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네이버는 스타트업 투자를 활발히 하는 회사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2015년 5월 스타트업 양성조직인 ‘D2 스타트업 팩토리(D2SF)’를 출범하고부터는 기술 스타트업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왔죠. 지난달 네이버가 올린 공시를 참고하면 네이버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110여곳의 국내외 스타트업에 투자해왔습니다. 인수 또는 간접 투자는 제외하고 추려낸 숫자입니다.

이제껏 투자한 스타트업들을 살펴보면 인공지능(AI)·데이터·헬스케어 분야가 가장 많았습니다. 당장의 수익 실현보다는 미래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다양한 기업들에게 투자하는 경향이 짙어 보였죠. AI 기반으로 태아의 입체 초음파 사진을 생후 아기의 얼굴로 변환해주는 알레시오도 네이버의 포트폴리오에 있었고요. 소변이 물에 닿는 소리를 스마트폰으로 분석해서 비뇨기 건강관리를 돕는 사운더블헬스도 네이버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VR・AR(딥픽셀・레티널)이나 반도체를 개발하는 퓨리오사AI, 유전체 분석에 대한 맞춤 솔루션을 제공하는 아이크로진, 딥러닝으로 저해상도 이미지 또는 영상을 고해상도로 변환해주는 에스프레소미디어 등 폭넓은 분야를 고루 투자해왔습니다. 우아한형제들에는 2017년 350억원을 투자했다가 딜리버리히어로(DH)의 우아한형제들 인수를 계기로 투자원금의 6배가 넘는 1800억원의 차익을 벌어들이기도 했죠.

하지만 올해는 좀 달랐습니다. 협업을 통한 시너지를 꾀한 듯, ‘선택과 집중’을 택했거든요. 네이버가 직접 투자한 국내외 기업은 올해만 총 27곳이었습니다. 전년 대비 2배 가량 늘어난 숫자였죠. 이 가운데서도 쇼핑·물류 분야 투자에 ‘올인’한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에프에스에스 ▲딜리셔스 ▲두손컴퍼니 ▲위킵 ▲테크타카 ▲아워박스 ▲브랜디 ▲아비드이앤에프 ▲캐로셀 ▲발란 등인데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네이버의 성장동력인 커머스에 전력투구하겠단 의지가 읽힙니다.

“위기를 기회로” 고속성장하는 네이버 쇼핑

올해 네이버 실적은 고공행진의 연속이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시장이 얼어붙었지만, 비대면 바람을 타고 커머스·핀테크·클라우드·콘텐츠·서치플랫폼(검색 광고) 등 각 사업부문이 고루 선전한 덕분입니다. 지난 3분기 공시부터 라인 실적이 제외됐는데요. 이 숫자를 포함하면 총 2조598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셈입니다.

‘반짝’ 성적은 아닙니다. 4분기 전망도 밝거든요.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네이버의 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조4896억원, 3072억원을 기록할 거란 예상이 나옵니다. 지금까지의 성장을 이끈, 또 앞으로의 네이버를 견인할 주역은 단연 쇼핑입니다. 지난 3분기 커머스는 매출액 2850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41%의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광고 매출(7101억원)이 더 많긴 했지만 같은 기간 8.2% 성장률을 기록했으니, 잠재력이 다른 셈이죠.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코로나19가 네이버에게 기회 아닌 기회를 가져다 준 것처럼 보입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올해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실제로 한 말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가 “위기이자 기회”라며 “위기에 잘 대응해 추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했었죠.

쇼핑·물류, 직접할 생각은 없고요

커머스의 생명은 배송입니다. 풀필먼트는 물류의 전체 과정을 대행해주는 개념을 뜻하는데요. ‘진화한 물류창고’라고나 할까요. 상품 입고부터 분류, 재고 관리, 피킹, 패킹, 배송 등을 통합 관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켓배송’의 아이콘인 쿠팡이 바로 이 풀필먼트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죠. 업계에 따르면 국내 풀필먼트 시장 규모는 올해 약 1조8800억원으로, 2022년이면 2조3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네이버에게도 풀필먼트는 해결해야 하는 숙제였습니다.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되는 물건이 빨리 배송되면 될수록 네이버 쇼핑의 경쟁력이 갖춰지게 되는데, 입점한 판매자 대부분이 자체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려운 중소상공인(SME)이기 때문이죠. 네이버는 쿠팡처럼 직접 상품을 사서 팔거나 풀필먼트를 하는 것보단 투자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네이버 전체 매출의 3분의 1이 커머스에서 나오고 있다지만 네이버가 모든 걸 직접 할 필요는 없겠죠. 섣불리 뛰어들었다간 실패할 가능성도 크고요. 투자를 통한 협력은 영리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올해 3월에만 풀필먼트 스타트업인 위킵, 에프에스에스, 두손컴퍼니에 각각 25억원(지분율 12.5%), 30억원(15.4%), 13억원(7.43%)을, 8월엔 아워박스에 20억원(5.70%)을 투자했습니다. 10월엔 축구장 16개 규모의 곤지암 풀필먼트 센터를 구축한 CJ대한통운 주식 3000억원어치를 확보했습니다. CJ대한통운은 올해 4월부터 네이버 브랜드스토어 입점 업체의 풀필먼트를 맡아왔었죠. 또 수요 예측 및 주문·재고 관리, 배송 등을 관리해주는 5PL 통합 물류 솔루션을 자체 개발한 테크타카(6.17%)도 네이버로부터 5억원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동대문과의 협력도 끈끈해졌습니다. 동대문 도매상과 전국 소매상을 연결하는 패션 B2B 플랫폼 신상마켓 서비스를 운영하는 딜리셔스에는 76억원(8.97%)을 출자했고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동대문 풀필먼트(fullfillment Service·통합물류대행)의 반응이 좋자, 운영사인 브랜디와 자회사 아비드이엔에프에 총 100억원(각각 1.97%, 12.50%)을 단독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아비드이엔에프는 동대문 소매상과 도매상을 위한 모바일 도매센터를 운영 중입니다. 지난달엔 네이버 쇼핑에서 명품 영역을 강화하기 위해 럭셔리 이커머스 플랫폼 발란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같은달 배달에도 돈을 풀었습니다. 배달대행 1위 업체 ‘생각대로’ 운영사 인성데이타에 400억원(10.3%)을 투자한 겁니다. 인성데이타는 국내 퀵서비스 시장 70%를 점유한 업체입니다. 네이버는 업계 3위인 ‘부릉(메쉬코리아)’의 주주이기도 합니다. 취약했던 신선배송은 홈플러스, GS프레시 등 콜드체인 배송망을 가진 업체들과의 제휴를 통해 채워 나가기로 했습니다.

▲  (단위:백만원)
▲ (단위:백만원)

네이버 한성숙 대표는 지난달 ‘커넥트 2021’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한 대표는 "배달산업에 직접 진출할 계획은 없다. 직접 모빌리티 배달 사업에 나서기보단 스마트스토어를 쓰는 중소사업자들이 좀더 사업을 잘 영위할 수 있는 지원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며 "장기적인 측면에서 어떤 물류 (서비스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투자한 업체들과 다같이 협업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확실히 올해 네이버의 행보는 유통망 구축에 쏠려 있었습니다. 여기에 압도적인 데이터까지 확보해 가고 있으니, 무서운 성장이 예상되네요. 올해는 연결망을 갖추는 데 힘썼다면 내년엔 라이브 커머스를 밀어주는 데 주력할 것 같습니다. 지난달 네이버 라이브 커머스인 쇼핑라이브는 누적 시청자 수 4500만명을 기록했습니다. 거래액도 8월 대비 340%나 훌쩍 커졌죠. 업계에 따르면 라이브 커머스 시장은 2023년 10조원 규모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참, 네이버는 중고거래 시장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올해 글로벌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딱 한 건 있었는데요. 동남아시아 최대 중고거래 사이트 운영사, 캐로셀(Carousell) 748억6300만원을 투자했습니다. 올해 스타트업에 투자한 규모 가운데 가장 큰 금액이었죠. 2012년 설립된 캐로셀은 의류, 가구, 전자제품, 심지어는 자동차, 부동산까지 거래되는 C2C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베트남,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등 8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동남아판 중고나라・당근마켓입니다.

네이버의 올해 투자 현황, 바로 네이버의 진로를 말해주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내년에는 또 어느 분야에 투자할지 궁금함도 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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