(현대오토에버)이자 상장회사인 현대오토에버의 주가가 최근 4개월간 두배 이상 급등을 했기 때문입니다.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을 하면 상장사는 시장가격으로, 비상장사는 회계사가 계산하는 정해진 공식에 따른 본질가치로 합병가액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시장가격은 기업의 본질가치를 훨씬 벗어나 움직이곤 하죠. 현대오토에버가 딱 그런 경우라고 현대엠엔소프트 주주들은 말합니다. 현대오토에버의 기업 본질가치는 변화가 없는데 주가는 두배 이상 급등했고, 반대로 현대엠엔소프트의 기업 본질가치는 정해져 있는데 상장되지 않아 인정받지 못하는 장외시장 주식가격대로 평가되지 못했던 겁니다.

현대엠엔소프트의 한 소액주주는 이를 두고 “오너(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현대오토에버의 합병가액이 본질가치보다 더 높게 형성될 수 있는 시점을 골랐다고 볼 수 있다”며 “주가가 급등한 시점에 합병을 발표해 결과적으로 오너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이 도출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오토에버 지분 9.57%를 갖고 있고요. 합병 후에는 합병회사 지분 7.44%를 갖게 됩니다. 합병에도 불구 별다른 지분율 변화가 없는게 눈에 띄네요.

이런 풍경은 과거에도 봤던 장면이죠. 지난 2018년 현대글로비스 합병 때도 정의선 회장의 지분율을 높여주기 위해 정의선 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에 유리한 합병이 기획됐다는 지적이 많았죠. 결국 합병 계획이 철회됐고요.

이번에는 합병 계획이 철회되는 상황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2년전과 비슷한 결과를 내는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합병의 결과물을 보시죠. 오너인 정의선 회장의 자산은 예상했던 대로 크게 늘어나네요.

▲  현대차그룹 자동차IT 3사 합병 전후 정의선 회장 자산 증감 현황(자료=공시 종합)
▲ 현대차그룹 자동차IT 3사 합병 전후 정의선 회장 자산 증감 현황(자료=공시 종합)

합병 전 현대오토에버의 자산을 지분율대로 안분해 보면 정의선 회장(9.57%)은 현대오토에버 자산 1016억원 어치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합병 이후 정의선 회장(7.44%)은 합병 후 존속회사 현대오토에버 자산 1267억원어치를 가지게 됩니다. 자산 증가율은 25%에 달합니다. 부채도 21% 늘고요. 자본도 28% 급증합니다.

단순 계산이지만 떠안게 되는 부채보다 가져가게 되는 자본이 더 많은 비율로 늘어나는 거죠.

반면 현대엠엔소프트의 소액주주들은 합병 전 현대엠엔소프트의 자산과 합병 후 존속회사인 현대오토에버의 자산을 지분율대로 안분해 비교해보면 떠안게 될 부채는 53%가 늘어나고요. 가져가는 자본은 되레 37% 급감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일부 소액주주는 청와대 청원을 올리자고 하고 일부는 소송에 나서자고도 합니다. 이번 합병 계획이 법적 문제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재벌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판단 때문이겠죠.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