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출항을 기다리는 HMM 선박.(사진=HMM)
▲ 출항을 기다리는 HMM 선박.(사진=HMM)

최근 시장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국내 유일의 대형 해운사인 HMM(옛 현대상선)입니다. 시장에 따르면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HMM의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HMM은 산업은행이 12.61%의 지분을, 신용보증기금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각각 7.51%, 4.2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산업은행이 HMM의 민영화를 추진한다면 보유 지분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매각하는 방안이 유력합니다. 시장은 매각 가격이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시장의 관심은 온통 원매자에 쏠려 있습니다. 매각 예상 금액만 1조원이 넘는 '대어'이고, 인수 후보로 물망에 오른 곳이 범현대가와 포스코그룹이기 때문이죠. 아직 산업은행이 HMM의 민영화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만큼 확정된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HMM의 민영화가 국내 해운업 발전을 좌우할 사안인 만큼 산업적 측면에서 중대한 사안입니다.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등 범현대가는 HMM을 인수할 '동기(motive)'가 있습니다. HMM 민영화가 가볍지 않은 현안이라는 의미입니다.

HMM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76년 설립한 해운사입니다. 1973년 발주처가 1차 오일쇼크로 원유운반선 인도를 거부하자 정주영 창업주는 '운용의 묘'를 발휘해 해운사를 설립한 거였죠. HMM(당시 아세아상선)은 1983년 현대상선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후 해운사를 흡수하면서 몸집을 불렸죠. 하지만 2010년 유럽발 금융위기와 운임 하락 등을 맞으면서 2016년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됐습니다. 범 현대가는 HMM을 정부 손에서 되찾아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습니다. 범 현대가가 HMM을 선대 회장이 일군 '유산'으로 생각한다면 말이죠.

▲  현대차그룹 순환출자 현황.(자료=대신경제연구소)
▲ 현대차그룹 순환출자 현황.(자료=대신경제연구소)

범 현대가 중 현대차그룹은 HMM 인수로 얻게 될 효과가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힙니다. 이유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때문입니다. 현대차그룹은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형태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순환출자는 기업이 계열사를 지배하기 위해 'A사→B사→C사→A사' 형태로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은 경영권 승계와 순환출자 해소와 맞닿아 있습니다. 지배구조 개편은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관계가 상충돼 복잡하고 험난한 작업이 될 전망입니다. 경영권 승계와 순환출자를 모두 해결하는 걸 목표로 지배구조 개편이 추진될 수밖에 없죠. 이미 2018년 현대모비스 분할 합병을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편이 추진됐지만 이해관계자의 반대로 무산됐죠.

▲  현대차그룹 상장사 최대주주 현황.(자료=금융감독원)
▲ 현대차그룹 상장사 최대주주 현황.(자료=금융감독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적은 계열회사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정의선 회장이 최대주주인 곳은 현대글로비스가 유일합니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의 지분 23.29%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현대글로비스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축으로 부상했습니다.

현대글로비스를 지배구조 개편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면 기업가치가 커져야 합니다. HMM 인수는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HMM 인수가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높이는지 보려면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PER(주가 수익비율)과 이비에비타(EV/EBITDA) 등을 활용하면 기업의 현재가치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HMM은 지난해 코로나19로 글로벌 물동량이 폭증하면서 유례없는 호실적을 냈습니다. 지난해 3분기까지 4조4067억원의 누적 매출을 기록했고, 누적 영업이익은 4137억원에 달했습니다. 시장은 지난해 연간 8000억원 후반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시장에 따르면 HMM의 PER과 PBR(주가순자산비율) 전망치는 각각 61.4배, 2.5배입니다. 전년인 2019년 PER은 마이너스(-) 1.9배, PBR은 1.0배였죠. 수치를 보면 변화를 확인할 수 있죠.

▲  HMM 밸류에이션 변화(자료=네이버 금융)
▲ HMM 밸류에이션 변화(자료=네이버 금융)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컨테이너 운임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이는 HMM의 밸류에이션에도 긍정적으로 반영됐습니다. PER은 특정주식의 주당 시가를 주당 수익으로 나눈 수치입니다. 주가가 한주당 수익의 몇 배를 냈는지를 볼 수 있는 지표입니다. PBR은 주가가 순자산에 비해 1주당 몇 배로 거래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통상 PER 수준은 기업경영성과가 좋아지는 방향으로 가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PBR은 1보다 낮은 경우 기업이 저평가된 것으로 봅니다.

HMM은 2019년만 해도 PER이 -1.9배, PBR이 1.0배였습니다. PBR이 1이고, PER이 마이너스인 경우 초과이익이 0에 머물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PER과 PBR은 각각 61.4배, 2.5배로 전망되고 있죠. PBR이 1보다 높고, PER이 플러스인 경우는 향후 초과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시장이 예상한다는 의미입니다. PER 수준이 높아지는 건 주주의 요구수익률을 초과해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의미죠.

▲  현대글로비스 2020년 경영 실적.(자료=현대글로비스 IR북)
▲ 현대글로비스 2020년 경영 실적.(자료=현대글로비스 IR북)

현대글로비스는 어떨까요.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매출 16조5190억원, 영업이익 662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인 2019년과 비교해 매출은 9.6%(1조7502억원), 영업이익은 24.4%(2143억원) 줄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PER을 계산하면 17.0배를 기록했습니다. 시가총액 7조4438억원을 기준으로 계산한 수치입니다. 현대글로비스의 2019년 PER과 PBR은 각각 10.6배, 1.1배입니다. PBR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초과이익이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고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  현대글로비스 밸류에이션 변화(자료=네이버 금융)
▲ 현대글로비스 밸류에이션 변화(자료=네이버 금융)

주가 또한 현재 기업가치 수준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팬데믹 선언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해 3월12일 현대글로비스 종가는 10만8000원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1일 종가는 18만5500원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주가는 41.7% 올랐습니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주식시장과 비교하면 예상보다 크게 주가가 상승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차와 기아차와 비교하면 상승률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죠.

현대글로비스가 그룹 지배구조 개편 때 '지렛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지금보다 기업가치가 상승해야 합니다. 주가는 미래 경영성과를 주주의 요구수익률로 할인한 값이라고 합니다. 주가에는 주주가 기대하는 요구수익률이 간접적으로 반영돼 있죠.

예를 들어 경영성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주주들은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주주의 기대 수익률은 높아집니다. 일종의 '위험 프리미엄'이 반영되면서 주가 상승으로 투자금을 가능한 한 많이 회수하길 원합니다. 경영성과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은 주주의 기대수익률이 낮습니다. 불확실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바이오 기업과 2차전지 관련 회사의 주가가 높은 이유도 기대수익률이 반영된 것입니다.

현대글로비스는 어떨까요.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완성차, 현대모비스의 반제품을 해외 생산기지로 운송합니다. 계열 회사의 물량이 보존되는 만큼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현대글로비스의 경영 실적은 상당히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신사업에 뛰어들지 않는 이상 기업가치를 시장의 기대 이상으로 올리기 어렵죠.

현대글로비스가 HMM을 인수한다고 가정해볼까요. HMM은 현대글로비스의 계열사로 종속기업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HMM의 실적이 현대글로비스의 연결 기준 실적에 더 해집니다. HMM은 2019년 매출 5조5130억원, 영업손실 2996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를 현대글로비스의 2019년 연결 기준 실적에 반영하면 매출은 23조7831억원(합산 전 18조2701억원)으로 증가합니다. 영업이익은 5769억원으로 합산 전(8765억원)보다 줄어듭니다.

시장은 HMM이 지난해 매출 6조원, 영업이익 8000억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HMM 실적을 합산하면 현대글로비스의 지난해 매출은 약 22조원(합산 전 16조5199억원)으로, 영업이익은 약 1조5000억원(합산 전 6622억원)으로 집계됩니다. 자산규모도 10조원에서 17조원으로 불어납니다. 부채비율은 115.1%에서 193.3%로 78.2% 포인트 증가합니다.

▲  현대글로비스 실적 HMM 인수 전후 변화(자료=금융감독원 등)
▲ 현대글로비스 실적 HMM 인수 전후 변화(자료=금융감독원 등)

해운업은 컨테이너 물동량이 증가하면서 운임이 높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15일 2885를 기록하면서 최고점을 찍은 후 조정 국면을 거치고 있습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올해에도 컨테이너 운임이 높게 유지되면서 해운사의 수익성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 HMM은 현대상선 시절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경영난을 겪었습니다. 운임이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화물을 실어날라도 손해만 봤었죠. '보릿고개' 시절을 고려하면 지금은 풍족한 호시절을 보내고 있죠. 산업은행이 HMM의 매각을 저울질하기 시작한 것도 시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차그룹은 어떨까요. 정의선 회장은 지난해 10월 수석부회장 직함을 떼고 승진했습니다. 부회장 승진 11년 만에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 세대교체를 공식적으로 알렸습니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편은 2018년 이해관계자의 반대로 좌초되면서 재추진할 시기조차 못 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를 고려하면 가능한 한 서둘러 지배구조 개편에 시동을 걸어야 합니다.

현대차그룹은 2016년 현대상선의 인수 제안에 "시너지가 없다"며 고사했습니다. 2016년과 2021년 현대차그룹의 상황은 전과 판이하게 다릅니다. HMM을 보는 시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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