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저니맨‘ 김동선은 왜 한화에너지로 돌아왔나

발행일 2020-12-26 06:36:11
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김동선 한화에너지 상무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인 김동선 상무보가 그룹 계열사인 한화에너지에 임원으로 복귀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저니맨(Journeyman)이 돌아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옵니다. 저니맨은 자주 소속팀을 옮기는 선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요. 김 상무보가 최근 몇 년 동안 해외를 오가며 수차례 직업을 바꿔왔기 때문에 이에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김 상무보는 당초 그의 두 형제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김동원 한화생명 전무처럼 한화그룹 계열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2014년 한화건설에 입사해 해외토건사업본부 및 신성장전략팀에서 경력을 쌓았죠. 그러나 2017년 1월 술집 폭행사건을 일으킨 것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자 곧바로 퇴사했습니다.

김 상무보는 같은 해 9월 술집에서 대형로펌 변호사들을 상대로 또 한 차례 폭행사건을 일으켰는데요. 이 사건 역시도 대대적으로 보도가 됐습니다. 그 때문인지 이듬해인 2018년에는 아예 독일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현지 매체에서 뒤셀도르프에 식당을 개업했다는 소식이 국내에도 알려지며 요식업에 본격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독일 생활은 길지 않았습니다. 올해 6월 국내 사모펀드(PEF)인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에 입사하며 국내서 회사 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퇴사하고 한화에너지에 상무보로 승진하며 입사하긴 했지만요. 얼마 전 고 이건희 삼성 회장 빈소에 아버지 김 회장과 함께 등장하며 복귀 시기가 다가왔다는 얘기들이 나왔죠.

어쨌든 저니맨 김 상무보는 퇴사 3년 만에 다시 한화그룹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 많은 그룹 계열사 중 한화에너지로 복귀했을까요. 이전 근무했던 한화건설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한화에너지는 에너지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로 김 상무보의 전공과도 큰 관련은 없어보입니다. 김 상무보는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죠.

한화에너지는 김 상무보 입사와 관련해 “김 상무보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한화건설 및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재직 경험이 한화에너지 글로벌 사업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이 멘트는 김 상무보에게 거는 기대만 나타내지, 왜 한화에너지에 입사한 것인지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못합니다.

물론 한화그룹 오너일가 혹은 주요 경영진이 아닌 이상 왜 김 상무보가 한화에너지로 갔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공개된 정보들과 한화그룹이 마주한 이슈를 퍼즐처럼 맞춰가며 추측만 해볼 뿐이죠.

한화그룹 주요 지배구조. 2020년 3분기 기준. (출처=각사 분기보고서)


우선 한화에너지의 계열사 내 위치를 감안하면 이번 김 상무보의 한화에너지행은 승계와 떼놓고 보기 어렵습니다. 한화에너지는 향후 한화그룹 승계의 핵심회사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죠. 한화에너지는 에이치솔루션이라는 회사가 100% 지분을 소유해 종속회사로 두고 있는데요. 에이치솔루션은 한화그룹 삼형제가 지분 100%(김동관 50%, 김동원 25%, 김동선 25%)를 소유한, 사실상 개인회사입니다. ‘한화그룹 삼형제 → 에이치솔루션 → 한화에너지’의 수직적 지배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화에너지가 단순히 에이치솔루션의 100% 종속회사라는 점만 가지고 승계와 연결짓는 것은 아닙니다. 한화그룹 지배구조상 에이치솔루션은 사실상 ㈜한화와 더불어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에이치솔루션과 여기에 소속된 종속화사들이 향후 승계 지렛대로 활용될 거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우선 합병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한화와 에이치솔루션이 합병할 경우 에이치솔루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에이치솔루션의 덩치가 커질수록 합병 시 한화그룹 삼형제의 지분률이 덜 희석되기 때문입니다.

에이치솔루션의 가치를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자회사들의 덩치를 키우는 것인데요. 현재 한화그룹은 올 하반기부터 한화에너지가 지분 39.16%를 보유한 한화종합화학의 기업공개(IPO)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상장할 경우 기업가치가 5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등 내년 IPO 대어로 꼽히고 있습니다.

꼭 합병이 아니더라도 한화종합화학 IPO 후 지분을 매각해 한화에너지가 대량의 현금을 보유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배당을 통해 에이치솔루션에 자금을 공급하고, 에이치솔루션이 또 한화그룹 삼형제에게 배당하는 식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화의 주식을 직접 매입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아버지 김승연 회장에게 증여를 받을 수도 있겠죠.

(주)한화 특수관계인 주식 소유현황.(출처=(주)한화 분기 보고서.)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김동선 상무보가 한화에너지로 복귀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죠. 꼭 IPO 관련한 실무를 담당하지 않더라도 한화에너지에서 회사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또 관리‧감독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한화에너지는 김 상무보가 지분 25%를 보유한 에이치솔루션의 100% 자회사입니다. 사실상 본인이 주인인 회사 자회사에 임원으로 입사한 것이죠. 실제 김 상무보가 회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른 계열사보다 훨씬 크기도 합니다.

물론 한화그룹 측은 공식적으로 꾸준히 “각 계열사들의 사업 계획은 승계와는 전혀 무관하며, 오너일가 개인이 아닌 이사회를 통해 결정되는 사안들”이라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는데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세 번에 걸친 폭행사건에도 불구하고 상무보 승진과 함께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오너일가 구성원이기 때문이죠. 일반인이라면 가능했을까요. 그만큼 대기업 집단에서 오너일가가 갖는 영향력은 강합니다. “정권은 바뀌어도 오너는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에이치솔루션이 14.5%의 지분을 보유한 한화시스템이 주가부양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한화시스템은 지난 23일 장 마감 후 미국 위성안테나 기업에 330억원 투자와 함께 자사주 333억원어치를 사들였다고 공시했습니다. 덕분에 24일 주가는 장중 13.5%나 솟구치기도 했습니다. 효과가 제대로였습니다. 한화시스템 역시도 에이치솔루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핵심 회사 중 하나로, 이미 상장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바 있습니다. 향후 에이치솔루션이 한화시스템 지분을 매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죠.

어쨌든 저니맨 김동선 상무보가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임원으로요. 대기업그룹에서 임원 승진을 '별 단다'고 하죠. 김 상무보가 별을 달고 돌아왔습니다. 그만큼 앞으로 회사 내에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김 상무보에게 과연 한화에너지가 종착역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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