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경제가 꽁꽁 얼었습니다. '록 다운'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항공사와 정유사 등 주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기업과 에너지 기업의 피해가 컸습니다. 코로나19는 글로벌 경제에 적잖은 '상흔'을 남길 것이라고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크지만, 긍정적 효과도 있습니다. 감염병에 대한 위기감으로 인해 일상 뿐 아니라 산업 구조도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됐습니다. 세계 석학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산업 분야의 뉴 노멀(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표준)이 다가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표적인 변화는 '넷 제로(Net Zero)'입니다. 코로나19는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고, 경제와 산업 분야의 전환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마이클 오스터홈 미국 미네소타대 감염병 연구 센터장은 '살인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전염병 감염 속도가 빨라졌고, 제 2의 코로나가 발생해 인류에 엄청난 재앙을 안길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덥고 습해진 지구는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고 빠르게 확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팬데믹'의 유행을 키울 수 있다는거죠.

지난해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 등 주요국들이 '탄소 배출 제로'에 동참했습니다. 탄소 배출 제로는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량과 자연이 흡수하는 온실가스량을 같게 만들어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주요국들은 화력발전 비중을 낮추고,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단계적으로 줄일 계획입니다.

▲  현대차의 수소 전기차 넥소.(사진=현대자동차)
▲ 현대차의 수소 전기차 넥소.(사진=현대자동차)

미국의 비영리기구인 참여 과학자 모임(Union of Concerned Scientist)에 따르면 2018년 국가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중국이 전 세계 배출량의 28%를 차지해 가장 많았습니다. △미국(15%) △인도(7%) △러시아(5%) △일본(3%) 순입니다. 탄소 배출 제로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많아질수록 온실가스로 인한 '디스토피아'가 실현될 확률은 낮아지는거죠.

기업들도 탄소 배출 제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포스코 등 철강사들은 먼 미래에 석탄 대신 수소를 통해 쇳물을 만들 계획입니다. 지금은 설비를 개선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수준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하는데,  앞으로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생산하는 방식부터 바꾸고 있습니다.

수소 에너지는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원으로 꼽힙니다. 수소는 에너지 밀도가 가솔린과 비교해 약 3배에 달합니다. 지구상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원소인 만큼 고갈될 걱정없이 사용할 수 있죠. 하지만 수소는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아 전기 에너지 등을 이용해야만 추출할 수 있습니다. 수소는 채산성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에너지인 셈이죠.

기업은 수소와 관련한 난제를 해결할 적임자입니다. 수소를 상용화하려면 오랜 기간 연구 개발에 매달려야 합니다. 투자도 뒷받침돼야 하죠. 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그룹, 한화그룹은 '수소 경제'를 견인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  최태원 회장이 사회적 가치 경영을 설명하고 있다.(사진=SK그룹)
▲ 최태원 회장이 사회적 가치 경영을 설명하고 있다.(사진=SK그룹)

최근 SK그룹까지 '수소 경제'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SK㈜는 지난 7일 SK E&S와 미국 수소 회사 플러그 파워(Plug Power Inc.)에 1조6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습니다. SK㈜와 SK E&S가 절반씩 투자금을 부담할 계획입니다. SK㈜ 등은 투자회사 '플루터스 캐피탈'을 통해 플러그 파워의 지분 9.9%를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됩니다. 이번 딜은 '아웃바운드 M&A(국내 기업의 외국기업 인수) 중 여섯번째 규모입니다.

▲  한국 기업의 외국 기업 M&A 현황.(자료=언론 등)
▲ 한국 기업의 외국 기업 M&A 현황.(자료=언론 등)

SK그룹은 정유와 반도체, 통신 등 주력 사업에서 100조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그룹 지주사인 SK㈜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99조원(영업이익 3조9498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약 8조원입니다. 이는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 등 약 130여개의 종속회사의 실적을 합한 수치입니다.

업계에서 SK그룹의 수소 사업 진출은 예견됐던 일입니다. SK그룹은 '사회적 가치' 경영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 일찍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했습니다.

SK그룹은 기후변화 및 온실가스와 관련해 그룹차원의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SUPEX) 추구협의회 내 에너지화학위원회에 환경소위원회를 신설했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TF를 발족해 운영 중입니다.

2018년 발표된 '한국 수소 산업 로드맵' 보고서에 따르면 수소는 국내 기준으로 약 70조원의 경제효과가 있고, 60만명의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업은 꾸준히 신사업을 개발해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고, 주주 등에 환원해야 합니다. SK그룹에 있어 수소 사업은 신규 먹거리이자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갖고 있는 사업인 셈입니다.

SK그룹의 플러그 파워 지분 투자를 통해 양사에 '윈윈'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SK그룹은 플러그 파워로부터 그린수소(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한 수소) 생산 기술을 얻고, 플러그 파워는 SK그룹의 투자금을 활용해 미국 내 그린수소 발전소 5곳을 건설할 계획입니다.

플러그 파워는 아마존과 월마트, DHL이 사용하는 연료전지에 수소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플러그 파워는 약 4만대의 연료전지에 매일 20톤의 액화 수소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2024년까지 일 수소 생산량을 85톤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액화수소 판매로 연 12억 달러(한화 1조3110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입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된 자료에 따르면 플러그 파워는 2019년 기준 자산 규모 7억7118만 달러(한화 8421억원) 규모의 회사입니다. 부채총액은 4억8456만 달러(5291억원)로 부채비율은 169%로 재무상태는 비교적 안정적입니다.

▲  미국 플러그 파워 실적 현황.(자료=미국 증권거래위원회)
▲ 미국 플러그 파워 실적 현황.(자료=미국 증권거래위원회)

2019년 2억3023만 달러(2514억원) 매출을 올렸는데, 5004만 달러(한화 54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2017년(매출 1억 15만 달러)과 비교해 매출은 1.7배 늘었습니다. 2017년 1억179만 달러(1111억원)의 적자를 냈는데 3년 간 적자폭이 크게 줄었습니다.

앤디 마쉬 플러그 파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일 "SK그룹의 지분 투자를 통해 아시아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며 "2022년까지 SK그룹과 합작사를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SK그룹은 플러그 파워 지분 투자로 수소 생산 기술과 수소 연료전지 기술을 확보하게 됩니다. SK건설은 지난해 1월 미국 SOFC(고체산화물연료전지) 업체인 블룸에너지와 합작사 '블룸SK퓨얼셀'을 출범했습니다. 블룸에너지는 글로벌 연료전지 기업으로 애플과 구글 등에 400메가와트(MW) 이상의 연료전지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연료전지 업체는 포스코에너지와 두산퓨얼셀이 있습니다. 포스코에너지는 166MW급 연료전지를, 두산퓨얼셀은 433MW의 연료전지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SK그룹은 연료전지 사업의 후발주자로 경쟁사와 비교해 열위였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블룸에너지와 손을 잡았습니다.

SK그룹은 이번 플러그 파워의 지분 인수를 통해 연료전지 사업의 '수직 계열화'를 마련했습니다. 플러그 파워가 생산한 수소를 블룸SK퓨얼셀에 공급할 수 있게 된거죠. 향후 SK E&S 등 계열사가 생산한 수소도 블룸SK퓨얼셀에 공급됩니다.

SK그룹은 2023년까지 연 3만톤의 수소를 생산할 계획입니다. 2025년까지 28만톤 규모의 수소를 직접 생산하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레이 수소(화석연료를 활용해 추출한 수소)를 먼저 생산한 뒤 플러그 파워의 기술력을 활용해 그린 수소까지 생산할 계획입니다.

▲  SK그룹 수소 사업 현황.(자료=SK그룹)
▲ SK그룹 수소 사업 현황.(자료=SK그룹)

그레이수소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가 전담하게 됩니다. 수소 생산의 핵심 역할은 SK E&S가 맡게 됩니다. SK이노베이션이 석유를 정제한 후 발생하는 부생가스를 추출하면, SK E&S가 수소를 액화합니다. 수소는 기체 형태로 압축하거나 액화하는 방식으로 유통되는데, 액화 수소가 제조 및 유통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합니다.

▲  수소 생산방식 현황.(사진=한화그룹)
▲ 수소 생산방식 현황.(사진=한화그룹)

SK E&S는 2025년부터 블루수소를 생산합니다. SK E&S는 연간 300만톤 이상의 액화천연가스(LNG)를 직수입합니다. LNG에 수증기(H2O)와 이산화탄소(CO2)를 반응시켜 수소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때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땅에 매집하면 온실가스 배출을 막을 수 있습니다. SK E&S는 연간 25만톤의 블루수소 생산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이중 가장 친환경적인 수소는 그린 수소입니다. 이 방식은 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고, 온실가스 또한 발생하지 않습니다. 생산 단가가 비싸다는 게 단점입니다. 그린수소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원을 화석연료로 사용할 경우 '친환경'을 떼야 하는 모순에 부딪힙니다.

플러그 파워는 그린수소 생산기술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SK그룹은 수소 사업에 있어 걸음마 단계입니다. 블룸에너지와 플러그 파워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 빠르게 수소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SK그룹은 "석유 및 천연가스 등 기존 에너지 사업에서 생태계 조성을 주도한 경험이 있다”며 “SK에너지의 주유소 등 서비스 허브를 활용해 차량용 수요뿐 아니라 연료전지 등 발전용 수요까지 수소 사업을 적극 개발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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