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 배터리사업부)이 SK이노베이션과 벌인 배터리 기술소송에서 사실상 완승을 거뒀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LG에너지솔루션이 주장한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해 SK이노베이션의 리튬이온배터리에 대해 10년 간 제한적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2월 ITC의 예비판정을 통해 조기패소 판결을 받았다. 이후 최종판결에서도 결과는 뒤바뀌지 않았다.

이번 조치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톱 티어'를 노렸던 SK그룹의 전략에 차질이 빚어졌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조치로 빚어질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LG에너지솔루션과 합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 델라웨어 지방법원의 민사소송 등도 남아있어 ITC 판결의 여파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ITC는 10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이 생산한 배터리에 대해 10년 동안 미국 내에서 수입을 제한적으로 금지한다"고 결정했다. ITC는 고객사에 돌아갈 피해를 고려해 포드와 폭스바겐에 공급될 제품은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이번 판결은 2019년 4월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최종 결론이다. 양사는 같은해 한국과 미국 법원에 맞소송을 진행했다. 양사의 소송은 첨단산업 분야의 지식재산권 현안이었던 만큼 국내외 산업계와 법조계의 관심을 받았다.

▲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진행한 배터리 분쟁 일지.(자료=한국지식재산연구원)
▲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진행한 배터리 분쟁 일지.(자료=한국지식재산연구원)

LG에너지솔루션이 주장한 영업비밀 침해 사실 중 핵심은 '연구 인력'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자사(당시 LG화학) 전지사업본부에서 기술유출 우려가 있는 핵심 인력 76여명을 데려갔다고 주장했다. ITC의 예비판정에서 드러난 행정판사(ALJ) 판결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 직원들을 데려가 민감한 기술정보들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SK이노베이션은 한국 내 소송에서 불리하게 진행되자 이메일과 증거파기를 시작했다. ALJ는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내에서 소송이 불거지면서 문서 보존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파기했다고 판단했다.

ALJ는 2019년 SK이노베이션에 광범위한 포렌식 조사를 하도록 지시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일부 문서에만 한정해 포렌식을 진행했다.

ITC는 이 같은 점을 들어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SK이노베이션은 자사의 배터리 기술이 LG에너지솔루션과 근본적으로 다른 기술을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유사한 기술은 '영업비밀'이 아닌 '공개된 정보'로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논리로 맞섰다. 하지만 ITC는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기술정보를 빼내기 위해 노력한 점을 볼 때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은 자사의 논리를 입증하기 위해 증명해야 했으나 문서가 파기되면서 입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왼쪽부터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CI.(사진=각사)
▲ 왼쪽부터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CI.(사진=각사)

ITC의 최종판결이 나오면서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 간 공방전은 LG 측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이번 판결은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10여개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SK이노베이션이 개별 소송에서도 패소할 경우 생산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양사 간 합의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이번 소송이 민사소송인 만큼 양사가 합의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ITC 판결과 무관하게 미국 내에서 생산과 수입을 이어갈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판결 직후 "소송의 쟁점이었던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해 아쉽다"며 "남은 절차를 통해 미국 내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고,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생산이) 미국 내 공공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은 "유예기간 동안 고객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판결로 기술 탈취 행위가 명백히 입증됐고, SK는 합당한 합의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판결로 30여년 동안 수십조원을 투자해 쌓아온 지식재산권을 법적으로 정당하게 보호받게 됐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며 "SK이노베이션은 ITC 최종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에 부합하는 제안을 해 하루 빨리 소송을 마무리하는데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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