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루머의 루머' 현대제철·포스코 합병설이 주는 시사점①

발행일 2021-01-25 16:54:48
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자료=현대제철)


지난주 현대제철의 생산현장에는 '매각설'이 돌았습니다. 루머는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제철을 포스코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생산직 직원들의 입소문을 통해서 돈 얘기는 직장인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 앱까지 공유됐습니다. 철강업계 임원들도 이 루머에 대해 들었다고 합니다.

만약 두 철강사가 어떤 방식으로든 합병한다면 국내 1위의 철강사가 국내 2위의 철강사를 흡수하는 구조가 될 것입니다. 2019년 쇳물 생산량 기준 포스코는 세계 5위, 현대제철은 15위입니다.

현재 글로벌 철강시장은 공급과잉 상태로 합병으로 '1+1=2'가 되지 않습니다. 현대제철의 덩치를 고려하면 인수할 경우 시너지를 내기보다 인수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포스코가 현대제철을 인수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럼에도 최근 국내 기업의 인수합병(M&A) 트렌드는 '점유율 집중'입니다. 과거 M&A 시장은 독점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현재는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M&A가 적극적으로 단행되고 있습니다.

베넷 해리슨 카네기 멜론 대학의 교수는 "M&A는 과거처럼 시장을 적당히 분할해 갖는 게 아니라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싹쓸이 하는 게임의 세계로 접어들었다"며 "거의 모든 산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노린 대통합이 일어나고, 시너지는 시장 지배력에서 분출된다"고 과거에 말한바 있습니다. 베넷 교수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진보적 경제학자로 1999년 타계했습니다. 그가 타계한 이후 2000년대 들어 그의 예견은 더 들어맞는 듯 보입니다.

2019년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2020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2021년 현대중공업그룹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만 봐도 국내 M&A 시장은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싸움이 한창입니다.

포스코의 현대제철 인수는 개별 회사 측면에서는 시너지가 없어 보이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닌 셈이죠. 글로벌로 시선을 확장하면 불가능할 것 같은 M&A는 매력적인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현대제철은 2019년 2122만톤의 쇳물을 만들었고, 2131만톤의 철강 제품을 시장에 판매했습니다. 포스코는 같은해 3800만톤의 쇳물을 생산해, 3599만톤을 팔았죠. 두 회사는 고로를 갖고 있는 국내 유일의 철강사입니다.

두 회사는 연간 약 6000만톤의 쇳물을 생산합니다. 2019년 글로벌 철강사들은 18억6990만톤의 쇳물을 생산했습니다. 두 철강사는 글로벌 생산량의 약 3.1%, 아시아 쇳물 생산량(13억4160만톤)의 4.4%를 차지했습니다.

2019년 글로벌 쇳물 생산량 현황.(자료=한국철강협회 등)


중국은 2019년 9억9630만톤의 쇳물을 생산해 전 세계 수요의 53.3%를 차지했습니다. 일본은 9930만톤(점유율 5.3%)의 쇳물을 생산했죠. 국내 철강사는 총 7190만톤을 생산했습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국내 쇳물 생산량의 82.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두 회사 모두 국내 1위, 2위의 철강사이지만, 글로벌 시장의 지위는 현저하게 차이나죠.

국내 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경쟁력 강화가 우선입니다.

먼저 현대제철의 경쟁력부터 살펴보죠. 현대제철은 쇳물 생산량 기준 15위의 철강회사지만, 사실상 내수 위주로 영업하는 회사입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3분기까지 14조5135억원 어치를 판매했습니다. 이중 국내 시장에 12조5374억원 어치를 판매했고, 1조9761억원 어치를 해외에 판매했습니다. 전체 매출의 86.3%가 국내에서 나왔습니다. 현대자동차 등 계열회사 내부거래를 제외하면 국내 시장의 비중이 94.6%에 달합니다.

현대제철 3분기 누적 매출 현황.(자료=금융감독원)


경쟁사인 포스코의 내수 비중은 53.6%입니다. 현대제철의 내수 비중은 포스코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앞서 글로벌 철강시장은 공급과잉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현대제철이 내수 비중을 낮추지 못한다면 국내 철강 시장의 공급 과잉은 심화된다는 의미입니다. 국내 5대 철강사(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동부제철, 세아제강)의 지난해 3분기 평균 영업이익률(누적 기준)은 3.9%를 기록했습니다. 2010년 3분기 9%를 넘었는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죠. 전후방 산업 모두 침체된 영향입니다.

철강업계에서는 국내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많았습니다. 전중선 포스코 전략기획본부장(부사장)은 "(철강 산업의)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며 "일본과 중국은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을 완료했지만 한국은 시작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업계에서는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전략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해외 철강사들은 일찍이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 효율화를 추진했습니다.

일본과 중국 철강회사들은 2000년대부터 자국 내 철강사를 흡수합병해 몸집을 키웠습니다. 일본 철강업계는 2000년 6사 체제에서 현재 3사 체제(JFE, NSSMC, 고베제강)로 재편됐습니다. 2002년 생산 규모 2위인 NKK와 3위 철강사인 가와사키가 합병되면서 JFE(Japan Future Enterprise)가 출범했죠. 2012년 신일본제철과 스미모토 금속이 합병되면서 NSSMC가 설립됐습니다. 신일본제철과 스미모토 금속이 합병할 당시 시장지배력 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산업적 필요성에 따라 합병이 마무리됐습니다.

일본 철강업계 구조조정 추이.(자료=포스코 경영연구원)


일본은 2차례의 철강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량을 약 4000만톤 이상 줄였고, 고로기수도 28개 줄였습니다. 내수 시장 침체에 대응해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했고, 아웃바운드 M&A를 추진했습니다.

중국은 1990년대 후반 글로벌 1위의 쇳물 생산국가로 부상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쇳물 생산량과 소비량 모두 2억톤에 미치지 못했는데, 생산량과 소비량 모두 급증했습니다. 2015년 생산량은 8억톤, 소비량은 6억톤을 기록했죠. 중국 바오우 철강은 지난 10년 동안 쇳물 생산량을 61% 가까이 늘렸습니다. 중형 철강사를 흡수합병하면서 몸집을 불렸습니다.

중국 정부는 철강 산업 구조조정을 추진 중입니다. 쇳물 생산량 1억5000만톤을 감축해 생산량을 조정할 계획이죠. 공급과잉으로 철강제품의 가격이 하락해 중국 철강사의 적자가 커졌다는 게 구조조정의 배경입니다. 중국은 2025년까지 쇳물 1억톤 이상을 생산하는 업체 2곳과 5000만톤 이상을 생산하는 업체 5곳을 집중 육성할 계획입니다. 자국 철강사 10곳의 글로벌 점유율을 60%까지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유럽 철강사는 아웃바운드 M&A를 통해 몸집을 불렸습니다. 세계 1위의 철강그룹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은 국내외 철강사를 인수합병해 20개국에서 공장 60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내 철강사들도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국내 철강사는 철강 제품의 수요 둔화로 수익률이 과거와 비교해 크게 악화됐습니다. 철강산업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는데, 철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포스코가 지난해 창립 후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낸 게 한 예입니다. 현대제철의 영업이익률은 1%도 채 안 됩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부터 제품 구조조정을 시작해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습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단조 사업을 분사했고 컬러강판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강관 사업도 운영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죠. 현대제철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1997년 IMF 이후 매물로 나온 회사를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습니다.

정몽구 회장이 철강사들을 사들이던 시기 글로벌 철강회사들은 매년 6%씩 성장했습니다. 중국 경제는 세계의 자원을 흡수하며 고속성장했죠. 중국의 엔진이 느려진 지금 글로벌 철강사는 2%의 성장도 버거워졌습니다.

현대제철 3분기 누적 매출 현황.(자료=금융감독원)


현대제철이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선 시기도 이 때부터입니다. 현대차와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된거죠. 현대제철은 해외 완성차 업체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순탄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현대제철이 현대차의 계열회사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완성차 회사들은 현대차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대차의 계열회사로부터 자동차 강판을 납품받는 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현대제철 매각설은 루머에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철강업계의 구조조정이 불필요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업체를 중심으로 하든 산업 전반에 걸쳐 진행하든 철강 산업의 구조조정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구조조정의 규모가 작을 수록 효과는 적습니다. 어찌 됐든 업계 1위와 2위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구조조정의 키를 잡아야 하는 건 분명합니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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