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의 양자암호통신 개발 성과가 속속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수년 간의 기술 표준화 및 시범 구축 단계를 지나, 올해부터는 실제 제품·서비스의 상용화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양자암호통신은 현존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암호체계다. 양자컴퓨터로 인해 기존 암호 시스템이 무력화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다. 양자컴퓨팅은 상태 중첩, 얽힘과 같은 양자역학 특성을 활용해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정보를 대규모로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를 활용한 양자컴퓨터는 아직 개발 초기 단계지만 상용화 수준에 이르면 기존 슈퍼컴퓨터 성능을 크게 압도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문가들도 슈퍼컴퓨터로 소인수분해 기반 암호를 해독하는데 수년이 걸렸다면, 양자컴퓨터는 이를 수일 내에 풀어낼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사진=Pixabay
▲ 사진=Pixabay

다행히 이를 방어할 수 있는 기술은 양자컴퓨터보다 빠르게 개발되고 있는데, 양자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양자암호통신도 양자의 물리적 특성을 활용한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기술론 양자키 분배와 양자난수생성이 있다.

양자키 분배는 통신에 사용되는 비밀키를 더 안전하게 배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양자암호체계다. 해커가 몰래 훔쳐보거나 가로챌 수 있는 숫자 암호와 달리, 양자암호는 물리적 특성상 제3의 인물이 통신에 끼어드는 순간 모든 데이터가 붕괴된다. 마치 비누거품이 건드리면 터지는 것과 비슷한데 이것이 해커가 양자암호 통신 데이터를 훔쳐볼 수 없는 이유다. 또 송수신자도 데이터값 변화를 통해 공격자의 침입을 쉽게 알아챌 수 있게 된다.

▲  양자 전송을 활용한 QKD 기반 네트워크 구조도 (자료=SKT)
▲ 양자 전송을 활용한 QKD 기반 네트워크 구조도 (자료=SKT)

양자난수암호는 현재 주로 사용되는 유사난수(최소한의 생성 규칙이 있어 뚫릴 위험이 있음)와 달리 양자의 자연적 성질을 이용해 생성되는 순수한 난수로 이뤄진다. 양자난수생성기로 만들어진 암호는 규칙이 없는 까닭에 컴퓨터 연산으로 값을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다.

현재 국내에서 양자암호통신 기술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SKT다. SKT는 2011년 국내 대기업 가운데 최초로 양자기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2년 후 주요 양자암호통신 장비들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2014년 국내 최초로 양자암호통신 기술이 적용된 시제품을 공개하고 2018년 세계 1위 양자암호통신 기업 IDQ를 인수하는 등 약 10년 전부터 선제적 준비에 나서왔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얻기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IDQ는 2019년 EU 산하 '양자 플래그십(Quantum Flagship)이 추진한 '오픈 QKD(양자키 분배)' 프로젝트에서 38개 글로벌 파트너 중 가장 많은 구간에 양자암호 시험망을 구축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2020년 3월엔 SKT가 제출한 양자키 분배 적용 네트워크 보안 기술이 ITU-T 국제 표준으로 최종 승인됐다.

2020년부터는 양자암호를 활용한 소비자단의 결과물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SKT가 삼성전자와 협업해 만든 '갤럭시 A 퀀텀'이 대표적이다. 세계 최초로 양자난수생성 칩셋을 탑재한 이 모델은 예약판매 기간 중 전작 대비 3배 이상의 주문량이 몰리며 소비자들의 높은 관심을 모았다. 이후 한국수력원자력이 SKT와 협업해 경주 본사와 삼량진 발전 사무소를 연결하는 양자암호통신망을 개통했고, 11월엔 양자암호를 적용해 보안성을 극대화한 T아이디 앱이 새롭게 출시됐다.

▲  세계 최초의 양자보안 기술 탑재 스마트폰 '갤럭시 A 퀀텀' (사진=SKT)
▲ 세계 최초의 양자보안 기술 탑재 스마트폰 '갤럭시 A 퀀텀' (사진=SKT)

KT와 LG유플러스는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지만 SKT를 빠른 속도로 뒤쫓고 있다. KT는 2020년 4월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발주한 '초연결 지능형 연구개발망(KOREN)'의 양자암호 통신망 구축·운영 사업자로 선정되며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다.

서울-수원 구간에 구축되는 해당 통신망에는 KT가 개발하고 2019년 국제 표준으로 채택된 기술이 적용됐으며, 해당 기술은 양자암호 통신망 구축에 국내외 사업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더불어 2020년 5월 자체 개발한 양자암호통신 기술로 진행한 5G 데이터 전송 실증에 성공했으며, 실제 고객이 사용 중인 일부 회선에 적용함으로써 상용화 가능성을 높였다.

'양자채널 자동 절체 복구 기술'도 2020년 11월 KT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기존 양자암호 통신 네트워크는 회선에 문제가 발생하면 서비스 자체를 중단하도록 설계돼 복구에 많은 시간이 드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이 기술을 활용하면 장애 발생 시 즉시 새로운 양자키를 공급할 수 있어 끊김 없는 서비스 유지가 가능해진다. 서비스 중단 시 치명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국방·금융 분야의 양자암호 통신 인프라 구축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  양자보안통신 기술 실증 장면 (사진=KT)
▲ 양자보안통신 기술 실증 장면 (사진=KT)

같은 해 12월엔 KT가 직접 기술을 이전한 광 전송장비 중소기업 '코위버'와 함께 개발한 양자암호화 장비를 공개했다. 양사가 공동 개발한 이 장비는 독립형 모델로 개발돼 통신 장비에 유닛 형태로 내장하거나 기존 장비를 양자암호화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26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에 제안한 이종 양자키 분배 모델이 국내 표준안으로 최종 채택돼 양자암호통신 표준 기술을 추가로 보유하게 됐다.

LG유플러스는 양자내성암호(POQ)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양자내성암호는 양자컴퓨터가 사용하는 수학 알고리즘을 활용해 만든 암호체계다. 양자컴퓨터로도 해독에 천문학적인 시간이 걸리는 특성 탓에 '양자내성'이란 명칭을 얻었다.

양자내성암호의 강점은 다른 양자보안 기술과 달리 별도의 장비 없이 소프트웨어만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휴대폰이나 소형 사물인터넷(IoT) 기기 등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디지털 기기에 적용할 수 있어 본격적인 양자 컴퓨팅 시대가 도래했을 때 기존 시스템을 업데이트하고 방어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LG유플러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주도 디지털 뉴딜 사업의 일환으로 2020년 12월 을지대학병원에 양자내성암호 기반 전용회선 구축을 마쳤다. 이를 활용하면 향후 비대면 원격진료처럼 네트워크상으로 민감한 의료 정보가 오가는 병원과 개인 간 통신에서도 높은 보안성을 확보하는 게 가능해질 전망이다. 또 같은 달 국내 최초로 IoT 단말용 양자보안칩 개발에 성공했으며, 지난 19일엔 양자내성암호 기술을 USB에 담은 'Q-PUF USB 보안 토큰'을 디지털 뉴딜 사업에 추가 적용했다고 발표했다.

▲  LG유플러스가 아이씨티케이 홀딩스, 이와이엘, LG CNS와 공동으로 국내 최초 IoT 단말용 양자보안칩 (사진=LG유플러스)
▲ LG유플러스가 아이씨티케이 홀딩스, 이와이엘, LG CNS와 공동으로 국내 최초 IoT 단말용 양자보안칩 (사진=LG유플러스)

한편, 이통사들이 이처럼 양자암호통신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업 특성상 잠재적 보안 허점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컴퓨팅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 시기는 향후 10년 이내가 될 수도 있다"며 "이통사들이 그보다 앞서 양자보안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면 모든 네트워크 사업이 일거에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5G 기반의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 등 차세대 통신 융합 산업들이 본격화되고 있는 이 시기에 예견된 보안 위협을 해결하지 못한 채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 역시 이들 비즈니스에 중대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양자정보통신 시장도 매년 빠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켓은 2019년 5억700만달러(한화 5612억원)였던 양자정보통신 글로벌 시장 규모가 2030년 650억달러(한화 72조원)로 연평균 56%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중 기술 선도국인 미국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양자암호통신 이니셔티브에만 무려 12억달러(한화 1조3000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국내의 경우 아직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정부가 공개한 차세대 네트워크 준비 사업 계획에 양자암호통신이 등장한다. 과기정통부의 2021년업무계획에도 양자암호통신, 양자센서 기술개발 및 양자정보통신 육성을 위한 법제 정비를 상반기 중 완료하고, 공공·의료·산업 분야에 양자암호통신을 적용하는 8건의 실증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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