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지난 2020 사업연도에 호텔신라가 적자를 기록한 것은 하나의 사건입니다. 그동안 쭉쭉 거침없이 성장만 해오던 회사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처음으로 주춤했기 때문이죠. 팬데믹 이후 국내 호텔 및 면세사업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물론 호텔신라는 국내 재계순위 1위 삼성의 계열사로 이번 적자로 회사의 영속성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단순 실적악화뿐 아니라 신용등급 하락, 재무부담 가중 등 사업 불확실성 크게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백신이 개발되긴 했지만 아직 팬데믹을 잠재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호텔신라가 지난해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호텔신라는 지난해 연결기준 3조2000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2019년 매출 규모가 5조70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전년 대비 매출이 43.9%나 줄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 매출액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으로, 지난 6년 중 가장 저조한 실적입니다. 여행금지로 인해 해외 여행객 유입이 차단되고 국내서도 호텔 및 면세점 사용 인구가 급감한 결과입니다.

▲  (출처=금융감독원.)
▲ (출처=금융감독원.)

호텔신라의 사업부문은 크게 호텔&레저 부문과 면세 부문(TR‧Travel Retail)으로 구성돼 있는데요. 면세 부문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 2조2960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매출액 대비 알선수수료 통계입니다. 호텔신라가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한 IR자료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4.3%에 불과하던 알선수수료가 2, 3분기 연속으로 상승하더니 4분기에는 무려 20.9%를 기록했습니다. 전년 동기 6.7%였던 알선수수료율이 약 3배나 상승했습니다. 알선수수료는 모객을 해준 대가로 호텔신라가 지급하는 수수료인데요. 주로 중국 보따리상이나 관광객 유치를 위해 사용됩니다. 매출이 줄어 자연스레 매출 대비 수수료율이 오르기도 했지만, 반대로 높은 수수료율을 유지하면서도 호텔신라는 매출을 방어하려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돈이 들어오지 않다보니 영업손익은 사상 처음으로 적자로 전환했습니다. 적은 매출에 면세점 유지를 위한 임대료와 호텔 유지비용 등이 지속 발생하며 약 1900억원의 손실을 냈습니다. 2019년 3000억원의 이익을 내던 회사가 1900억원의 적자를 냈으니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는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현재 이러한 상황이 얼마나 장기화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처음 확산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일일 확진자 수가 100명 미만으로 관리됐으나, 거듭된 재확산을 통해 최근 일별 신규 확진자수는 300~500명 사이를 오가고 있죠. 백신이 개발돼 국내서도 곧 접종을 시작한다고 하지만, 언제 해외국가 간 여행이 자유로워질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건강한 성인의 경우 오는 7월부터 접종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실제 구매력 있는 연령대 인구의 활동은 더 오랜 기간 묶여 있는 것이죠.

▲  (출처=금융감독원.)
▲ (출처=금융감독원.)

무엇보다 현재 재무부담이 상당히 가중된 상태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호텔신라는 364%의 부채비율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284%에서 80% 포인트나 뛰었습니다. 부채는 2조2699억원으로 전년 2조6077억원과 비교해 3378억원 줄었지만, 자본총계도 같이 감소하며 결과적으로 부채비율이 상승하는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자본총계 감소를 통해서도 이번 호텔신라의 부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호텔신라는 꾸준한 수익을 통해 매년 자본총계 규모를 늘려왔습니다. 2011년 6000억원 수준이던 연결 재무제표 기준 자본총계는 2019년 약 3000억원 증가해 9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자본총계가 6200억원으로 줄어들었죠. 적자 한 번에 자본총계 규모가 약 10년 전으로 회귀한 것입니다.  자본총계 규모 감소의 원인은 이익잉여금 감소로 분석되는데요.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뒀던 현금을 지난해 모두 까먹은 셈입니다.

▲  (출처=금융감독원.)
▲ (출처=금융감독원.)

지난해 말 기준 호텔신라의 차입금이 어떻게 변했고 어떤 구성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정보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IR자료에는 단순 자산, 부채, 자본 총계에 대한 정보만 제시돼 있습니다. 다만 지난해 3분기 기준 2019년 말보다 총차입금과 순차입금이 모두 증가한 것을 보면, 이후에도 큰 변화는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호텔신라는 현 상황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요. 호텔신라는 일단 현재 상황을 별도 자산 매각 없이 이끌어간다는 계획입니다. 호텔신라 재무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아직까지 별도의 자산 매각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대신 호텔신라는 숙원사업인 한옥호텔 프로젝트 투자를 잠정 보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초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했으나 공시 기한을 2024년 5월로 연장했습니다. 실제 투자실적도 소폭 줄었습니다. 호텔신라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556억원, 601억원을 투자비용으로 집행했는데요. 2020년에는 투자규모가 417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80억원 줄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더 지속될 경우 추가적인 투자 연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  (자료=호텔신라 IR자료.)
▲ (자료=호텔신라 IR자료.)

호텔신라가 현재 처한 상황을 그룹 상황과 연결지어 볼 여지도 있습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호텔신라의 단일 최대주주는 지분 10.32%를 보유한 국민연금입니다. 다만 삼성생명 7.3%, 삼성전자 5.1%, 삼성증권 3.1%, 삼성카드 1.3%, 삼성SDI 0.1% 등의 삼성 계열사들이 골고루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실제 지배력은 삼성 계열사들이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계에서는 지난해 이건희 회장 타계 이후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약 11조원의 어마어마한 상속세 마련도 문제고요. 국회에서는 이른바 ‘삼성생명법’이라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어,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은 지분 상당수를 팔아야 합니다.

지배구조가 언제 어떻게 개편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국정농단 재판으로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돼 더욱 상황을 예측하기 힘들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호텔신라의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질 경우 삼성 계열사들이 선뜻 나서 도와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현물출자를 포함한 유상증자와 같이 지분율 변화를 동반하는 도움은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배구조 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현재 상황에서 아주 조금의 지분율 변화도 시장에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호텔신라의 주주구성이 다양한 만큼, 어떤 계열사가 얼마의 도움을 주느냐에 따라 지배구조 개편의 단초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호텔신라가 현재 자금원조가 필요할 정도로 위기인 상황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아직 자산매각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지만, 부동산 등을 팔아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고려해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이죠. 이미 승계와 계열분리가 어느정도 정리된 사촌그룹인 신세계와는 확연히 대비가 됩니다. 최근 신세계조선호텔이 큰 폭의 적자를 겪자 모회사 이마트가 현물출자 등을 통해 2700억원의 긴급수혈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결국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잠잠해지고, 언제 호텔신라가 실적과 재무개선에 나설지가 관건으로 보입니다. 과연 호텔신라는 올해 곧바로 흑자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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