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에 대한 대중의 생각은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블록체인을 그저 가상자산 투기를 위한 기술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 까닭입니다. 그러나 실제 블록체인이 응용되는 분야는 그보다 훨씬 다양합니다. 본 코너에서는 기술적 관점에서 블록체인이 가져올 사회적 변화와 미래를 전망해봅니다.

2020년은 ‘위드(with) 코로나’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낱 독감 같았던 전염병이 이처럼 오래 전세계에 기승을 부릴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텐데요. 물론 우리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맞서 비대면 중심의 새로운 생활 양식을 만들어냈고, 사회적 거리두기 외에도 방역 시스템을 기술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하기 시작했죠. 블록체인 역시 그동안 코로나19 전선에서 크고 작은 활약을 펼쳐왔습니다.

그중 대표적으론 DID(블록체인 분산 아이디)의 재발견을 들 수 있습니다. DID는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 신분 인증 기술인데요. 개인의 신원 정보를 사용자 단말기와 외부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필요할 때 원하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특징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개인정보의 저장 및 주도권이 기업·기관에서 개인에게로 돌아온 거죠. 특히 구조적으로 조작이나 도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높은 신뢰성도 함께 인정받고 있는데요. 이는 비대면 중심 사회가 열리면서 DID가 다시 주목받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공공기관용 서류·자격증 재발급, 계약 처리 등을 위해선 기관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중요도가 높은 행정업무일수록 ‘대면 인증’을 통한 신뢰성 확보가 필수였기 때문인데요. DID는 이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대면 활동을 비대면으로 바꾸는 데 일조합니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 10월 ‘서울 일자리 전자근로계약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했다고 밝혔습니다. 근로계약서 체결 및 보관, 이력 관리 등 수기 기록과 대면 위주로 처리됐던 과정들이 블록체인을 통해 온라인 비대면 기반으로 전환한 건데요. 이를 통해 약 1만5000명이 혜택을 받았다고 합니다.

부산시도 올해 코인플러그와 손잡고 DID 기반 부산 블록체인 통합 서비스 ‘B PASS’를 도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부산시민들은 간단한 DID 발급을 통해 부산시민카드, 시청 방문증, 도서관 회원증 등을 비대면으로 발급받을 수 있게 됐고, 향후 재난지원금 등 정부에서 제공하는 각종 복지 혜택을 누릴 때도 대면 접수의 필요성이 크게 줄어들 전망입니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DID 시스템이 늘 사용자의 신원과 서비스 이력 조회를 투명하게 지원해주기 때문이지요.

▲  코인플러그와 부산시가 개발한 B PASS 앱
▲ 코인플러그와 부산시가 개발한 B PASS 앱

또 국내 통신3사 중심의 DID 연합체인 ‘이니셜’은 올해 9월 자체 앱을 통해 주민등록등본과 건강보험 자격확인서 발급 등을 신청할 수 있는 서비스 및 내년까지 대학 관련 서류도 비대면 발급이 가능한 서비스를 상용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밖에도 행사장 비대면 접수, 비대면 호텔 체크인·체크아웃 등 DID를 통한 비대면 시스템 구축 사례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유통 분야에서도 블록체인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백신 유통이 시작되면서 백신 물류 및 접종 기록 관리에 블록체인이 적잖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데요. IBM의 블록체인 부문 리더인 마크 트레삭은 최근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백신의 까다로운 관리 조건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백신이 적절한 장소로 운송되고,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백신 등장 후 첫 6개월~12개월 사이 가장 많은 위조품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블록체인을 통해 유통 전반의 무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  IBM의 건강 자격 증명 솔루션 IBM Health Pass (자료=IBM)
▲ IBM의 건강 자격 증명 솔루션 IBM Health Pass (자료=IBM)

블록체인은 구조상 하나의 데이터가 분산된 여러 서버에 동시에 기록되고, 이들 간의 검증과 합의 시스템을 통해서만 접근 및 입력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생산·유통 초기부터 백신과 관련한 모든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연계함으로써 철저한 정품 인증과 기록 조작 등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백신의 경우 최대한 많은 사람이 정상적으로 접종 받아야 집단면역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그 어느 때보다 유통 관리에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수적으론 블록체인을 유통망에 도입하면 여러 검증 절차가 소프트웨어로 처리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통해 사람의 직접 검증에 따른 실수를 방지하고, 관련된 인건비 등이 절약된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유통뿐 아니라 접종 기록 관리 및 추적에도 블록체인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백신 유통이 빨라지면서 ‘백신 접종을 받았는가 받지 않았는가’를 증명하는 일도 하나의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을 전망합니다.

이 때도 위조 가능성이 있는 단순 종이 증명서보다 모바일로 간편히 휴대할 수 있으면서도 블록체인을 통해 신원 인증 및 접종 기록 관리를 투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공공 시스템이 구현된다면 그와 같은 시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또 과거와 달리 충분한 절차를 거치지 못한 채 유통이 시작된 백신에 대해 추후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 시스템을 활용하면 가장 정확하고 빠른 시간 내에 해당 백신 접종자들을 찾아내고 문제를 통보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블록체인은 위드 코로나 시대를 넘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각 분야에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일조하는 기술이 될 전망입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