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왼쪽부터)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강성부 KCGI 대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각사)
▲ (왼쪽부터)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강성부 KCGI 대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각사)

"한진그룹 경영권 장악 의도 없다. 주요 주주로서 경영 활동 감시와 견제 역할에 충실할 계획이다"

잇단 갑질 논란에도 반성 않는 오너 일가를 혼내주기 위해 나타난 KCGI에 대해 여론도 소액주주도 그들의 등장에 환호했습니다. 어느 새 2대주주로 올라선 KCGI에게 조금만 힘을 보태주면 최대주주인 오너 일가도 지배구조 개선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컸죠. 2대주주, 그러니깐 KCGI가 등장한 그날 한진칼의 주가는 하루에만 12.58% 급등했습니다.

하지만 KCGI의 의도와 달리 시각은 양갈래로 갈라졌습니다.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에 전기가 마련됐다는 시각도 적지 않았던 반면 태생적으로 '이익'이 목적인 사모펀드가 국적 항공사의 최대주주가 되는 게 말이 되냐서부터 알고보니 경영권 장악 위해 2금융권까지 손을 대 자금을 '영끌'하고 있더라 등 KCGI를 비난하고 폄훼하는 시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헌데 이는 사모펀드에 대한 색안경 탓도 있고, KCGI 스스로 무덤을 판 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저 2대주주로서 권리와 의무만 주장하면 될 것을 KCGI는 지분율을 늘려가며 한진그룹 오너 일가와 경영권 경쟁 구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베일에 쌓인 강성부 KCGI 대표가 첫 기자회견까지 열어 자신들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선에 있음을 재차 피력하는 등 분위기 전환을 노렸지만, 한번 만들어진 양갈래 이미지는 좀체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KCGI는 지분율을 지속해서 늘려 갔습니다. KCGI·조현아 전 부사장·반도건설과의 합체, 즉 3자 주주연합의 탄생으로 합산 지분율(KCGI 20.34%, 반도건설 20.06%,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6.31%)은 한진칼 오너 일가(조원태 6.52%, 조현민 6.47%, 이명희 5.31%, 재단 및 친족 특수관계인 4.15%, 델타항공 14.90%, 대한항공 사우회 3.79%)의 지분율을 가뿐히 넘겼습니다. 46.71% 대 41.14%. 단일 주주로도 KCGI가 최대주주가 되는 상황이었죠. 여기에 반도건설의 탄탄한 자금력까지 더해져 추가적인 실탄 확보 여력도 충분했습니다. 코로나 19 사태의 장기화로 회사의 어려운 사정이 계속되면서 주주들의 현 한진그룹 경영진에 대한 불만도 높겠다, 이대로만 가면 올해 3월 정기 주총에서의 경영권 뒤바뀜은 '안봐도 비디오'인 상황이었습니다.

작년 말 산업은행의 그 결정만 없었다면 말이죠.

지난해 11월 산업은행은 갑자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선언합니다. 업계 1위 대한항공이 2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구조로, 이를 위해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의 모회사 한진칼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8000억원의 자금을 대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렇게 해 산은 역시 한진칼 지분 10.66%(7,062,146주)를 보유한 주주가 됐습니다. 당연히 대한항공에 아시아나항공이란 큰 짐을 안긴 산은은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우군이었고, 이에 한진칼에 대한 오너 일가의 우호 지분은 47.33%까지 치솟았습니다.

반대로 3자 주주연합의 지분율은 40.4%까지 내려갔습니다. 눈 뜨고 코베인 격이죠. 이후 한진칼의 3자 배정 유상증자가 다른 기존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막판 가처분 소송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법원이 기각을 선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났습니다. 3자 주주연합은 조용합니다. 그렇게 매서웠던 지분 추가 매입 움직임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엑시트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요.

3월 한진그룹 정기 주총이 약 두 달 가까이 남은 지금, 3자 주주연합은 경영권 경쟁을 계속해서 이어갈까요. 아님 다른 전략을 세우고 있을까요.

▲  출처=한진칼 공시
▲ 출처=한진칼 공시

3자 주주연합, 지분율 역전에 필요한 자금 약 3700억

만약 KCGI가 경영권 경쟁을 이어가겠다면 추가적인 지분 확보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당연히 돈이 있어야 하고요.

얼마면 돼냐고요? KCGI가 한진칼 지분율을 여유있게 50%까지 끌어 올린다고 가정하면 단순 계산치로 약 3679억원(15일 종가 6만 6400원 기준)의 자금이 필요합니다. 꽤 많죠.

말 그대로 3자 연합이라 해도 모으기는 결코 쉽지 않은 수준입니다. 더욱이 KCGI와 조 전 부사장의 경우는 현재 자금 사정이 그다지 좋은 상태가 아닙니다. KCGI만 해도 거의 매번 주식담보대출(주담대)로 지분율을 늘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계속되는 대출에 담당 증권사 역시 점점 대형 증권사에서 중소형 증권사로 변경됐고요. 은행쪽 역시 시중은행이 아닌 주로 저축은행과 주담대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조 전 부사장의 자금 사정 또한 말할 것도 없습니다.

믿을 곳이라곤 반도건설 뿐인데 괜한 오기로 자칫 정부가 힘쓰는 사업에 맞서는 그림으로 비쳐져 봐야 반도건설 입장에선 좋을 게 없어 나설 가능성이 크지 않죠.

대기업 집단이 새 투자자로 나서는 기적을 기대해 볼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시국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죠.

▲  출처=다음 금융
▲ 출처=다음 금융

당분간 3자 주주연합 체제 유지...엑시트 시기 미정

그렇다면 결국 엑시트(자금회수)를 선택하게 될까요. 엑시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강성부 KCGI 대표는 법원 기각 판결 이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출현, 당분간 한진칼 지분에 대한 엑시트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곤 오는 3월 정기 주총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있음을 시사했는데요.

사실 KCGI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가져가는게 어려워졌을 뿐 산업은행 등장으로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선에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됩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 요구의 강도가 KCGI보다 산은이 더 셀 수 있다"며 "국책은행이라는 압박, 채권자이면서 주주라는 비중 등이 산은의 입지에 더 힘을 실어줄 수 있고 KCGI는 이에 함께 보조를 맞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주가 측면에서도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면 과거보다 더 힘을 받을 수 있다"며 "국적기 통합 항공사로 쏠리는 수요 등을 생각하면 한진칼의 장기 전망은 낙관적이라는 생각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KCGI는 굳이 지금 엑시트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통합 항공사, 독과점 항공사의 입지가 강화되면 장기적으로 기업의 실적은 좋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KCGI는 현재 손해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처음 한진칼 주식을 주당 2만원 대에 사들였고 이후 지분율을 늘리며 평단가가 높아졌으나 현재 6만원 선임을 감안하면 적지않은 차익을 건질 수 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계산하면 말이죠.

조 전 부사장과 반도건설도 이득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두 주주는 지난해 1월 31일자로 KCGI와 함께 주당 4100억원에 지분 공동 보유 계약을 체결했는데요. 15일 종가가 6만 6400원이니 대략 1.5배의 차익을 챙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KCGI나 조 전 부사장은 잇단 주담대에 따른 이자비용을 고려하면 그다지 많은 이득을 남기긴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말입니다.

다만 3자 주주연합 나머지 구성원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하는 부담은 있습니다. 엑시트 수요가 있는 당사자가 나올 수 있죠. 3자 주주연합은 지분 공동 보유 계약 체결 당시 상호가 보유 지분을 일정 기간 동안 팔지 않겠다는 전제 하에 계약을 맺었는데요. 구체적인 계약 기간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시장에 3년이나 5년 정도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 지는 전적으로 3자 주주연합 당사자들의 결정 사항입니다. 오는 3월 주총이 지나보면 대략적인 중장기 전략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산은의 스탠스도 명확해질 것이고요. 한진칼 경영권 분쟁, 끝난듯 하지만 끝난게 아닐 수 있고요. KCGI에게는 손해를 보고 있지 않다면 여전히 기회가 있다고 보는게 타당한 분석인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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