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리포트]CES 2021로 본 '양자 컴퓨팅'의 현재와 미래

발행일 2021-01-19 16:53:15
현존하는 슈퍼컴퓨터를 아득히 뛰어 넘는 성능의 양자 컴퓨터(Quantum computer)는 '꿈의 컴퓨터'로도 불린다. 수십년 이상 이론 수준에 머물렀지만 2011년 첫 상용 양자 컴퓨터 'D-Wave One'이 등장한 이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또 IBM은 2018, 2019년 CES에서 'Q 네트워크', 'Q시스템 원' 등 범용 양자 컴퓨터로 나아가기 위한 시험 모델들을 잇따라 공개하며 대중의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올해는 어땠을까?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번 CES 2021에서 신형 양자 컴퓨터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가시권에 들어온 양자 컴퓨팅 기술이 현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또 인간이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여러 전문가 세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양자 컴퓨팅 컨셉 이미지 (사진=Pixabay)


양자 컴퓨팅이란?

일단 이해를 돕기 위해 양자 컴퓨팅이 무엇인지 짧게 짚고 넘어가자. 양자 컴퓨터의 정의는 '양자역학의 원리로 작동되는 컴퓨터'지만, 어려운 이론은 건너뛰고, 기존 컴퓨터와의 차이점만 살펴보자. 먼저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는 0과 1로 이뤄진 비트(Bit)란 이름의 정보 단위를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비트가 클수록 많은 정보룰 담을 수 있지만 그중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는 한 번에 하나다. 대량의 데이터일수록 처리 속도가 늦어지는 이유다.

반면, 양자는 물리학적으로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지닐 수 있는 '중첩'의 특성이 있다. 이를 양자 컴퓨터의 정보 단위로 활용한 것이 '큐비트(Qbit)'다. 이론적으로 큐비트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2의 제곱으로 증가한다. 즉, 일정 수 이상의 큐비트를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가 개발될 경우 슈퍼 컴퓨터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미지의 계산, 시뮬레이션 문제를 풀어낼 수 있게된다는 점이 바로 양자 컴퓨팅에 걸린 기대다.

IBM이 개발한 양자 컴퓨터 ‘IBM Q System One’ (사진=IBM)


낮아지는 접근 장벽

그러나 양자 컴퓨터를 PC처럼 집에 두고 쓰는 시대를 단기간에 기대하긴 어렵다. 극히 작은 외부의 자극에도 손상되는 큐비트의 특성상, 현존하는 양자 컴퓨터는 -273도 극저온 냉장고와 대형 케이스, 특별한 저장 공간 등을 필요로 한다. 부피도 초창기 컴퓨터처럼 크다. 하지만 이런 조건에선 양자 컴퓨터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적으므로 업계는 '클라우드'에 눈을 돌렸다.

현재 클라우드 양자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회사가 이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IBM이다. 케이티 피졸라토 IBM 퀀텀 애플리케이션 리서치 이사는 "우리는 당신이 일하는 곳에서 양자 컴퓨터를 만나길 바란다"며 "클라우드를 통해 공간 제약 없이 양자 컴퓨팅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IBM은 현재 초기 단계의 양자 컴퓨팅 체험 서비스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다. 클라우드 게임과 마찬가지로, 클라우드 양자 컴퓨터 역시 사용자가 보유한 하드웨어 사양에 관계없이 인터넷에만 연결돼 있으면 계산을 주문하고, 결괏값만 받아보는 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왼쪽 상단 시계방향으로) 마이클 버그먼 CTA 부사장, 엘리너 리펠 NASA 연구원, 조지프 브로스 QED-C 이사, 케이티 피졸라토 IBM 이사 (사진=CES 2021 'Quantum Computing – Making It Real' 중 갈무리)


마이클 버그먼 소비자기술협회(CTA, CES 주관사) 기술 및 표준 부사장도 "이제 비즈니스 단계에선 낮은 수준의 양자 물리학을 이해하는 대신 클라우드에서 양자 소프트웨어를 호출하는 법을 알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 그것의 아키텍처가 무엇인지 몰라도 쓸 수 있는 것처럼 양자 컴퓨팅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양자 컴퓨터의 조기 클라우드화는 다가올 양자 컴퓨팅 대중화 시기를 앞두고 기존 비즈니스 환경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미리 실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 양자 컴퓨터가 이제 외부 서비스가 가능해질 만큼의 기술적 안정 단계에 이르렀음을 상징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길은 멀다. 현재 클라우드 양자 컴퓨터의 성능은 27큐비트 수준으로, 슈퍼 컴퓨터 이상의 성능을 내려면 적어도 50큐비트 이상을 달성해야 한다. 지금으로선 양자 컴퓨팅 환경에서의 응용을 시험해볼 수 있는 단계인 셈이다.

활용법을 고민할 시기

양자 컴퓨터의 천문학적인 성능을 단순 수치로 표현하는 건 의미가 없다. 대신 사례로 보면 양자 컴퓨터가 슈퍼 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는 시점을 의미하는 '양자우위'는 2019년 구글이 53큐비트(2의 53제곱 연산력) 성능의 양자 프로세서 '시커모어'를 통해 달성했다는 이야기가 NASA 홈페이지를 통해 유출돼 화제가 됐던 일이 있다. 당시 공개된 성능은 가장 빠른 슈퍼 컴퓨터가 1만년 동안 풀어야 할 문제를 시커모어가 단 3분 20초 만에 풀었다는 것이었다.

시커모어 칩 (사진=구글)


그러나 경쟁사인 IBM은 "시커모어는 범용이 아니라 단일 문제 해결을 위한 하드웨어에 불과하며 슈퍼 컴퓨터의 성능도 낮게 책정된 상태에서 진행된 것"이라며 구글이 도달한 양자우위를 부정했다.

구글은 이 주장에 대한 진위를 확인해주지 않았으나 이 사례는 제대로 구현된 양자 컴퓨터가 현존 컴퓨터와 얼마 만큼의 격차를 나타낼 수 있는지 간접적으로 드러난 경우다. 그리고 이제 중요한 건 시커모어 프로세서의 성능은 앞으로 구현될 양자 컴퓨터와 비교하면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얼마 남지 않은 양자우위 시대를 앞두고 최근 학계와 업계의 고민은 '이를 대체 어디에 활용하면 좋을까'에 집중되는 모습이다.

조지프 브로스 양자 경제 개발 컨소시엄(QED-C) 전무는 "양자 컨소시엄에는 이미 140개의 금융, 은행, 항공, 우주, 국방, 화학, 제약 분야의 대기업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양자 컴퓨팅은 이 모든 산업의 응용 기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가 언급한 분야는 대부분 복잡한 수치와 계산을 다루는 영역이다. 특히 화학, 제약, 우주처럼 분자 단위의 관측 및 시뮬레이션이 이뤄지는 산업에선 양자 컴퓨터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크다. 예컨대 제약 산업의 경우 양자 컴퓨터를 활용하면 복잡한 단백질 구조를 규명하고, 화학적 조합과 효과 검증을 위해 수년 이상의 시간을 들였던 신약 개발 시뮬레이션 성공률이 크게 높아지고 개발 시간도 단축될 전망이다.

또 이런 양자 컴퓨팅에 대한 연구와 고민이 기존 컴퓨터 구조 개선에도 도움이 될 거란 색다른 의견도 있었다. 엘리너 리펠 NASA 연구원은 "아직 하드웨어 수준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연구자들이 양자 알고리즘에 대해 공부하게 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며 "때론 새로운 양자 패러다임이 더 나은 디지털 알고리즘 개발로 연결되는 단초를 마련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자 컴퓨팅에 담긴 양날의 칼, 보안

보안은 양자 컴퓨팅이 주목받던 초기부터 함께 논의되어 온 키워드다. 슈퍼 컴퓨터를 초월한 성능의 양자 컴퓨터라면 현재 널리 쓰이는 소인수분해 기반의 암호 체계는 순식간에 해독될 수 있다는 걱정이 주류다. 일부 세션에서는 "블록체인 가상자산에 사용되는 암호화 알고리즘 역시 양자 컴퓨터의 출현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에 대한 대비책도 준비되고 있다고 말한다. 바크람 샤르마 퀸테네스 연구소장이 언급한 '양자 키 분배' 등을 포함한 양자 통신 암호화 기술이 대표적이다. 양자 컴퓨터가 영자의 물리적 특성을 이용해 초월적인 연산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작은 간섭과 관측에도 오류를 일으키는 양자의 또다른 특성을 활용하면 이론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한 통신 환경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바크람 샤르마 퀸테네스 연구소장 (사진=CES 2021 'AI and quantum cyber disruption' 중 갈무리)


또 양자의 특성을 활용해 자연계 수준의 순수한 난수(무작위 숫자)를 생성하는 양자난수생성기는 이미 개발이 완료돼 일부 제품에 시범 적용되고 있다. 2020년 5월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이 함께 개발한 '갤럭시 A 퀀텀' 스마트폰이 대표적이다. LG유플러스도 양자컴퓨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양자 내성암호 기술을 USB에 담은 'Q-PUF USB' 보안 토큰을 개발했다고 19일 발표했다.

양자우위에 도달한 양자 컴퓨터가 정말로 현행 암호화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아직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구현 자체가 어려운 양자 컴퓨터에 비해 양자 보안 기술은 이미 휴대가 가능한 수준의 제품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만연한 양자 보안 위협에 대한 불안을 일부 해소시켜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따른다.

한편, 시장조사업체 인사이드 퀀텀 테크놀로지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양자 컴퓨터 시장 규모는 2025년 7억8000만달러(한화 8600억원)에서 2029년까지 약 26억달러(한화 2조8690억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IBM은 이번 CES에서 올해 127큐비트 기술 개발에 이어 2030년까지 100만 큐비트 도달을 목표로 두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양자 기술을 선도하는 나라는 미국, 중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이다. 한국은 양자 암호통신 표준화에 힘을 싣고 있으며 관련 기술 개발은 SK텔레콤 등 민간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함께 보면 좋은 뉴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요일별 Edition

뉴스레터
  • 최신 IT 소식을 가장 빠르게 받아보세요. (광고성 정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