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현대제철 합병설 루머 이유...정의선 체제서 낮은 존재감②

발행일 2021-01-27 16:18:42
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최근 LG전자는 29년 만에 모바일 사업에서 철수하는 의사결정을 두고 장고에 들어갔습니다. 구본준 회장은 2011년 "(스마트폰 사업을) 강하고 독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LG전자는 모바일 환경이 쉴 새 없이 변하면서 애끊는 심정으로 모바일 사업에서 손을 떼는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구광모 회장은 선대 회장의 '유지(維持)'에도 그룹의 성장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최근 산업계는 '격변기'를 맞아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장래성이 어둡거나 경쟁에서 뒤처진 사업은 손해를 입더라도 접고 있죠.

현대제철 당진공장 전경.(사진=현대제철)


앞선 기사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제철을 포스코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루머'를 다뤘죠. 루머는 현대제철 생산공장에서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이는 현대제철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생산현장의 분위기가 흉흉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현대제철은 전후방 산업 부진으로 2년 연속 영업이익률이 1% 안팎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9년 영업이익률은 1.5%, 2020년은 3분기까지 0.05%입니다. 3분기 순이익은 마이너스(-) 154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자비용으로 2068억원을 지출하면서 순손실이 대폭 커졌습니다. 현대제철은 연간 2800억원 안팎의 이자비용을 내는 회사입니다. 이는 3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지 않는 이상 정몽구 명예회장을 비롯해 현대차에 배당이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현대제철은 2010년 약 10조원을 들여 고로 3기를 건설했는데, 막대한 이자비용을 내고 있습니다. 일관제철소로 진출하는데 고로 건설이 필수였던 만큼 '출혈'을 감안하고 투자했죠. 영업환경이 좋을 때면 이자비용이 문제가 없겠지만, 어려운 시기에는 도드라져 보입니다.

현대제철의 생산현장에 돌았던 '루머'의 배경에는 장기 불황이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현대차그룹이 현대제철을 매각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현 상황에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현대차그룹의 복잡한 지분관계 때문입니다. 현대차그룹은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형태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그룹입니다. 순환출자는 기업이 계열사를 지배하기 위해 'A사→B사→C사→A사' 형태로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현대차그룹 2018년 기준 지배구조 조직도. 지분율에는 소폭의 변화가 있다.(사진=유진투자증권)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기아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등의 형태로 이뤄져있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하려면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합니다. 정의선 회장이 지분으로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어야죠.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정의선 회장이 보유한 현대차 지분은 2.6%, 현대모비스 지분은 0.3%입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나 현대글로비스를 지배구조의 핵심축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대글로비스는 정의선 회장이 23.2%의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입니다.

현대차 주요 계열사 지분 현황.(자료=금융감독원)


현대차그룹은 두 회사 산하에 현대차와 현대제철 등을 수직 또는 수평으로 배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려면 기아차와 현대제철 등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야 합니다. 현대제철은 현대모비스의 지분 5.8%를 갖고 있습니다.

지배구조 개편은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관계가 상충돼 복잡하고 험난한 작업입니다. 정 회장은 미미한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만큼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시간 문제라고 보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마무리될 때까지 현대제철 매각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겁니다.

물론 현대제철이 현대차그룹의 계열사로 언제까지 자리할 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유는 그룹 계열사 내에서 현대제철의 위상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왼쪽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 오른쪽 정의선 현대차 회장.(사진=현대차그룹)


첫번째 이유는 '모빌리티'입니다. 정의선 회장 체제에서 자동차의 위상은 줄어들고 모빌리티의 위상이 강화되고 있죠. 정 회장은 2019년 임직원과 대화에서 "미래에는 자동차가 50%, 개인용 항공기가 30%, 로보틱스가 20%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차를 '소유(owned)'하는 개념에서 '공유(sharing)'하는 개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공유자전거 '따릉이'처럼 필요할 때만 차를 빌려쓰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죠.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의 사명에서 '자동차(Motors)'를 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글로벌 로봇 생산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수 가격은 약 1조원 가량입니다.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Urban Air Mobility)와 화물용 무인항공기 개발도 진행 중입니다. 본업인 자동차 사업은 수소를 동력으로 하는 수소전기차(FEV)와 자율주행 등 소프트웨어 사업을 육성하고 있죠.

현대차그룹은 자동차에서 모빌리티로 중심축을 옮기고 있고, 소프트웨어 사업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과거 현대자동차는 품질이 최대 난제였죠. 정몽구 회장은 생산공장을 수시로 방문해 차량 바닥과 문틈까지 꼼꼼하게 훑었습니다. 그 정도로 자동차의 품질에 신경썼죠.

자동차강판은 차의 내구성과 연비를 좌우하는 핵심 축입니다. 정몽구 회장은 "신차의 성공은 자동차 강판의 품질에 달려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정몽구 회장이 2013년 3고로에 불을 넣고 있다.(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은 2013년부터 고성능 및 고강도 강판 개발에 주력했습니다. 현대제철이 개발한 핫스탬핑(고온에서 프레스해 냉각시켜 내구성을 높인 강판)은 차량의 내구성과 연비 절감에 기여했습니다. 이 기술은 현대차의 고급형 브랜드인 제네시스부터 탑재돼 현대차의 품질에 대한 인식을 높였죠.

현대차그룹의 성장기를 4세대로 구분한다면 지금은 4세대에 와있습니다. 1세대는 포니부터 자가용이 보급되던 시기까지이고, 2세대는 이후부터 제네시스를 출시한 2008년까지로 볼 수 있습니다. 3세대는 2008년부터 전기차 시장이 본격화되기 이전까지로 나눌 수 있죠. 현대차는 3세대 기간 동안 디자인과 품질, 성능까지 모든 부문을 혁신했죠. 그리고 지금은 '수소 경제'와 '모빌리티' 등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4세대에 와있습니다.

그룹 내에서 현대제철의 위상이 이전과 다른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현대차그룹에 있어 자동차강판의 품질은 가닿은 영역입니다.

두번째는 '넷 제로(Net Zero)'입니다. 넷 제로는 경제 활동 과정에서 순탄소 배출량을 전혀없게 하는 것인데요. 유럽연합(EU)은 물론 중국과 일본, 한국도 넷 제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철강산업은 산업에서 중차대한 부분을 차질하지만, 생산 과정은 친환경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철강사의 고민이 친환경입니다.

철광석을 녹여 제련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부생가스를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제 및 분리기술 부족으로 부생가스를 포집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비용이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단점도 있죠. 포스코와 현대제철, 미쓰비시중공업은 수소를 활용해 철강재를 생산하는 수소 제철소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비 투자 비용이 과도하게 들고, 수소가 경제적이지 못한 에너지원이라는 단점이 있죠.

현대제철 온실가스 부채 및 배출량. 부채 단위는 억원, 배출량 단위는 만톤(자료=금융감독원)


온실가스는 현대제철의 골칫거리 중 하나입니다. 현대제철이 지난해 4월 제출한 2019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로 연간 1143억원의 배출부채를 쌓았습니다. 배출부채는 탄소배출권을 구입하기 위해 미래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입니다. 전년에는 441억원을 배출부채로 쌓았는데, 한해 동안 61.3%(701억원) 증가했습니다. 기업은 정부에서 할당한 양 이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한국거래소 등 시장에서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합니다. 현대제철은 생산과정에서 연간 2250만톤(직접배출 1670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하는 만큼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회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죠.

현대제철은 2025년까지 5년 동안 4900억원을 투자해 제철소 환경을 개선할 계획입니다. 코크스 건식소화설비(CDQ)를 통해 연간 50만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계획입니다. 현대제철은 연간 2250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만큼 투자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대차는 내연기관 비중을 줄이고 친환경자동차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전기차와 수소전기차를 친환경자동차로 분류할 수 있는 이유는 주행 중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전기차 생산부터 폐차까지 이르는 생애주기(LCA)의 과정을 고려하면 현대제철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현대차의 친환경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특히 유럽과 일본 등은 2030년부터 자동차의 생애주기를 고려해 친환경성을 따지고 있습니다.

현대제철은 현대차의 핵심 부품인 자동차강판을 생산하는 계열사입니다. 지난해 3분기까지 현대제철이 현대차 및 현대차 해외 생산기지에 판매한 자동차강판은 7358억원 어치로 집계됐습니다. 현대차는 지난해 3분기까지 36조879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중 29조530억원을 원가비용으로 지출했죠. 현대제철에서 구매한 자동차강판(7358억원)은 전체 원가(29조530억원)의 2.5% 수준입니다.

현대차가 자동차 사업을 영위하는 이상 현대제철은 '필수 불가결'한 계열사인 점은 분명합니다. 고로 사업은 정몽구 회장의 '숙원'이었죠. 정의선 체제에서 현대제철은  '일장일단'이 더욱 뚜렷한 계열사가 됐습니다. 정의선 회장은 2020년부터 현대제철의 등기임원에서 빠졌습니다.

왼쪽 2013년 현대제철 사업보고서, 오른쪽 2020년 3분기 사업보고서. 현대제철의 등기임원에 정의선 회장이 빠져 있다.(자료=사업보고서)


정몽구 회장은 철강업을 육성하기 위해 IMF로 매물로 나온 회사를 하나둘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고로 건설에 10조원을 들여 지금의 현대제철을 키웠죠. 당시 산업은행에서 빌린 '신디케이트론'을 지금도 갚고 있습니다. 정의선 회장 체제에서 현대제철은 더욱 슬림해질 전망입니다. 그리고 현대제철의 구조조정은 지금도 추진 중이고,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현대제철은 포스코에 매각되진 않더라도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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