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IN]"무능한 공권력" 항의 폭주…‘정인이 사건’, 경찰만의 문제일까

발행일 2021-01-04 18:09:32
(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양부모에게 입양된 지 271일 만에 사망한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관할 경찰서인 서울 양천경찰서 홈페이지에 1000여 건의 항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경찰의 안이한 대처가 아동 사망의 원인이라는 분노가 들끓는 모습이다. 그러나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의 근본 원인은 ‘시스템’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 홈페이지 갈무리)


4일 서울 양천경찰서 홈페이지에는 이날 오후 5시까지 하루 만에 총 1520건 이상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통해 ‘정인이 사건’이 부각된 이후의 일이다. 사건을 부실 처리한 경찰을 비난하는 내용이 폭주하면서 일시적으로 서버가 다운됐을 정도였다.

게시물 제목을 보면 ‘양천경찰서장부터 사표를’,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세 번의 기회 세 번의 좌절. 정인아 미안해’ 등으로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과 관련된 내용으로 가득하다.

세 번의 기회를 날려버린 경찰

생후 16개월이었던 정인 양은 지난해 10월 13일 양천구 목동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양부모의 상습적인 폭행·학대를 당한 정인 양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으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통역사인 양모와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양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나 행동은 달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정인 양의 상태는 처참했다. 사망 당시 췌장이 끊어져 있었고 서로 다른 시기에 총 7개의 뼈가 골절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생후 16개월이었지만 정인 양의 몸무게는 8㎏에 불과했다. 입양 시기인 8개월째인 지난해 1월의 9㎏에 비해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정인 양을 살릴 기회는 세 번이 있었지만 경찰은 모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해 5, 7, 10월 총 3차례에 걸쳐 정인 양의 학대 신고를 접수했다. 그러나 양부모의 ‘학대가 없었다’는 말만 듣고 무혐의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신고자는 어린이집 교사였다. 정인 양의 몸 곳곳에 든 멍을 보고 학대라고 직감하고 신고한 것이었다. 신고를 받은 서울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경찰은 내사 종결로 처리했다. 가해자인 양부모는 ‘아이에게 안마하는 과정에서 멍이 생겼다’고 진술했다.

두 번째는 동네 주민이 신고했다. 정인 양이 차량에 수십 분간 방치되는 등 학대의 정황이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에 출석한 양부모는 ‘혼자 자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교육 차원에서 차 안에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혐의점이 없다며 아이를 양부모에게 돌려보냈다.

마지막 신고는 정인 양 사망 20여일 전에 있었다. 이번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데려온 아이를 진단하며 심각성을 느낀 소아과 병원장이 직접 신고했다. 앞서 두 차례의 신고에 더해 전문가 진단까지 나왔지만 경찰은 또 다시 아동학대의 고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정인 양은 집에 돌아간 지 20일 후인 지난해 10월 13일, 끝내 하늘의 별이 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정인 양 사망 이후 경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지만 담당 경찰관들은 경징계를 받는 데 그쳤다. 지난해 5, 7월 신고를 처리한 경찰관 6명은 주의와 경고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분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만의 잘못일까…근본적 문제는 아동보호 시스템

현재 양천경찰서 홈페이지에 비난 게시글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것은 아동 학대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공권력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큰 지를 방증한다.

하지만 경찰의 안이한 대처의 원인은 ‘법적 보호장치’의 부재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경찰과 보건복지부는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두 번 이상 접수되면 피해아동을 가해자로부터 즉시 분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하기란 어렵다.

(픽사베이 제공)


아동 분리 사유를 경찰이 입증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증언을 할 수가 없고, 가정 내에서 벌어진 학대는 CCTV 등의 증거도 찾을 수 없다. 이처럼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부모와 아이를 분리할 경우 해당 결정을 내린 경찰관이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 정인이 사건에서 보듯 세 번에 걸친 무심한 대처가 경찰의 무능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현직 경찰관이라고 밝힌 A씨는 “명백한 학대가 맞았고 어렵게 부모와 아이를 분리시켰다가 가해 부모에게 온갖 죄목으로 형사 민사 고소를 당한 뒤 23개월을 쉬고 복직했다”며 “정인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을 또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아저씨는 더 이상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썼다.

아동학대 법·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결국 구체적인 증거가 나올 수 없는 아동학대 사건의 특성상, 누구라도 분리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경찰관,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등 담당자의 결정을 보호하는 법적 울타리가 생기지 않는다면 소극적 대응으로 인한 '제2의 정인이 사건'은 또 나올 수 있다.

(픽사베이 제공)


이에 정치권에서는 법·제도 개선을 들고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4일 관련 입법을 통해 아동학대 형량을 높이고 학대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아동학대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노웅래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인이의 가엾은 죽음을 막기 위해 아동학대 형량을 2배로 높이고 가해자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말하며 아동학대를 비롯해 음주운전, 산재사망에 대해 ‘국민생명 무관용 3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은 아동학대 형량을 최고 징역 15년형으로 높이고 학대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아동학대 방지 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민의힘, 국민의당 등 야당도 관련 문제에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태다.

한편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 11월 사망 영아의 양어머니 장모 씨를 기소하면서 아동학대 치사와 아동 유기·방임 등 혐의를 적용했지만, 살인죄는 공소장에 적지 않았다. 양아버지 안모 씨는 아동복지법상 방임과 방조 혐의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다. 조사 결과 이들은 정인 양을 입양한 후 1개월째부터 학대를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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