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vs 인터넷 자유"

iOS의 프라이버시 정책을 놓고 애플과 페이스북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내년 초로 예고된 iOS14의 앱 추적 투명성 기능이 불을 지폈다. 애플은 앱이 광고 등을 목적으로 이용자 데이터를 추적할 경우 이용자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기능을 도입할 방침이지만, 페이스북은 광고 시장 축소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이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애플의 정책으로 인해 맞춤형 광고가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중소 사업자들이 피해를 볼 거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인터넷을 떠받치는 광고 생태계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에 애플의 프라이버시 정책을 비판하는 전면 광고를 냈다. "우리는 모든 소규모 사업자를 위해 애플에 맞서겠다"라는 큰 제목을 내건 광고는 애플의 프라이버시 정책으로 인해 페이스북 광고를 이용하고 있는 사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 거라는 내용을 담았다. 이어 17일에는 애플에 맞서 인터넷 자유를 쟁취하자는 내용의 전면 광고를 게재했다. 애플 정책으로 개인화 광고가 제한되면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될 거라는 경고다.


앱 추적 투명성 기능이 뭐길래?


이처럼 페이스북이 애플의 프라이버시 정책에 제동을 건 가장 큰 이유는 앞으로 아이폰에서 광고 사업을 위한 이용자 데이터 추적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애플은 지난 6월 연례 개발자 행사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앱이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용자 프라이버시를 강화하는 정책을 'iOS14'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업계에서 논란이 된 부분은 '앱 추적 투명성(ATT, App Tracking Transparency)' 기능이다.

해당 기능은 이용자 데이터 추적과 관련해 개인의 사전 동의에 기반해 데이터를 처리하도록 하는 ‘옵트인(opt-in)’ 방식을 의무화하는 정책이다. 예를 들어 아이폰에서 페이스북 앱을 실행시켰을 때 페이스북이 당신의 활동을 다른 회사 앱과 웹사이트에 걸쳐 추적하는 것을 허락할 것인지 묻는 팝업을 띄워 이용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데이터 추적을 막는 식이다.

▲  이용자에게 앱의 데이터 추적 허용 여부를 묻는 iOS14 팝업창
▲ 이용자에게 앱의 데이터 추적 허용 여부를 묻는 iOS14 팝업창

그동안 애플은 'IDFA(Identity for Advertisers)'라는 광고 식별자를 운영해왔다. 개인 정보 노출은 피하면서 이용자 기기 식별은 가능하도록 한 것으로, 이를 통해 모바일 광고 네트워크는 사용자를 추적하고 맞춤형 광고를 사용자에게 노출할 수 있었다. 즉, 맞춤형 광고를 위해 애플이 허락한 통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애플은 iOS14부터 IDFA를 사용하기 위해 이용자 동의를 얻도록 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용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광고 식별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정교한 맞춤형 광고, 광고 기여도 측정이 어려워질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디지털 광고 업계에서는 80~90%의 이용자들이 데이터 추적을 거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애플은 업계의 반발을 의식해 데이터 추적에 대한 이용자 동의 의무를 연기했다. 하지만 내년 초부터는 정책을 시행한다는 방침이며, iOS 업데이트를 통해 예고한 프라이버시 기능들을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 15일 강화된 프라이버시 정책 일부를 iOS14.3 업데이트에 반영했다. 개별 앱들이 어떤 종류의 이용자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 앱스토어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도록 했다.

명분 뒤에 숨은 비즈니스 모델 싸움


애플과 페이스북은 각자의 정의와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애플은 프라이버시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개발자들의 프라이버시 관행을 이용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형태로 공개해 데이터 투명성을 높인다는 방침으로, 이용자들에게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확인하고 앱을 선택할 권한을 줬다. 나아가 데이터 추적 승인 권한도 이용자에게 쥐여줬다.

페이스북은 소상공인과 인터넷 자유를 앞세웠다. 맞춤형 광고가 어려워질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건 페이스북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광고를 집행하는 소규모 사업자가 될 거라는 얘기다. 페이스북은 자사 광고 솔루션을 이용하는 1000만 이상의 사업자들이 피해를 볼 거라고 주장했다. 또 개방형 인터넷 생태계를 떠받치는 광고 시장이 무너질 경우 이용자들은 구독료와 인앱 결제를 요구받게 될 거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또한 이 같은 메시지를 정책 입안자들이 주로 챙겨보는 유력 일간지 전면 광고로 실어 전방위적인 공세에 나섰다.

▲  애플 프라이버시 정책에 반대하는 페이스북의 신문 전면 광고
▲ 애플 프라이버시 정책에 반대하는 페이스북의 신문 전면 광고

이에 대해 팀 쿡 애플 CEO는 17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이용자들이 자신들에 대해 수집되는 데이터와 해당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페이스북은 이전처럼 앱과 웹사이트를 통해 이용자를 계속 추적할 수 있다. iOS14의 앱 추적 투명성은 단지 이용자 허락을 먼저 요청할 뿐이다"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명분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처럼 그럴듯한 명분이 맞부딪히고 있지만, 핵심은 결국 비즈니스 모델 싸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애플의 프라이버시 정책으로 이용자 데이터와 결합한 광고 사업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꾸린 구글, 페이스북 등의 경우 적지 않은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페이스북은 자사 광고 매출이 반 토막 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반면, 기기 기반의 서비스 구독 모델이 중심인 애플은 잃을 게 없다.

<뉴욕타임즈>는 "이 싸움의 핵심은 페이스북과 애플의 돈을 버는 방식이 정반대 방식이라는 점이며, 어느 회사가 이기느냐에 따라 앞으로 수년간 인터넷의 모습이 바뀔 것"이라고 짚었다. 광고주가 비용을 떠받치는 광고 중심의 인터넷 생태계로 가느냐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광고 없는 인터넷으로 가느냐에 대한 사업 헤게모니 싸움이라는 지적이다.

당장은 프라이버시를 앞세운 애플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이용자 입장에서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정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특히 지난 2018년 3월 불거진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 사건은 애플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당시 페이스북은 데이터 분석 업체 CA를 통해 약 8700만명이 넘는 사용자 데이터가 유출돼 논란을 겪었다. 제3자에게 사용자 데이터에 대한 접근 권한을 쉽게 넘겨주는 정책 탓에 사용자 데이터가 미국 대선 유권자 타깃팅을 위한 알고리즘 개발에 사용됐다. 이용자 의도와 무관하게 개인정보가 정치적 의도로 이용된 셈이다.

하지만 서비스 경험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금의 인터넷 생태계를 떠받치는 건 광고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를 위해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하고, 어느 정도 데이터 활용을 허락할 거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간다. 데이터를 담보로 한 인터넷 생태계에 균열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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