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머스 격변기]‘동맹 한창인데’…롯데그룹, 나홀로 마이웨이

발행일 2021-03-03 12:04:23
격변기를 맞고 있는 유통업계의 트렌드를 들여다봅니다.

올 1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네이버 사옥을 직접 찾아간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신세계가 대규모 투자를 벌이며 ‘이커머스(e-commerce)’ 시장에 진출한 이후 네이버와는 자연스레 경쟁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두 업체의 수장이 연초부터 오프라인 만남을 가진 것을 두고 언론에서는 ‘적과의 동침’이라는 표현도 썼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놓고 보면, 유통업계 사상 가장 큰 변혁의 시기 속에서 ‘협력’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절박함의 방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피아식별 방식은 오히려 생존에 걸림돌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셈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롯데)


이커머스 시장 공략을 위해 신세계와 네이버가 만나면서 또 다른 오프라인 유통 강자인 롯데그룹에도 관심이 모인다. 롯데 역시 마찬가지로 이커머스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통합 온라인몰 ‘롯데 온(롯데 ON)’을 출범시켰지만 현재 부침을 겪는 중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정 부회장이 네이버를 찾아갔다는 보도를 접하고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폭풍 성장하는 이커머스 시장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1월 28일 경기도 성남시의 네이버 본사를 직접 찾아가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만나 앞으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강희석 이마트 대표와 한성숙 네이버 대표도 배석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만남 이후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진 않았지만, 양사가 협력 의지를 갖고 있고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한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행보였다.

정 부회장과 이 GIO 만남은 순전히 이커머스 시장 때문에 이뤄졌다. 이커머스 시장은 최근 몇 년 간 유례없는 성장세를 기록했고, 앞으로도 소비행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아직도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시장 선점을 위해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통계청 온라인쇼핑동향.)


통계청이 지난달 3일 내놓은 온라인 쇼핑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173조8081억원으로 전년도 135조2640억원과 비교해 무려 28.5% 성장했다. 2010년 온라인 쇼핑 거래규모가 25조155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0년 만에 6배 가깝게 성장한 셈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월별 기준 거래액이 15조원을 넘어서며 최근 들어서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이러한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는 2022년에는 연간 거래액이 200조원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조사 기관마다 성장 예측 규모는 모두 다르지만, 큰 폭의 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데 모두 의견을 모으고 있다.

동맹 전선 끼지 않는 롯데

이커머스 시장은 완전히 새롭게 탄생한 시장이라 아직 주요 플레이어들 중 누구도 완벽한 정답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협력’은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경쟁자와 격차를 벌이는 중요한 수단으로 평가 받는다.

‘협력’이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른 데는 ‘쿠팡’의 등장도 한 몫 했다. 쿠팡이 로켓배송으로 사세를 불려나감에 따라 업계에서는 쿠팡을 어떤 업종으로 분류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소한 논쟁도 있었다. 단순 온라인 쇼핑사업자로 생각했는데, 물류와 IT까지 기반을 넓혀가며 업종 간 장벽을 허물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쿠팡을 이커머스, 물류, IT 중 어떤 업체로 봐야할지 모른다”며 “이는 이커머스를 완전히 새로운 시장으로 인식해야 하는 뜻이다”고 말했다.

동시에 쿠팡이 수조원의 적자를 감수하면서 시장 확장에 ‘올인’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네이버와 같은 온라인 포털 사업자와, 기존 오프라인 유통 강자들에게는 방심하면 시장을 모두 뺏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출처=교보증권 리포트 '쿠팡 상장, 네이버 커머스 재평가 기회' 내 갈무리.)


교보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해 온라인 쇼핑 거래액 20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만 하더라도 거래규모는 3조7000억원에 불과했으나 4년 만에 무려 5배 넘게 성장했다. 물론 같은 기간 네이버도 온라인 쇼핑 거래 규모를 4조6000억원에서 26조8000억원으로 늘리며 주요 사업자로 급부상했지만, 시장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CJ대한통운과 자사주까지 교환하며 동맹전선을 형성했다. 쿠팡과 비교해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는 물류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지분교환을 통한 동맹은 실제 사업모델 추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물류 솔루션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물론 아직 이커머스 시장에서 파괴력 있는 구체적인 ‘협업’ 사례가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커머스라는 예측불가능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으로 동맹의 필요성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신세계와 함께 오프라인 주요 강자로 꼽히는 롯데그룹은 표면적으로 협업을 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신세계그룹 정 부회장이 네이버를 직접 찾아가 협업을 논의한 것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대신 롯데그룹은 내부 개혁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롯데의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ON)' 사업을 총괄해온 조영제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부장은 최근 실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롯데는 롯데온 출범을 위해 2018년 이커머스사업본부를 신설했다. 롯데 7개 유통 계열사 쇼핑몰의 온·오프라인 데이터를 통합해 지난해 4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동시에 오는 2023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러나 롯데온이 지금까지 어떤 실적을 거뒀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롯데온 어플리케이션 월간 사용자수가 쿠팡의 5% 수준이라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이다. 매출은 얼마고, 거래규모는 얼마인지 롯데는 IR을 통해서 공개하고 있지 않다.

롯데는 협업이 어색하다?

롯데가 이커머스를 비롯한 유통업에서 협업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은 그룹의 성향과 전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룹 문화 자체가 상당히 보수적인 데다 다른 업체와의 협업이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롯데그룹 계열사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많이 바뀌긴 했지만 전통적으로 조직이 많이 경직돼 있다”며 “협업에 익숙치않은 것도 경영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가 다른 대기업집단과 협업이 많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나 최근 수소, 모빌리티를 중심으로 각 대기업 총수들이 적극 만남을 추진하고 밸류체인을 만들어내는 것과 대비된다.

‘현대차-SK-포스코’는 최근 새롭게 수소 동맹을 맺어 수소전기차, 수소충전 인프라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 SK, 포스코를 비롯 한화, 효성을 포함한 5개 대기업그룹이 수소경제에 투자하는 금액만 무려 42조원에 달한다.

이에 앞서 ‘현대차-LG-SK-삼성’은 지난해 전기차 동맹전선을 형성하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협력해 대응하고 있다. 정부가 수소 및 전기차 사업을 한국판 뉴딜 정책으로 삼고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물론 롯데도 타기업과 아예 협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롯데는 지난해 GS와 함께 화학분야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위해 롯데GS화학을 설립한 바 있다. 또 지난해 말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롯데케미칼 의왕사업장을 찾아 신동빈 회장과 만난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러나 다른 대기업그룹들이 수소, 모빌리티 등 신사업에 수조원의 투자를 단행하고, 전면에 나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크다. 무엇보다 롯데가 국내 재계순위 5위에 올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차이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룹 총수인 신동빈 회장도 공개석상에 자주 모습을 나타내는 편은 아니다. 신 회장은 지난해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6월 ‘시그니엘 부산’ 개관식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11월에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을 찾았다.

올 초 사장단 회의에서는 “생존에만 급급하거나, 과거의 성공 체험에 집착하는 기업에겐 미래도, 존재 의의도 없다”며 “혁신적으로 변하지 못하는 회사들은 과감한 포트폴리오 조정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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