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이건희(사진 오른쪽) 삼성전자 회장 작고 후 지배구조의 '트리거'가 될 상속세가 확정됐다.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이 예상된다.(사진=삼성전자)
▲ 이건희(사진 오른쪽) 삼성전자 회장 작고 후 지배구조의 '트리거'가 될 상속세가 확정됐다.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이 예상된다.(사진=삼성전자)

삼성그룹 상장주식에 대한 상속세가 확정됐습니다. 지난 10월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작고한 뒤 두 달여만입니다. 세금은 무려 11조원으로 국내 재계 사상 최대액수입니다. 연말 삼성전자의 주가가 급격하게 상승한 게 세액이 늘어난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상속세율이 정해진 만큼 이건희 회장의 배우자 홍라희 씨와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씨 등 상속 대상자들은 이 지분을 어떻게 나눌지 결정할 듯합니다. 이는 결국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와 직결되는 만큼 귀추가 주목됩니다.

먼저 상속세가 어떻게 정해졌는지부터 봅시다. 이건희 회장은 생전 삼성전자 2억4927만3200주, 삼성전자 우선주 61만9900주, 삼성생명 4151만9180주(20.76%), 삼성물산 542만5733주, 삼성SDS 9170주를 각각 갖고 있었습니다.

상속·증여세법상 상장주식은 고인 별세일 전후 2개월, 총 4개월간의 거래일 종가 평균값이 기준입니다. 이 부회장의 경우 작고일을 기준으로 8월 24일부터 12월 22일까지입니다. 지분 가치가 30억원이 넘으면 50%의 세율을 적용받고, 만약 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자라면 경영권이 수반돼 여기에 20%가 가산됩니다. 세율이 50%인 경우 최대 세율은 60%입니다.

상속세 기한 내 신고에 따른 신고세액공제(3%)까지 최종적으로 뺀 세금은 총 11조364억원이 나왔습니다. 삼성전자가 9조520억원으로 전체의 82.02%를 차지하며 비중이 가장 높았고 삼성생명(1조6015억원)과 삼성물산(3621억원), 삼성전자 우선주(201억원), 삼성SDS(7억원)가 뒤를 이었습니다.

이 세금은 상속 대상자들이 5년간 나눠서 낼 수 있고, 현금으로 상당 액수를 낸 뒤 일부를 물납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전까지 우리나라 재계 상속세 1위는 구광모 회장으로 약 9000억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주식을 제외한 부동산과 현금성 자산, 기타 재산들까지 모두 합친다면 세금은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블로터>가 이 회장 작고일인 지난 25일 부동산 등기부등본 전수를 확인했는데, 그가 보유한 필지는 76곳(서울 5곳·경기도 용인 64곳·전라도 6곳·경상북도 1곳), 건물은 7개였으며 총 가치는 공시지가 기준 최소 3500억원으로 추산됐습니다. 실거래가는 이보다 높을 것이니 상속인들이 내야 할 세금도 그만큼 더 늘 겁니다.

▲  삼성그룹 지배구조. (그래픽=메리츠증권)
▲ 삼성그룹 지배구조. (그래픽=메리츠증권)

시야를 상장주식으로만 좁혀봅시다. 유족들은 이 지분을 어떤 식으로 물려받게 될까요. 물론 이 질문엔 누가, 어떤 지분을 얼마나 받는지에 대한 내용이 함의됩니다. 지분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룹 지배구조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미 알려졌듯 삼성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의 합병으로 지배구조 개편의 큰 틀을 정했습니다. 과거 제일모직 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던 이재용 부회장은 2015년 이 합병으로 삼성물산 지분 17.08%를 가진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2대 주주이자 삼성생명의 2대 주주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고요.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입니다.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물납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상속 방향을 봅시다. 가장 주목할 건 삼성물산입니다. 지분율로는 2.84%로 많지는 않지만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액수가 크지 않은 만큼, 재계에선 이재용 부회장이 그대로 가져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언급됩니다.

▲  삼성전자는 2018~2020년 3개년 간 주주 배당을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사진=삼성전자 뉴스룸)
▲ 삼성전자는 2018~2020년 3개년 간 주주 배당을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사진=삼성전자 뉴스룸)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어떻게 될까요. 이건희 회장 지분이 4.18%로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만, 삼성그룹의 특수관계인 지분이 21.21%로 높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지배력 유지엔 필수적입니다. 상속인 가운데선 홍라희 여사(0.91%)와 이재용 부회장(0.70%)만 삼성전자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이 지분은 배당 관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삼성전자는 2017년 10월 주주환원 3개년 정책을 발표하면서 배당을 대폭 늘렸습니다. 이에 2018년부터 매년 9조6000억원씩 3년간 28조8000억원을 배당했고, 올해 말에는 지난 3년 간 잉여현금흐름의 50% 가운데 배당액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특별배당도 예정돼있습니다.

만약 상속인들이 보유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면, 삼성전자는 대출 이자를 납부할 수 있는 현금흐름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유의미해보입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3분기 배당정책 발표를 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증권가는 내년부터 시작될 배당정책을 지난 3년보다 더 강화할 수 있다고 관측하고 있습니다.

▲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향후 5~7년 내 삼성생명은 총자산의 3%을 넘어가는 삼성전자(시가 기준) 지분을 팔아야 한다./자료=NH투자증권 리포트 갈무리
▲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향후 5~7년 내 삼성생명은 총자산의 3%을 넘어가는 삼성전자(시가 기준) 지분을 팔아야 한다./자료=NH투자증권 리포트 갈무리

이제 변수들을 생각해봅시다. 우선 삼성생명입니다. 삼성전자 지분 8.51%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지배구조 차원에서 중요하지만, 현재로선 불확실성이 큽니다. 국회에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박용진·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각각 발의) 때문입니다.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인 이 법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취득원가’가 아린 ‘공정가액’(시가)으로 평가하게 하는 게 골자입니다. 법 통과 시 삼성생명은 총자산 3%만큼을 초과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야 하는데, 지난 12월 24일 기준 이 액수가 최소 30조원입니다. 법이 통과된다면 유예기간이 끝나는 5~7년 내 오너 일가는 지배력 약화 상황에 노출되는 셈입니다.

삼성생명 지분은 이재용 부회장이 가져갈 가능성이 유력시됩니다. 특수관계인이 금융회사 지분을 매입하려면 금융당국의 승인이 필요한데, 이 부회장만 유일하게 2014년 11월 이 자격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부회장이 지분을 받은 뒤 보험업법이 통과된다면, 삼성전자 지분을 판 만큼을 배당으로 받아 지배력 강화에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삼성전자 상속세가 과도한 데 대한 지분 처리 방향도 변수입니다. 시장에 자주 언급되는 건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일부 매입하는 것인데, 이는 특수관계인의 삼성전자 지배력 약화를 최소화하면서도 오너 일가의 상속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력시되는 방향입니다.

이재용 부회장 개인에게도 이 같은 뱡향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삼성물산은 관계사 배당 수익의 60~70%를 재배당해 주주에게 환원하는데, 앞서 언급했듯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이 부회장이기 때문입니다. 삼성물산 주주들도 만족할 만한 내용이란 점에서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가능성은 적지만 장녀와 차녀인 이부진·이서현 씨가 계열 분리에 나서는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이부진 사장의 경우 호텔신라를 맡고 있고, 이서현 이사장은 과거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이끈 이력이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자기 몫’의 경영권 지분을 요구한다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격랑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의 시발점은 내년 1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새로운 주주 배당정책을 발표하면서 시작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건희 회장 와병 후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삼성의 오너 일가는 지배구조 개편을 상당 부분 준비해왔을 겁니다. 삼성의 지배구조 변화는 이건희 회장 사후 상속으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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