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스마트폰의 보급에 따라 만화시장이 '웹툰'으로 재편된 이후 웹툰업체들의 사업전략도 눈에 띄게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우는가 하면, 웹툰 사업부를 분할해 전문성을 확보하는 기업들이 많아졌는데요. 특히 레진엔터테인먼트를 필두로 한 유료웹툰 업체들의 사업전략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  키다리스튜디오(왼쪽)와 레진. (사진=각사 홈페이지 갈무리)
▲ 키다리스튜디오(왼쪽)와 레진. (사진=각사 홈페이지 갈무리)

특히 최근 웹툰 전문 제작사로 알려진 '키다리스튜디오'의 행보에 관심이 쏠렸는데요. 키다리스튜디오가 국내 유료웹툰업체 1, 2위를 다투는 레진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기 때문입니다. 봄툰, 델리툰을 잇따라 인수하며 웹툰 제작과 유통의 밸류체인을 갖춘 키다리스튜디오가 레진엔터테인먼트까지 품게 되면서 네이버웹툰과 다음웹툰에 이어 3위 규모로 밸류에이션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들여다 볼 점은 레진의 자회사인 '레진스튜디오'와 'UL엔터테인먼트'가 인수 목록에서 빠졌다는 것인데요.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 등 웹툰 원작 콘텐츠의 영상화가 각광받는 시점에서 다소 아이러니한 부분입니다.

키다리스튜디오, 레진 자회사로 품다

지난 14일 키다리스튜디오는 레진엔터테인먼트와 주식 교환 계약을 맺었습니다. 레진엔터테인먼트 주주가 소유한 주식은 주식교환일에 키다리스튜디오로 이전되고, 그 대가로 주식교환 대상 주주에게 레진엔터테인먼트 주식 1주당 키다리스튜디오의 주식 3.8610381주를 교환해 지급하는 방식인데요. 교환·이전 일자는 내년 2월 23일로 결정했습니다.

주식교환을 완료하면 키다리스튜디오는 교환대가로 레진엔터테인먼트 주주에게 발행 신주 1364만8005주를 교부하는 것 이외에 지배구조 관련 경영권의 변동은 없습니다. 다만 키다리스튜디오가 레진엔터테인먼트를 100% 지배하는 모자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한 지붕 두 가족' 관계를 형성하는데요. 이를 통해 한층 견고한 밸류체인을 구축하게 됩니다.

▲  지난해 레진엔터테인먼트 요약 재무정보. (사진=채성오 기자)
▲ 지난해 레진엔터테인먼트 요약 재무정보. (사진=채성오 기자)

키다리스튜디오는 현재 웹툰 제작업체인 키다리이엔티를 통해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봄툰, 델리툰, 레진엔터테인먼트 등 플랫폼을 구축한 만큼 제작과 유통에 있어 완벽한 수직 구조를 형성하게 된 것이죠. 키다리이엔티에서 생산하는 콘텐츠를 장르에 특화된 플랫폼에 배분해 더 많은 수요층을 끌어오는 전략이 유력합니다.

특히 이 전략은 해외시장 공략에서 더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레진엔터테인먼트는 국내 외에 일본과 미국에서 직접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키다리스튜디오는 직전에 인수한 프랑스 웹툰 플랫폼 델리툰을 통해 유럽시장 서비스 지역을 확대하는 만큼 플랫폼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 될 것으로 보입니다.

▲  (사진=채성오 기자, 레진엔터테인먼트)
▲ (사진=채성오 기자, 레진엔터테인먼트)

해외시장 공략 계획을 재편함에 따라 키다리스튜디오의 매출도 큰 폭의 상승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이는데요. 레진엔터테인먼트를 품게 되면서 연매출 1000억원 규모 이상의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키다리스튜디오가 2017년 인수한 봄툰(봄코믹스)은 지난해 2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레진엔터테인먼트의 경우 같은 기간 345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양사 실적을 단순 결합해도 700억원에 가까운 매출입니다. 해외시장 성과에 따라 올해 600억원대 매출이 예상되는 레진엔터테인먼트의 매출이 더해지면 약 1000억원대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 투자·은행업계의 전망인데요.

신주발행을 통한 인수 구조를 짠 만큼 현금 지출이 없고 레진(구 레진코믹스) 플랫폼 운영체제도 그대로 존속함에 따라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레진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서는 최근 3년간 꾸준히 이어진 영업손실을 흑자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이자,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입니다.

부가사업 밸류체인 보류

사실 레진엔터테인먼트를 구성하는 알짜 사업부는 엔터테인먼트에 특화된 '레진스튜디오'와 'UL엔터테인먼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IB업계를 통해 인수설이 흘러나왔을 당시에도 키다리스튜디오가 영상제작과 배우 엔터테인먼트를 영위하는 두 업체까지 품게 돼 웹툰 제작·유통·영상화에 이르는 대규모 밸류체인을 완성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요.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키다리스튜디오가 레진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연일 웹툰업계의 핫이슈로 떠올랐지만 정작 레진스튜디오와 UL엔터테인먼트의 편입 여부에 대해서는 조명하지 않았는데요. <블로터> 취재 결과 두 업체는 인수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레진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블로터>에 "인수 후 레진스튜디오와 UL엔터테인먼트는 별도법인으로 분리·운영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  UL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들. (사진=UL엔터테인먼트 페이스북 갈무리)
▲ UL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들. (사진=UL엔터테인먼트 페이스북 갈무리)

결과적으로 UL엔터테인먼트와 레진스튜디오가 키다리스튜디오의 영향권에서 벗어남에 따라 영상화에 대한 밸류체인은 형성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물론 레진엔터테인먼트와의 교류에 따라 지속적인 협업관계는 이어가겠지만 웹툰과 엔터테인먼트 영역이 분리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UL엔터테인먼트와 레진스튜디오 모두 레진엔터테인먼트가 각각 인수한 기업들인데요. 레진스튜디오의 경우 tvN 드라마 '방법'을 스튜디오 드래곤과 공동 제작했고,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제)', '소울메이트(가제)', '방법: 재차의(가제)' 등을 준비하고 있는 투자제작사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와 '지옥'도 제작할 만큼 역량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특히 UL엔터테인먼트와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영상 제작과 배우 캐스팅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왔습니다. 지난 2017년 레진엔터테인먼트가 인수한 UL엔터테인먼트는 현재 배우 김성균, 서은수, 금새록, 김영재 등 10명의 배우가 소속된 업체입니다. 레진스튜디오가 제작하는 D.P.에 김성균이 출연하는 등 엔터테인먼트 밸류체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  레진엔터테인먼트 투자사 요약 재무정보.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레진엔터테인먼트 투자사 요약 재무정보.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 부분에서 들여다 볼 부분은 손익에 대한 계산입니다. 2018년 기준 6억6274만원이었던 UL엔터테인먼트의 자산은 1년 만에 9957만원으로 줄어듭니다. 자산이 줄면서 부채도 감소했지만 매출은 같은 기간 절반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는데요. 당기순손실도 전년 대비 두 배 수준으로 감소합니다.

레진스튜디오는 제작을 진행한 작품들이 지난해부터 수익을 내기 시작하면서 안정된 포트폴리오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업의 특성상 초기 투자 대비 회수하는 시점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1년 새 매출은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지난해 당기순손실 3억8845만원을 기록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웹툰시장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키다리스튜디오 입장에서는 이런 위험성을 안고 엔터테인먼트 영역까지 품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었을겁니다. 레진엔터테인먼트가 키다리스튜디오의 자회사가 됐지만 독립 경영을 하기 때문에 기존 프로젝트 추진이나 협업 구도에 있어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분석도 주효했을테고요. 웹툰 유통, 영상화, 콘텐츠 공급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완성한 포털업체들과는 또 다른 행보임에는 분명합니다. 지켜봐야겠죠. 과연 콘텐츠 제작사를 품지 않았던 키다리스튜디오의 결정이 '독'이 될 지, '득'이 될 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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