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쌍용차 첫 전기차 '코란도 E-모션' 티저 이미지
▲ 쌍용차 첫 전기차 '코란도 E-모션' 티저 이미지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고는 하지만, 내연기관 시장에 비하면 전기차 시장은 아직 작고 작은 시장에 불과합니다. 판매량만 해도 내연기관에는 여전히 비할 바가 못되죠.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만들고 파는 현대차그룹도 전기차 판매 비중이 전체 판매량의 2%에 그칩니다(2020년 3분기 내수 기준). 바꿔말하면 아직 전기차 시장은 그다지 돈이 되는 시장은 아니란 얘기죠. 그럼에도 세계 유수의 완성차 업체들이 하나같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드는 건 미래를 위한 투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런 점에서 쌍용차의 전기차 시장 진출은 많은 우려를 사고 있습니다. 당장 돈이 급한 회사가 돈이 안되는 전기차에까지 공을 들이게 됐기 때문이죠.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하기엔 쌍용차의 현재는 너무나 절박한 상태입니다.

15분기 연속 적자, 상장폐지 위기..

쌍용차의 작금의 상황을 잘 말해주는 말 들이죠. 최근엔 600억원 어치의 대출금 조차 갚지 못해 연체까지 발생했습니다. 이미 쌍용차에 손절을 선언한 대주주 마힌드라가 일부 상환해주긴 했지만, 이는 현재 추진 중인 쌍용차 매각 작업을 원할하게 하기위한 전략일 뿐 쌍용차를 도와준 것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 쌍용차는 내년 초 전기차 출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내년 2월, 첫 전기차 ‘코란도 E-모션’을 내놓겠다는 건데요. 쌍용차 대표 모델인 코란도의 전기차 버전으로, 나름의 승부수를 띄운건 같은데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합니다.

오래 경영난에 시달려 온 회사가 전기차를 만든다 한 들 얼마만큼의 경쟁력을 가졌겠냐 하는 것이죠. 투입되는 자금부터 경쟁사들에 크게 밀릴텐데 말이죠.

▲  출처=각사 공시
▲ 출처=각사 공시

아니나 다를까 쌍용차의 3분기 연구개발(R&D) 비용은 1131억원으로, 현대차 2조원, 기아차 1조원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물론 R&D 비용이 전적으로 전기차 개발에만 사용되는 돈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전기차를 포함한 미래 시대를 대비하는 실탄 규모로는 비교가 가능해 보입니다. 게다가 전기차가 핵심인 테슬라의 3분기 R&D 비용만 해도 3억 3400만 달러, 한화로 3672억원 수준에 달합니다. 쌍용차의 3배를 넘어서는 수치죠.

꼭 많은 돈을 투자해야 더 좋고 훌륭한 차를 개발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미 브랜드 경쟁에 크게 밀려 있는 상황이라면,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 비용은 품질 경쟁에서 더욱 두드러져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내년에는 전 세계 유수 브랜드의 전기차 신차 출시가 줄줄이 예고돼 있습니다. 이 안에는 전기차에만 올인하는 자동차 기업들도 많습니다. 그만큼 전기차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 경쟁이 치열할 텐데 그 안에서 쌍용차의 전기차가 존재감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물론 쌍용차에게 1131억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전체 매출의 5%를 넘어서는 수준이죠. 이는 현대차, 기아차의 전체 매출액 중 차지하는 연구개발 비중인 2.8%, 2.9% 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수치입니다. 그만큼 회사 나름대로 최선의 공을 들이고 있단 뜻이죠.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쌍용차로선 절대적으로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데 가뜩이나 돈 안되는 전기차가 예상보다 더 부진하게 되면 작금의 경영난이 더 가중될 수 있으니 말이죠.

쌍용차 역시 이를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쌍용차가 전기차 개발에 이토록 공을 들이는 이유가 뭘까요. 돈이 없어 그 흔한 하이브리브 모델 조차 만들지 못하고, 디젤과 가솔린에만 의존하면서 말이죠.

사실 이는 정부 정책의 영향이 큽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0월 "미래차 경쟁력 1등 국가로 도약하겠다"며 미래차 산업 신속 전환의 일환으로 전기차를 포함한 수소차, 자율 주행차 등의 생산 및 판매 비중을 크게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요.

구체적으론 전기 및 수소차의 국내 판매 비중으로 2022년까지 10%, 2025년 18%, 2030년 33.3%까지 확대하고, 자율주행차는 2021년 레벨 3자율차를 출시하고, 2024년에는 레벨 4 일부 상용화, 2027년에는 레벨 4 전국 상용화를 달성하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입니다.

▲  산업통장자원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수소·전기차 보급 로드맵(출처=산업통상자원부 자료)
▲ 산업통장자원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수소·전기차 보급 로드맵(출처=산업통상자원부 자료)

여기에 최근에는 완성차 업체가 전체 판매량 중 정부가 정한 비율만큼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로 판매토록 하는 '보급 목표제' 까지 도입됐습니다. 보급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업체에는 기여금 등 제제까지 부과한다는 방침인데요.

국내 완성차 업체들로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전기차 등 미래차를 의무적으로 늘려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야 정부 눈 밖에도 안나고, 소액이나마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을테니 말이죠.

하지만 이는 쌍용차에게 유독 불리한 정책임이 틀림없습니다.  현대차나 기아차야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미래차를 향한 기술력과 자금력은 이미 충분히 보유하고 있습니다. 르노삼성과 한국GM도 이미 모회사를 통해 전기차 생산 및 판매 비중을 늘리고 있고요. '돈 없고 빽 없는' 쌍용차만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처지입니다.

그렇다고 정부의 의무생산 방침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전기차와 수소전기차로 넘어가는 소비의 흐름은  글로벌 트렌드이기 때문입니다.  쌍용차의 경영난은 스스로 자초한 거고요.

다만 쌍용차가 전기차 개발에 든 비용을 내연기관에 더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쌍용차에게 급한 건 미래가 아니라 현재니까요. 차라리 그 돈을 렉스턴이나 티볼리 등의 인기 차종을 개발하는 데, 혹은 쌍용차의 충성 고객들이 그렇게 원하는 무쏘를 부활시키는 데 투입했으면 쌍용차의 살림살이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아직 돈이 안되는 전기차 시장에선  테슬라 급의 돌풍을 일으키지 않고서야 '도 아니면 빽도'에 불과할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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