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5G 전국망 구축에 한창입니다. 지난 2019년 4월 5G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서울시와 주요 광역시에서 전국으로 5G 기지국을 늘리고 있습니다. 통신 3사는 지난 2018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진행한 5G 주파수 경매에서 주파수를 할당 받았습니다. 각사가 경매로 획득한 5G 주파수는 3.5기가헤르츠(㎓)와 28㎓ 대역으로 나뉩니다. 현재 통신사들이 전국망 구축에 활용하고 있는 주파수는 3.5㎓ 대역입니다. 고주파 대역인 28㎓는 전파의 직전성이 강하고 도달 가능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때문에 통신사들은 인파가 몰리는 대형 쇼핑몰이나 지하철역 등에 필요에 따라 활용한다는 계획입니다. 그러다보니 28㎓ 대역의 기지국 구축은 3.5㎓보다 뒤로 밀렸습니다.

28㎓ 대역을 경매를 통해 할당은 받았지만 아직 사용을 못하다 보니 회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난 3일 통신 3사 중 LG유플러스가 가장 먼저 2020년말 기준 감사보고서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했습니다. LG유플러스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28㎓ 주파수 이용권은 1941억7600만원의 손상차손으로 인식됐습니다.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삼일회계법인은 '28㎓ 대역의 손상 회계처리'를 핵심감사사항의 첫 번째로 꼽았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많은 비용이 수반되지만 아직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보니 회계상 손실로 인식을 했다는 의미겠죠.

손상차손이란 자산의 미래 경제적 가치가 장부가격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이를 재무제표상 손실로 반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삼일회계법인은 28㎓ 주파수 이용권이 2020년말 기준 경영자가 의도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손상차손으로 인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LG유플러스는 2018년 주파수 경매 당시 28㎓ 대역의 800메가헤르츠(㎒) 폭의 주파수를 2072억원에 획득했습니다. 2072억원의 약 94%인 1971억7600만원을 손상으로 인식했으니 아직 28㎓는 회계상으로는 거의 손실을 일으키는 역할만 한 셈입니다. 감사보고서는 3.5㎓ 대역은 현재 전국망 구축에 사용되고 있고 10년간의 사용기간 동안 정액법으로 상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직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28㎓ 대역은 사용시점부터 상각 예정입니다.

▲  (자료=과기정통부)
▲ (자료=과기정통부)

이렇듯 28㎓ 대역은 아직 회계상으로는 손실을 발생시키는 요인입니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5G 28㎓ 대역의 미래가치가 충분하고 5G망 구축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그렇게 많은 금액을 지출했을 것입니다. 28㎓ 대역을 SK텔레콤은 2073억원, KT는 2078억원에 각각 낙찰받았습니다.

28㎓ 대역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통신사들에게 이익이 될 시점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LG유플러스는 올해 실내와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5G 커버리지(도달거리)를 확대하고 28㎓ 대역의 서비스를 위한 사업 모델도 발굴한다는 계획입니다.

28㎓ 대역은 인파가 많이 몰리는 핫스팟 지역 외에는 B2B(기업간거래) 시장에서 활용도가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마트팩토리·스마트시티·스마트모빌리티 등 특정 장소나 서비스에서만 활용되는 5G 서비스에 제격입니다. 28㎓ 대역의 커버리지가 좁지만 그만큼 특정 지역 내에서 활용하기에는 적합한 대역으로 꼽힙니다.

또 28㎓ 대역으로 B2B 서비스를 한번 시작하면 통신사들에게 지속적인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LG유플러스가 28㎓ 대역으로 서비스를 마련하려고 하는 스마트팩토리와 스마트시티 등은 B2C 영역보다 대형 프로젝트가 많습니다. 스마트팩토리와 스마트시티는 각종 센서들이 항상 통신망에 연결돼 데이터를 수집하고 서버로 보냅니다. 원활한 서비스를 하기 위해 5G망의 역할이 절대적이죠.

LG유플러스같은 통신사 입장에서는 그만큼 사업 규모도 크고 지속적인 사용료를 받는 서비스이다보니 매출 향상에도 도움이 되죠. 특히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 3위 사업자인 LG유플러스에게 이러한 B2B 시장은 경쟁사들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합니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12월 금오공대와 '5G 정부업무망 모바일화 실증사업'을 위한 네트워크 및 솔루션 구축을 완료하고 본격 실증을 시작했습니다. 유선 기반 업무망을 5G망으로 대체하고 △클라우드 시스템 △저지연 원격수업 △산학연 R&D 플랫폼 △얼굴인식 인공지능(AI) 카메라 등을 제공해 스마트 캠퍼스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입니다. 여기에 28㎓ 대역도 활용됩니다. LG유플러스는 28㎓ 대역을 지원하는 퀄컴의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기반의 스마트폰과 5G 라우터의 실증에 이번 프로젝트를 활용했습니다.

이제 막 걸음을 뗀 5G 28㎓ 대역 망에서 어떤 서비스들이 등장할지 기대가 모아집니다. 또 LG유플러스가 28㎓ 대역을 중심으로 한 B2B 서비스에서 얼마나 큰 성과를 내 회계상으로도 도움이 될지 궁금해지네요. 결국 이러한 5G B2B 서비스의 결과가 LG유플러스를 비롯한 SKT, KT 등 통신사들의 '탈통신' 행보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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