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현대그룹, '왕회장 유산' HMM 인수전 뛰어들까...눈치보다 패싱 우려도

발행일 2021-01-29 15:52:08
정부가 HMM(옛 현대상선) 매각을 재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재계의 관심은 원매자에 쏠리고 있다. HMM은 국내 유일의 대형 해운사로 선복량 기준 세계 8위의 해운사다. HMM을 인수하면 단번에 글로벌 수준의 해운사로 발돋움할 수 있다. 국내 대그룹들은 수출 중심의 사업구조를 갖고 있어 본업과 시너지가 상당하다. HMM이 매력적인 매물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HMM 선박이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사진=HMM)


29일 재계에 따르면 HMM의 유력 인수 후보로는 범 현대가와 포스코가 꼽힌다. 포스코는 지난 28일 공시를 통해 "산업은행으로부터 (HMM 인수를) 제안받은 적이 없고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자동차그룹 △HDC그룹 등 범 현대가가 HMM의 인수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HMM의 매각 금액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최대 1조5000억원으로 예상된다. 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지분을 합한 20.12%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가격이다.

HMM의 매각 가격은 적지 않다. 그럼에도 HMM 인수로 얻는 사업적 시너지 효과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산'을 인계받는 효과까지 고려하면 인수전에 참전할 만하다.

HMM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주요 그룹 현황.(자료=언론 등)


현대중공업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현대그룹 등 범 현대가의 대그룹 중 HMM 인수를 가장 욕심내는 곳은 현대그룹이다. 현대그룹은 2016년 6월3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대주주 지분을 7대 1로 무상감자를 단행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17.51%의 지분을, 현대글로벌과 현정은 회장은 각각 1.77%, 1.6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무상감자로 지분을 완전히 소각했다. 이후 최대주주는 산업은행 등으로 바뀌었다. 현대그룹은 HMM을 계열 회사에서 제외하면서 중견그룹으로 쪼그라들었다.

당시 HMM은 연간 6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던 계열사였다. 경영난 이전인 2009년 매출 8조9309억원, 순이익은 6684억원을 기록했다. HMM의 계열분리로 현대그룹의 알짜 회사는 현대엘리베이터만 남았다. 이후 현대그룹은 재기를 꿈꿨지만 현대엘리베이터로는 역부족이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2019년 매출은 1조8725억원, 영업이익은 1362억원이다. 2017년 2조원의 매출을 낸 이후 성장이 더뎌졌다는 평이다. 이 때문에 현대그룹이 과거의 위상을 되찾으려면 HMM을 되찾아야 한다는 관측이 많았다.

HMM(옛 현대상선) 실적 추이.(자료=금융감독원)


현대그룹이 HMM을 인수하려면 재무적인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현대엘리베이터의 연결 기준 현금성 자산은 3832억원이다. 공정가치금융자산은 2540억원으로 680억원이 타법인 지분이고, 채무상품이 1763억원이다. 재무적 투자자(FI)와 함께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는 이상 인수가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현대그룹 '영욕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소 무리해 HMM을 인수할 필요가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상선 시절 경영권에 욕심냈었다. 범 현대가의 우호 지분을 확보해 현대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현대중공업그룹을 포함한 범 현대가의 지분은 30%에 달해 손쉽게 경영권 분쟁으로 확전됐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상선이 우선주 발행한도를 시도할 때마다 반대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현대중공업은 2015년 6월 현대상선 지분으로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이후 채권단 출자전환으로 HMM이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현대그룹과 범 현대가 간 분쟁은 종식됐다.

그럼에도 현대중공업그룹과 HMM 간 사업적 시너지는 상당하다. 해운업은 조선업과시너지가 큰 산업이다. 조선업은 해운업의 후방 산업으로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조선사는 선박을 건조하고, 유지보수해 수익을 낸다. 해운사는 화물을 운송해 수입을 얻는다. 통상 해운사는 선박 한 척을 폐선할 때까지 10회 이상 수리를 받는다. 조선사가 해운사를 보유할 경우 선박을 건조해 폐선할 때까지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유지비용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한국 해운업이 발전하려면 해운사의 선복량이 늘어야 한다. 글로벌 1위 조선사인 현대중공업그룹이 HMM을 인수할 경우 국내 해운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평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정유(현대오일뱅크)와 건설기계(현대건설기계), 발전기(현대일렉트릭) 등을 영위하고 있다. 그룹의 주력 상품은 주로 해외로 수출한다. 해운사를 보유할 경우 운송비를 절감하는 장점이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글로벌서비스의 프리 IPO를 추진 중이다. 지분 일부를 매각해 투자금을 모으고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선박과 엔진 등을 수리하고 있다. HMM을 인수할 경우 현대글로벌서비스와 접점이 상당하다. 다만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과 두산인프라코어 등 조 단위 빅딜을 추진하는 점은 인수여력을 떨어뜨리는 대목이다.

현대차그룹도 해운업과의 시너지가 크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자사가 생산한 자동차를 해외로 수출한다. 현대글로비스는 완성차와 조립반제품(CKD)을 해외로 실어나르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석유화학제품과 철강재, 산업자재 등 다양한 상품을 운송한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매출 16조5190억원, 영업이익 6620억원을 기록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완성차 해상운송으로 1조7030억원의 매출을 냈다. 현대차는 지난해 84만대를 수출했고, 기아차는 83만대를 수출했다. 현대글로비스가 현대차와 기아차의 조립반제품을 해외 생산기지로 운송해 얻은 수익은 6조513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매출의 50% 이상이 그룹 계열회사에서 나왔다. 현대글로비스는 사실상 자회사의 물동량으로 성장한 셈이다.

세계 컨테이너 해운사 순위.(자료=알파라이너 등)


HMM을 인수할 경우 현대차그룹은 물류 부문의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진다. 해운업 특성상 점유율을 높이려면 선박 공급이 많아져야 한다. 현대글로비스와 HMM의 선복량을 합할 경우 초대형 해운사가 탄생한다. 시너지 측면에서도 두 회사의 합병은 긍정적이다. 현대글로비스는 대부분 벌크선과 자동차운반선 사업이고, HMM은 컨테이너 사업비중이 80%가 넘는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발생할 M&A 효과가 상당하다.

HMM 인수는 현대차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에도 유리하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골자는 경영권 승계와 순환출자 해소다.현대모비스나 현대글로비스가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놓이는 방안이 유력하다. 현재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이 지분 23.29%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가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려면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가 커져야 하는데, HMM 인수는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긍정적이다. 정부도 2016년 이런 점을 고려해 현대글로비스에 HMM 인수를 제안했다. 현대차그룹은 컨테이너 사업의 연관성이 크지 않다며 고사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현대글로비스의 현금성 자산은 1조6148억원이다. 전년과 비교해 현금성 자산이 약 1조원 증가했다. 현대글로비스가 HMM 인수전에 뛰어들 경우 계열사의 지원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무적 부담을 덜 수 있는 셈이다.

범 현대가는 저마다 HMM 인수로 얻는 메리트가 뚜렷하다. 과거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두고 범 현대가간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점은 인수전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자칫 범 현대가 간 갈등이 재연될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재계는 범 현대가가 눈치싸움을 벌이다 HMM을 인수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등 자회사의 M&A를 '스토킹 호스'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스토킹 호스는 기업을 매각하기 전 인수자를 미리 내정하고 경쟁 입찰로 좋은 조건을 제시할 인수자를 찾는 방식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위해 현대중공업그룹과 수의 계약 형태로 매각 절차를 진행했다.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그룹은 2019년 1월 언론을 통해 대우조선해양 매각 작업이 공개되기 최소 6개월 전부터 인수 구조를 짰다. 범 현대가가 HMM 인수 의향이 있을 경우 속도를 내야 하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산업은행의 M&A는 원매자를 미리 정해놓는 경우가 많다"며 "산업은행이 HMM을 매각한다면 스토킹 호스 방식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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