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삼성SDI CI.(사진=삼성SDI)
▲ 삼성SDI CI.(사진=삼성SDI)

삼성SDI는 지난해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제조업이 불황이던 시기에도 견고한 실적을 냈습니다. 디스플레이 시장의 점유율은 줄고 있지만 본업인 배터리와 디스플레이 사업은 '정중동'하는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평년보다 순이익이 늘면서 '부'를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삼성SDI가 제조업의 마진이 악화되면서 절세 등 비용 관리에 신경쓴 영향입니다.

삼성SDI는 지난달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2020년 감사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삼성SDI는 지난해 매출 9조1013억원, 영업이익 2313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2.5%를 기록했죠. 제조업 평균보다 소폭 낮은 수치입니다. 눈에 띄는 건 순이익이었습니다. 삼성SDI의 순이익은 2173억원, 순이익률은 2.4%를 기록했습니다.

▲  삼성SDI 실적 현황.(자료=금융감독원)
▲ 삼성SDI 실적 현황.(자료=금융감독원)

순이익은 기업이 금융권과 정부 등 이해관계자의 몫을 떼고 순수하게 가져가는 이익을 의미합니다. 기업은 영업활동을 위해 은행 등에서 차입금을 빌려 쓰는 만큼 이자를 지급하죠. 국세청에는 법인세를 납부합니다. 영업이익에서 금융비용 등 영업외비용과 법인세 비용을 제하면 당기순이익입니다.

기업은 많이 팔아 매출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정비용 등을 절감해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업이 영업외비용과 법인세를 지출하면 순이익이 크게 줄어드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반면 삼성SDI는 영업외손익으로 140억원, 금융비용 220억원을 지출하면서 영업외비용을 총 80억원 인식했습니다. 이는 삼성SDI가 순이익을 늘리는 데 주요한 요인이 됐습니다.

세전이익은 2232억원입니다. 세전이익은 영업이익에서 영업외손익과 금융손익을 제한 것으로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라고 합니다. 세전이익에서 법인세를 제하면 당기순이익입니다. 여기서부터 삼성SDI가 순이익을 많이 남기기 위해 활용한 '절세의 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2018년 개정된 세법에 따르면 법인세 과세표준 구간은 총 4개입니다. 과세표준 2억원 이하일 경우 10%, 2억원초과 2000억원 이하는 20%, 200억원 초과 3000억원 이하는 22%, 3000억원 초과는 25%의 세율을 적용받습니다. 삼성SDI는 24%의 세율을 적용했습니다.

▲  삼성SDI 법인세 현황.(자료=금융감독원)
▲ 삼성SDI 법인세 현황.(자료=금융감독원)

당초 삼성SDI가 적용세율에 따라 책정한 법인세는 540억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삼성SDI가 국세청에 내야할 법인세는 59억원입니다. 당초 책정한 법인세와 비교해 481억원 줄어들었습니다. 유효세율은 2.7%로 무려 21.5% 포인트 낮아졌습니다.

삼성SDI가 법인세 금액을 크게 낮춘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연법인세의 역할이 가장 컸습니다.

이연법인세란 기업 회계와 세무 회계의 회계상 차이를 조정하는 항목입니다. 기업은 계속 운영할 것을 전제로 회계를 작성합니다. 비용이나 매출이 실제로 발생할 때 손익을 계산하는 것은 기업의 경영성과를 적절하게 반영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회계기간을 중심으로 수익과 비용을 대응시켜 이익을 계산하는데, 이를 '기간손익 계산'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세무회계에서는 실제로 비용 또는 소득이 발생할 때에만 과세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기업회계와 세무회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도입한 게 바로 이연법인세입니다. 기업회계로 계산한 법인세가 세무회계상 법인세보다 작을 경우 향후 공제받을 수 있으므로 '이연법인세 자산'으로 잡고, 반대일 경우 '이연법인세 부채'로 기재합니다. 즉 추후 과세 항목이 줄어 법인세를 환급받으면 이연법인세 자산, 더 내야하면 부채인거죠.

한 예로 A라는 기업이 매해 100만원의 정기예금 이자를 받는다고 가정해보죠. 이자 지급일은 연말이라고 가정해봅시다. 법인세 납부일은 매해 4월과 8월입니다. 8월은 당해연도 법인세를, 4월은 직전연도 법인세를 납부하죠. A의 적용세율은 20%입니다. A 기업의 법인세 비용은 22만원입니다. 기업회계에서는 이자 수익을 인식할 수 있지만 세무회계에서는 이자수익을 인식할 수 없어 법인세 비용과 이연법인세 부채를 각각 20만원씩 책정합니다. 이 같은 방식으로 기업회계와 세무회계의 간극을 메우는거죠.

▲  세무회계 법인세 비용 현황.(자료=금융감독원)
▲ 세무회계 법인세 비용 현황.(자료=금융감독원)

삼성SDI가 지난해 세무회계로 책정한 법인세 부담액은 135억원입니다. 앞서 기업회계에서는 '기간손익 계산'을 통해 수익과 비용을 인식한다고 했죠. 세무회계는 당해연도 수취할 권리가 확정된 수익과 그 기간에 지급할 의무가 확정된 비용에 한해서만 인식합니다. 이를 '권리의무 확정주의'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 2020년 인식한 법인세 부담액은 135억원이라는 얘기죠.

삼성SDI는 지난해 '일시적 차이로 인한 법인세 변동액'으로 453억원을 인식했습니다. 이는 법인세법과 기업회계 기준의 차이로 발생한 금액입니다. 기업회계에서는 자산과 부채로 인식하지 않지만 세무회계에서는 자산과 부채로 인식하는 경우죠. 자산과 부채가 미래 기간의 과세 소득을 증가 또는 감소시킬 경우 이를 법인세 금액에 반영합니다. 추후 자산과 부채를 처분할 경우 그동안 쌓았던 '일시적 차이로 인한 법인세 변동액'은 상각돼 법인세 금액이 줄어듭니다. 이외에도 법인세법의 감가상각 산정 기준이 다른 점도 일시적 차이를 유발합니다.

삼성SDI는 같은해 '이월세액공제로 인한 이연법인세 변동' 항목으로 마이너스(-) 529억원을 인식했습니다. 기업은 투자와 고용, 배당을 할 경우 법인세 감면 혜택이 주어집니다. 기업들은 한해 공제받을 수 있는 세금 규모가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이연법인세 자산으로 쌓은 후 나눠서 공제를 받습니다. 삼성SDI는 영업환경이 악화되고 법인세 변동액이 증가해 이를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  삼성전자 및 삼성SDI 법인세 비교.(자료=금융감독원)
▲ 삼성전자 및 삼성SDI 법인세 비교.(자료=금융감독원)

지난해 '이월세액 공제로 인한 이연법인세 변동 항목'에서 법인세 변동액을 차감해 법인세 납부액을 75억원(529억원 - 453억원) 줄였습니다. 그 결과 삼성SDI는 지난해 법인세 납부액으로 59억원을 책정한 거죠. 24%의 법인세율이 2%대로 낮아진 데는 이연법인세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데 있습니다.

삼성SDI의 매출은 삼성전자의 18 분의 1 규모입니다. 삼성전자의 연 매출은 166조, 삼성SDI는 9조원이죠. 그런데 법인세 납부액은 삼성전자의 819분의 1 수준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약 5조원을 법인세 비용으로 책정했죠. 두 회사의 매출 규모와 법인세 납부액을 볼 때 적잖은 차이가 있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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