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아이폰12 시리즈가 안방인 미국에서 ‘미니’를 제외하고 순항 중이다. 5일(현지시간) 시장조사기관 CIRP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폰12 미니는 출시 후 판매된 아이폰 중 점유율 6%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이는 1년 전 출시된 아이폰11보다 낮은 수치다.
애플은 2020년 10월 14일 공개한 최신 아이폰을 4개 모델로 세분화해 출시했다. 기본형인 ‘아이폰12’와 크기, 카메라 성능을 강화한 ‘아이폰12 Pro/Pro MAX’, 유일하게 5인치대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아이폰 12 미니’다.
사양 나누기를 통해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충족한 아이폰 12 시리즈의 초기 판매 성적은 긍정적이다. 출시 첫 달엔 단 2주만에 10월 전세계 5G 스마트폰 판매량 1, 2위를 독차지했다.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도 좋다. CIRP는 최근 미국에서 판매된 아이폰 중 아이폰 12 시리즈가 차지하는 비중은 76%에 이른다고 밝혔다. 2019년 같은 기간 전작인 아이폰 11 시리즈가 기록한 69%보다 훨씬 좋은 성적이다.
하지만 그중에는 ‘미운오리새끼’가 있다. 76% 중 고작 6%를 차지한 아이폰 12 미니(이하 미니)다. 나머지 모델 중 아이폰 12의 판매량이 가장 높긴 하지만 그래프상 큰 차이는 없다. 반면 미니의 경우 같은 해 4월 출시된 아이폰 SE 2세대나 2019년 출시작인 아이폰 11보다 판매 점유율이 낮다. 오히려 2년전 출시된 아이폰XR과 비교하는 게 더 의미 있어 보일 정도다. 이유가 뭘까?
마이크 레빈 CIRP 공동설립자는 “미니의 가격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 기준 699달러로 출시된 미니가 비슷한 체급의 아이폰 대비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단 이야기다.
레빈은 미니의 경쟁 모델로 아이폰11과 아이폰 SE 2세대를 꼽았다. 아이폰 11의 경우 599달러로 미니보다 100달러 싸다. 화면 크기는 6.1인치로 더 크며 한 세대 낮은 프로세서와 5G 미지원 단말기라는 점만 빼면 여전히 고성능 모델로 분류된다. 사실상 5G만 포기하면 약 10만원 이상 싼 가격에 쓸 만한 아이폰을 살 수 있는 셈이다.
미니 입장에서 진짜 강적은 아이폰SE 2세대다. 이미 6인치 이상 대화면 스마트폰이 주류를 이뤘다지만 여전히 한 손 조작이 가능한 수준의 소형 스마트폰을 찾는 사람은 적지 않다. 아이폰 SE와 미니 역시 그런 수요자들을 겨냥해 출시된 모델이다. 그러나 둘 사이의 가격 차는 무려 300달러다. 그렇다고 2020년 출시된 아이폰 SE 2세대의 성능이 미니보다 크게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작은 스마트폰’을 쓰는 것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시중의 유일한 4인치대 아이폰인 SE 2세대가 더 매력적일 수 있다. 결국 699달러라는 가격은 대중적인 아이폰 11과 미니의 성격에 더 부합한 SE 2세대 사이에서 적잖은 애매함을 만들어 냈다. 물론, 미니의 최신 디자인이나 성능에 더 가중치를 두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론 실리 추구형 소비자가 더 많다는 사실도 이번 조사에서 드러나는 점이다.
한편, 가격의 중요성은 국내 상황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미니는 미국과 달리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아이폰 중 점유율 상위권에 올라 있는 모델이다. 업계에선 그 배경으로 지난 연말 시즌 이동통신사의 미니 판매 보조금이 상향 조정된 점, 또 일부 불법 보조금까지 유통되며 미니 실구매 가격이 크게 낮아졌던 점을 꼽는다. 또 국내 아이폰 가격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고성능에 가격은 낮은 미니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는 분석도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