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의 인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국내 사전계약수가 국민차 '그랜저' 사전계약수를 훌쩍 넘더니 급기야는 테슬라의 1년 치 국내 판매량까지 제쳤는데요. 유럽에서도 준비된 물량의 3배 넘는 주문이 몰렸다고 하니 잘하면 '전기차=테슬라'로 굳어지던 선입견이 '아이오닉 5'에 의해 깨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됩니다.

계획대로 인도만 이뤄지면 적어도 올 하반기부턴 파란색 번호판의 아이오닉 5 전기차가 도로 한복판을 장악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저 막연했던 '미래'가 생각보다 빨리 '현재'가 되게 생겼습니다.

▲  아이오닉5(출처=현대차 보도자료)
▲ 아이오닉5(출처=현대차 보도자료)

그래서인지 기대 만큼이나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자동차는 미래일 지언정, 제도와 인프라는 아직 과거 혹은 현재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죠.

가장 우려를 사는 건  바로 열악한 충전 환경입니다. 가뜩이나 충전소와 충전기도 부족하고, 충전 시간도 오래 걸려 불편한 데 아이오닉5 까지 우르르 쏟아지면 '충전 지옥'은 불 보듯 뻔하니 말이죠.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기차 등록대수는 총 13만 4972대입니다. 초기인 2013년 1463대에서 7년 만에 거의 100배 가까이 늘어났는데요. 이에 반해 충전기는 고작 6만 4188대에 불과합니다. 한 기당 2.2대로, 전기차의 절반 수준인데요.  완충 시간이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차주 입장에선 속 터질 만도 해 보입니다. 여기에 아이오닉5까지 늘어나면...

다행히 올해부턴 충전소와 충전기가 빠르게 보급되는 분위기입니다. 환경부 '저공해차 통합 누리집'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기차 충전소는 1만 1560개에 불과했지만, 3월 현재 3만 3360대까지 불어났습니다. 이는 전국 영업주유소 1만 1371대를 훨씬 넘어서는 수치인데요.

▲  출처=저공해차 통합 누리집
▲ 출처=저공해차 통합 누리집

문제는 차주들이 이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유인 즉, 특정 건물에만 설치하는 비공개 및 비공용 충전기 위주로 보급량이 늘고 있기 때문인데요. 지난해까지 설치된 충전기 중에서도 약 절반인 2만 9549대가 모두 비공용 및 비공개 충전기였습니다. 특정 건물에만 설치되다 보니 해당 건물의 직원이나 거주 세대가 아니면 이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전기차 커뮤니티에선 이를 '회삿밥'과 '집밥'으로 표현하더군요.

이 때문에 대다수의 전기차 차주들은 아직도 근처 충전소 또는 충전기를 찾기 위해 전기차 온라인 커뮤니티나 환경부 사이트를 통해 빈자리를 찾아다녀야 하는 실정입니다. (이 마저도 종종 정확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만..) 차주들이 자신들을 '충전 난민'이라 부르는 이유죠. 장거리를 달려와도 차가 방전 상태라면 집에 가서 쉴 수 있는 게 아니라 충전하러 돌아다녀야 하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집밥과 회삿밥이 있다고 해서 마냥 만족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완충 시간에 맞춰 차 빼러 나가야 하고, 완충하고도 차를 빼지 않고 버젓이 주차하는 차에 얼굴 붉히는 일도 다반사.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전기차 충전 관련 민원 건수는 월평균 228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나 늘었다고 합니다. 전기차가 대중화되면 사회적 분쟁으로 확산될 공산이 커 보이는데요.

▲  출처=픽사베이
▲ 출처=픽사베이

그냥 충전기와 충전소를 많이 보급하면 되는 일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이게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모양입니다.  국가 보안시설인 변전소를 아무데나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변전소 건설이나 향후 전기 기본료 상승에 따른 주민 반대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변전소를 지을만한 공간도 별로 없고요.

커뮤니티 등에선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줄이거나 없애고 대신 이를 시설투자에 먼저 투입하자는 의견도 나옵니다. 전기차가 미래차라면 시설부터 확충하고 향후 보조금 지급을 통해 전기차를 활성화 시켜도 늦지 않다는 건데요. 정부의 대대적인 충전기·충전소  보급에도 계속되는 '충전 스트레스'를 감안하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물론 전기차 회사 입장에선 판매량 저조를 걱정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이득일 수 있습니다. 내연기관 보다 전기차 운전이 더 편한 인프라가 구축되면 전기차 판매는 자연스레 늘테니 말이죠.

이런 가운데 정부는 최근 거주지, 직장 등 생활 거점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의무설치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하는 전기차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새 건물은 의무설치 비율을 현재의 0.5%에서 내년부터는 5%로 상향조정하고 기존 건물은 내년 공공건물을 시작으로 2023년부터 민간건물에도 '2% 설치 의무'를 부과한다는 계획인데요.  의무설치 대상이 아닌 연립이나 일반주택의 거주자 편의를 위해 국가ㆍ지자체ㆍ공공기관 등이 보유한 공공 충전시설도 개방하겠다고 합니다. 또한 전기차 충전기를 2025년까지 보급대수의 50% 이상인 50만대로 늘리고 초급속 충전기도 올해 123기로 확대한다는 계획인데요.

전기차 차주들은 정부의 계획안을 나름 반기면서도, 본질적인 대안이라기 보단 지금의 물리적 구조에서' 쥐어짜기 식'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이오닉 5의 물량을 감당할 지도 의문이라는데요.

차주들은 전기차가 활성화 되기 위해선 주유소처럼 충전소나 충전기의 접근성이 좋아야 하고, 충전 시간은 주유처럼 5분 이내로 단축돼야 하며 충전 비용도 기름 값 보다 적게 드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또 공용 충전기 만큼이나 개인 충전기 또는 급속 충전기 보급도 크게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는데요.  현재의 도시 및 건물 구조, 변전 설비 용량 등을 감안하면 솔직히 쉽지 않은 일이죠.  정부의 보다 본질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그린 모빌리티는 정부가 제시한 미래이자 세계적 패러다임입니다. 이를 위해선 선제적 인프라 구축이 필수입니다. (전기차 회사의 1회 충전 주행거리 확대는 덤이고요.) 주먹구구식의 대책과 본질적으로 개선되지 않은 충전 환경이 아이오닉 5가 쏘아올린 전기차 대중화에 자칫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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