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위) 활동을 평가하는 ‘전문심리위원’의 평가를 놓고 삼성전자와 일부 언론사 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미디어오늘> 측은 삼성 측이 강일원 전문심리위원의 평가를 왜곡한 내용을 언론에 뿌렸다고 하고, 삼성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 중이다.

이번 삼성의 전문심리위원 논란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치르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재판과 이번 내용이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과거 서사를 훑어보면 이번 준법위를 둘러싼 논란과 쟁점을 해석할 수 있다.

▲  사법부의 이재용 부회장 양형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의 전문심리위원 보고서를 놓고 삼성그룹과 일부 언론 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사진=삼성전자, 블로터DB)
▲ 사법부의 이재용 부회장 양형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의 전문심리위원 보고서를 놓고 삼성그룹과 일부 언론 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사진=삼성전자, 블로터DB)

삼성그룹의 준법위-전문심리위 결성 이유는

삼성 준법위는 최고경영진(CEO)을 포함한 임직원의 불법행위를 근절하고 준법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1월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조직한 기구다. 이 위원회는 독립성을 갖춘 외부 기구를 통해 삼성 내부 경영진의 불법행위를 감시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삼성이 스스로 이런 위원회를 설립한 건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수뇌부와 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등이 뇌물을 놓고 맞물린 국정농단 사건 재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으로부터 용역대금과 최서원의 딸 정유라에 대한 말 구입비, 말 보험료, 영재센터 지원 요구 등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2심 재판에서 징역 25년, 벌금 20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재용 부회장도 이 재판 1심에서 징역 5년형이 선고되며 수감됐지만 2심에선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으로 석방됐다.

하지만 2019년 8월 대법원에서 원심 일부를 뒤엎고 파기 환송하며 재판은 다시 고등법원으로 넘어갔다. 2심에서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던 말 3필과 스포츠 영재센터 지원금 등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뇌물로 판단한 것으로, 파기환송심에서 이를 인정할 경우 집행유예 처분도 받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재판부가 삼성그룹의 과감한 혁신과 횡령·뇌물범죄를 차단할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재벌체제 폐해 시정 등을 주문했다. 삼성은 이에 호응해 진보 성향이 강한 김지형 위원장(전 대법관)을 필두로 준법위를 만든 것이다.

준법위 실효성 논란.. 전문심리위, 이재용 양형 '바로미터' 되나

준법위는 삼성이 자정 작용을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기보단 재판부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즉 삼성이 재판부의 요구에 따라 재판 내용과 관련이 적은 장치를 만든 것으로, 이 자체만으로 논란이 됐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지난 1월 준법위의 실효성을 점검할 전문심리위원단을 꾸린 것도 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지를 판단하는 일종의 ‘감독기관 위 감독기관’을 두겠다는 것이다. 전문심리위원회의 판단이 이재용 부회장의 양형에도 적잖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둔 것 자체가 파격적이고, 일견 편향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심지어 특별검사(특검)는 지난 2월 재판부의 준법위 설치 제안과 전문심리위원회를 통한 판단이 “사실상 집행유예형 선고 예단을 드러낸 것”이라며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기까지 했다. 기피 신청은 기각됐지만 이로 인해 재판은 8개월여간 지연됐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전문심리위원회의 실효성 논란도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 14일 열린 ‘이재용 국정농단 뇌물사건 파기환송심과 삼성 준법감시위 진행에 대한 평가 토론회’에서 경제개혁연구소 소장인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평가 기간 1개월 동안 현장 면담조사는 3일에 걸쳐 10시간만 진행된 졸속 평가”라고 전문심리위 작동의 실효성 문제를 강조했다.

경제민주주의21 대표를 맡은 김경율 회계사도 이날 자리에서 “전문심리위원들이 진행한 것은 ‘심리’가 아닌 ‘맞춤형 컨설팅’”이라며 “(삼성전자 회계 감사에) 연인원 136명이 6만7639시간을 썼다. (전문심리위원들이) 10시간을 쓴 평가를 인정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전문심리위원은 강일원, 김경수, 홍순탁 3인으로 구성돼있다. 이 가운데 이번엔 논란이 된 건 강일원 위원(전 헌법재판관)의 평가다. <경향신문>이 지난 15일 강 위원의 보고서를 입수해 18개 항목평가를 분석한 내용을 보도했는데, 전체 중 부정 평가가 14개에 달했다는 것이다

<한겨레>와 <미디어오늘>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미디어오늘>은 18개 평가 항목 가운데 9개를 ‘미흡’으로, 7개를 ‘다소 미흡’으로 평가내렸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냈고, <한겨레>는 16개 평가 항목 중 14개 항목에서 준감위의 미흡한 점을 지적했다고 밝혔다.

하루 뒤인 지난 16일, 다수 매체에서 강 위원이 평가한 내용 가운데 긍정 평가가 10개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준법위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게 매체들의 주된 논조다. 이에 대해 <미디어오늘>은 삼성전자 홍보팀이 출입 기자들에게 참고자료를 건네줬다며 ‘삼성, 강일원 전 재판관 “준법감시위 긍정 평가” 보도 작업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놨다.

삼성은 이에 대해 “다른 여러 매체는 이들 기사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당사를 포함한 여러 경로를 통해 취재를 했으며, 이에 대해 당사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사실관계를 성실하게 설명했다”며 “당사의 준법경영 의지를 왜곡하고 신인도를 훼손하는 보도에 대해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라고 반박했다.

강일원 위원의 판단은 어땠나

준법위 활동에 대한 전문심리위원의 평가는 모든 항목이 서술식으로 돼 있다는 점에서 긍정과 부정을 쉽게 평가하기 어렵다. 다만 보고서 ‘Ⅲ.점검결론’에서 위원들이 어떤 식으로 준법위 활동을 보고 있는지가 서술돼있어 준법위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다. 보고서는 특검과 피고인·변호인, 전문심리위원의 동의로 서울고등법원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보고서에서 강일원 위원은 준법위 실효성에 대해 “최고경영진에 대해서는 준법의무 위반 리스크가 인지되어도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경영권 승계와 연관된 리스크가 인지된 경우에도 준법통제기준에 따른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이는 다른 임직원에게 적용되는 것과 동일한 프로세스가 최고경영진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삼성의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준법감시제도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준법감시위원회 탈퇴가 각 계열사의 서면통보만으로 가능한 점, 위원 선임이 관계사의 이사회 결의를 통과해야만 가능한 점, 예산배정 중단이나 사무국 직원 보직변경 등을 막을 실효적인 방안이 없는 점을 고려하면, 준법감시위원회 조직을 포함한 준법감시제도가 지속가능한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다”고 밝혔다.

준법위의 활동을 감시할 모니터링 체계가 수립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 사항으로 올랐다. 강 위원은 “2020년 9월에 발주된 컨설팅에 따라 이에 대한 보완이 이루어질 수도 있으나, 현재 기준으로는 공백 상태”라며 “최고경영진의 준법의무 위반 리스크는 현재에도 상존하고 있음. 2020년 9월에 발주된 외부컨설팅 결과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모니터링 체계를 수립했어야 함”이라 말했다.

강 위원은 결론에서 준법위의 최고경영진 준법통제기능 절차에 대한 문제점, 일반 임직원에 대해서 촘촘한 통제가 이루어지면 최고경영진의 위법행위도 방지할 수 있다는 삼성그룹의 주장에 대한 문제점, 전문심리위 점검의 일정상 한계가 있었음에도 점검항목에 관한 결과가 미비했다는 내용도 함께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자사 뉴스룸을 통해 ‘강 위원의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훨씬 많았다’고 입장을 내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뉴스룸 내용에 대해 “강일원 위원의 판단 내용이 담긴 결론 부분을 봤을 때 준법위에 대한 긍정적 판단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며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될 수 있는 부분인데 일부 매체들이 부정적 내용을 부각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본질은 보고서 내용이 재판에서 공개되기 전에 언론들이 이를 먼저 보도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부각되지 않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기자들에게 보도 참고자료를 보냈다는 <미디어오늘> 측 보도에 대해선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